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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재발견 <6> 김해 팔판마을 '행복한 울타리'

자녀 책 읽어주기로 시작… 재능기부·봉사로 만든 '독서 사랑방'

  • 노수윤 기자 synho@kookje.co.kr
  •  |   입력 : 2013-02-06 20:08:55
  •  |   본지 6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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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김해시 장유면 팔판마을 부영e그린 3차아파트에 있는 팔판작은도서관 모습. 아파트 사랑방과 어린이집, 문화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 도심 아파트서 자라는 공동체

- '책 읽는 엄마들의 모임'이 시초
- 회원 6명, 단지 내 도서관서 활동
- 점차 육아·생활 이야기로 소통

# 이웃 어린이들도 '한 울타리'

- 책읽기·독후활동 교실 등 개설
- 육아휴직 중인 교사 수업 참여
- "희망 키우고 함께 사는 곳으로"

농촌마을에서는 이웃끼리 힘을 합쳐 크고 작은 일을 처리하는 것이 상례화되어 있다. 반면 도심 아파트는 거주 개념으로 볼 때 공동체가 분명하지만 소통과 협력 측면에서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경남 김해시 장유면 팔판마을 부영e그린 3차 아파트는 도심의 공동주택이면서도 여타 아파트 단지와는 사정이 조금 다르다. 3년 전 단지 내 작은 도서관에서 태동한 '행복한 울타리'가 있어서다. 자신들만의 모임을 넘어 개인 위주인 아파트를 정감 그득한 공동체 공간으로 차츰 변모시키고 있다.

그렇다고 행복한 울타리가 아파트 주민 모두를 대상으로 소통하고, 일이 생기면 함께 모여 풀어나가는 거창한 일을 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내 아이를 잘 키우겠다는 일념으로 시작한 모임이 이제는 단지 내의 자녀들을 위해 재능을 기부하고 봉사하며 소통과 아파트 문화를 키워가는 울타리 공동체로 발전을 했다.

행복한 울타리는 리더인 이정아(37) 씨를 비롯해 김경진(40) 박희숙(38) 신훈정(35) 강정선(37) 강정미(31) 씨 등 6명이 전부인 단출한 모임이다.

처음부터 어떤 성격을 갖고 공동체로 키워가자는 계획을 마련한 것은 아니었다. 지난 2010년 5월, 관리동 지하 1층에 자리한 '팔판작은도서관'에서 모집한 '책 읽는 엄마들의 모임'에 가입한 것이 시작의 첫 걸음이었다. 유치원이나 초등학교에 입학한 내 자녀에게 책을 읽어주고, 독서를 많이 하게 이끌어야겠다는 생각이 전부였다.

   
'행복한 울타리'는 도심 아파트에서 희망을 찾아가는 공동체다. 사진 왼쪽부터 이정아, 김경진, 박희숙, 신훈정, 강정선 씨
그런 까닭에 초기에는 자녀에게 책을 읽어준 후 집으로 돌아가기 바빴다. 그러다가 여느 주부와 마찬가지로 도서관 한 쪽에 둘러앉아 육아, 생활, 가정 이야기도 하고 밥도 지어 함께 먹는 등 소통이 이뤄졌고 공동체 의식이 다져졌다.

5개월쯤이 지나자 책 읽어주기 노하우도 쌓였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내 아이들뿐 아니라 아파트 안의 자녀들도 챙기자는데 의견이 일치했다. 내 자식들이 행복해지려면 주위 또래 아이도 함께 행복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장유는 부산, 창원과 인접한 신도시로 아파트가 즐비하다. 그중에서도 이 아파트는 다른 곳보다 젊은 맞벌이 가정이 많아 유치원생과 초등학생이 적지 않다. 아이들은 부모가 집에 없는 동안 도서관을 마치 어린이 집이나 실내놀이터인양 자주 찾는다.

행복한 울타리 구성원들은 이들에게 뭘 더해 줄까 고심하다 지난 2011년부터 책 읽기와 독후활동 프로그램을 개설했다. 한 달에 한 번, 매주 토요일 오전 10시30분이 되면 20∼30명의 어린이로 작은 도서관이 꽉 찬다.

지난 2일 '세뱃돈 봉투' 만들기 때는 부모들도 많이 참가했다. 중학교 교사인 김경진 씨의 설명을 들은 뒤 종이를 접고 양면테이프를 잘라붙이느라 어른과 아이할 것 없이 조용했다. 모두 집중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김 씨는 현재 육아휴직 중이다. 그러나 이곳에서의 생활이 학교에 나갈 때보다 더욱 바쁘다. 초등학교 2∼3학년생을 대상으로 매주 목요일 '과학실험교실'을 열고 공동육아 프로그램인 '하얀 도화지'에도 참가하는 등 공동체 속에서 재능기부에 여념이 없다.

행복한 울타리는 지난 2년 동안 '복 타러간 총각' '야광귀신' '양초귀신' '유관순' 등의 책을 읽어 주고 복주머니와 방패연, 한지 등(燈), 태극기퍼즐 만들기를 하는 등 24번의 활동을 펼쳤다.

참가 어린이들은 더없이 즐겁지만 