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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인문학 뿌리와 현장 <8> 부산의 인문학적 잡지

비평과 격려,담론창조… 문화의 가치를 끌어올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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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일 오후 '시와 사상' 편집위원들이 2013년 봄호 편집회의를 열고 있다. 왼쪽부터 안효희 한해미 박강우(주간) 송미선 김예강(편집장) 위원.
인문학 운동 가운데 문학은 구체적인 삶을 표현하고 재현한다. 부산의 '지역문학'은 중심부 서울을 제외하고 가장 활발하다. 이러한 문학 운동을 매개하는 것이 문학 매체이다. 부산지역 문학 매체의 역사는 1980년대 무크지인 '지평', '전망', '토박이'를 자리매김하는 데서 서술할 수 있다. 5공화국 정부에 의해 주요 계간지들이 폐간되면서 소위 '무크지의 시대'가 도래하는 데 부산에서도 다른 지역과 등가적인 위상을 지닌 무크지들이 발간됐다. 이들 매체가 지역문학의 가치를 확장하였음에 틀림이 없다. 더불어 부산 예술계는 국내 유일의 미술비평 전문지를 표방한 '비-아트', '크래커(CRACKER)-달지 않은…' 두 권이 고군분투하고 있다.

■지역 문단의 버팀목 된 문학 매체

   
비-아트- 문화공간 '반디' 가 2009년 발간한 지역의 선구적인 미술비평지. '반디' 폐관 이후 재정적 어려움에 부딪혀 폐간 논의 진행중.
'지평'은 지역모순에 관심을 기울였다. '토박이' 또한 민중의 삶에 대하여 고찰하였다. 이들 무크지는 현실의 모순에 저항하면서 비판적인 지역주의를 확립했다. '전망'은 문학 내적인 논리의 천착에 주력한다. 이는 문학의 자율성이 현실에 관한 자유임을 거듭 확인하였다. 무크지 시대가 끝나면서 '겨레문학'과 '지평의 문학' 등 계간지가 등장하기도 한다. 전자는 1980년대의 진보적 흐름을 계승하고 후자는 해양문학 등 지역문학의 특이성에 주목하였다.

부산의 문학 매체로 오늘날까지 여전하게 진화하고 있는 것은 '오늘의 문예비평'과 '시와 사상', 그리고 '신생'이다. '오늘의 문예비평'은 1980년대 무크지를 주도한 비평가들이 연합하여 발간한 매체다. 1950년대 말의 고석규와 1970년 후반 이래 김준오, 김중하 등의 후진들이 1991년 봄에 만든 잡지로 부산의 인문학에서 비평이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 데 기여했다. 현재까지 22년의 전통을 유지하면서 전국 최장수 비평전문지로 기록되고 있다. 남송우, 황국명, 구모룡, 박훈하, 김경복, 허정, 하상일 등이 이 매체를 이끌었고 김경연, 전성욱, 박형준, 손남훈, 윤인로 등이 전통을 창조적으로 계승하고 있다. '오늘의 문예비평' 곁에 '해석과 판단'이라는 소집단이 활동하는 현상을 생각할 때 부산은 비평의 도시라는 이름을 얻기에 부족함이 없다. 그만큼 역동적이다.

   
크래커- 2009년 창간된 지역 미술비평지. 김해성 강선학 정은경 김영준 조은정 강선주 등 평론가들이 고료를 받지 않고 자유롭게 기고. '부산 미술의 현장비평'을 표방.
시 전문계간지'시와 사상'은 부산 문학의 한 경향인 모더니즘을 대변한다. 무크지 '전망'을 주도한 시인들인 정영태, 강경주, 배광훈, 김경수 등이 1994년 여름 창간해 오늘(2012년 겨울호·75호)에 이르고 있다. 모더니즘은 '해항도시' 부산의 개방성과 근대성을 반영한다. 일찍이 고석규, 조향 등에서 발원한 모더니티의 정신을 계승한 '시와 사상'은 현재에 이르러 마이너리티와 페미니즘 등의 영역으로 관심을 확대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지역과 전국을 연계함으로써 부산 시문학의 위상을 높이고 있다.

시 전문계간지 '신생'은 구모룡, 김경복, 이성희, 이해웅, 조성래 등이 1999년 가을 창간한 잡지로, 표제가 시사하듯이 생태주의 운동을 표방하고 있다. 20세기 근대주의가 낳은 폐해를 철학과 미학을 통해 반성하면서 새로운 시학 운동을 전개하였다. 최근 김만석, 김대성 등이 합류하여 시적 자율성이 기존의 세계를 변혁하는 힘이 될 수 있음을 모색하고 있다. 이는 멀리 1980년대의 '지평' 등의 유산을 21세기 현실 속에서 재문맥화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이처럼 '신생'은 시학과 미학, 철학 그리고 사회를 가로지르는 기획을 계속하고 있다.

인문학의 발전은 읽고 쓰는 과정이 확대되는 데서 찾아진다. 특히 매체는 이러한 과정을 매개한다. 새로운 기획과 창의적인 생각을 하는 멤버십은 매체의 쇄신에 필수적이다. 매체가 하나의 제도로 고착되는 것은 구체적 삶을 포착하는 데 장애가 된다. 따라서 살아 있는 삶의 경험에 가닿으면서 보편적인 삶의 가치를 발현하는 노력이 뒤따라야 한다. '오늘의 문예비평'과 '시와 사상', '신생'은 제도이면서 제도를 넘어 살아 있는 생명, 세계와 대화하고 있다.

■부산 미술의 담론, 이곳에서 출발했다

   
신생- 생태주의 운동을 표방하는 문학지. 구모룡 김경복 이성희 이해웅 조성래 등 주축이 돼 1999년 창간.
1980년대 중후반 부산 미술 현장에는 '미술통신', '조형과 상황' 등의 미술비평지가 담론의 장으로 활약했다. 하지만 그것으로 끝이었다. 2009년 상반기까지 지역에는 생산(전시)과 소비(시장·갤러리)만 있을 뿐, 평가는 없었다. 그 사이 대학과 대학원 등에서 미술 인구는 계속 배출되는 기형적 구조가 이어졌다. 이 같은 문제의식에서 미술비평전문지 두 권이 앞서거니 뒤서거니 창간됐다. 미술 전반을 다루는 월간 미술잡지 '비-아트'(2009년 7월 창간호)에 이어 부산에서 일어나는 전시에 대한 현장 비평으로만 특화해 격월간으로 발행하는 '크래커(CRACKER)-달지 않은…'(2009년 12월 창간호)이다. 역사는 짧지만, 서울을 제외한 전국에서 유일한 미술비평지인 셈이다.

'비-아트'는 대안공간 반디에서 시작했다. 반디의 디렉터였던 김성연 씨는 "반디 이전 대안공간 때부터 미술비평 잡지의 필요성을 절감하고 있었다. 당시 지역에 미술비평, 이론 관련 매체가 워낙 없었다. 지역의 미술 이야기가 편파적으로 흐를 때도 잦았다. 담론을 환기하는 역할을 해보자 싶었다"고 밝혔다.

   
오늘의 문예비평- 1991년 발간된 전국 최장수 비평전문지. 부산 인문학에서 비평이 중요하게 자리매김하는 데 기여.
발행비용은 반디 기금으로 충당하고, 필진은 그를 포함해 반디의 큐레이터, 미술평론가 등을 영입했다. 내용은 미술에만 국한하지 않았다. 새롭게 시작하는 지역문화계의 움직임, 독특한 시도를 하는 단체(또는 단체장) 인터뷰, 공립미술관의 역할과 문제점에 대한 전문가 토론 등 종횡무진 지역 예술계를 해부하고 격려했다. 이들 글은 전국의 대안공간 및 미술관, 갤러리, 작가 등에 배부되면서 부산 미술의 저력을 보여주었다.

아쉽게도 반디가 2010년 10월 문을 닫으면서 '비-아트'의 영속성도 보장하기 어렵게 됐다. 뜻있는 지역 미술인과 평론가 등이 자금을 조달해 2~3달에 한 번씩 발행했지만, 이마저 지난해 8월 지령 33호를 끝으로 중단됐다. 문제는 예산 확보에 있다. 1500부 안팎으로 찍고, 소정의 원고료, 우편료 등을 조달하기 위해서는 매월 200만 원가량이 필요하지만 여의치가 않다. 올해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결정한 지원금은 300만 원. 두 달도 버티기 어렵다. 이에 김 디렉터는 "이달 중 편집전문 위원들과의 회의를 거쳐 폐간 여부를 논의할 예정이다. 부산 미술 자료 정리, 미술사 정리 등 많은 부분을 계획했는데 아쉬울 따름"이라고 말했다.

   
시와 사상- '해항도시' 부산의 개방성과 근대성을 반영하는 모더니즘. 이 경향을 대변하는 문학계간지. 1994년 창간.
'크래커(CRACKER)-달지 않은…'은 창간호 이후 16호까지 나왔다. 격월간에 맞춘다면 몇 번은 더 나왔어야 했지만, 자금과 원고 조달 등의 사정으로 몇 차례 빼먹었다. 잡지는 일반적인 틀에서 벗어나 있다. 머리를 맞댄 편집회의 한 번 없이 6명의 필진(김해성 강선학 정은경 김영준 조은정 강선주 씨 등)이 두 달에 한 번꼴로 그들의 자유의지로 글을 쓴다. 원고료는 없다. 처음에는 구영경 대표의 사비로 찍었지만, 지난해부터 부산문화재단의 기금지원을 받는다. 한 해 600만 원. 이 돈으로 1000부를 발행하고 부족분은 출판업을 하는 대표가 충당하는 방식이다.

강선학 씨는 "비-아트와 크래커 이전 부산에는 오랫동안 미술에 대한 미학적 담론이 형성되지 못했다. 기껏 서울에 있는 잡지에 1년에 1, 2회 리뷰 쓰는 정도에 그쳤다. 어떤 형태로든 출판물을 만들어야 했고, 지금까지 그 맥을 이어오게 됐다"고 밝혔다. 3년이 지난 지금 크래커는 '부산 미술의 현장 비평'이라는 색깔 그대로 평가받기를 원한다.

문학부문 도움말=구모룡 한국해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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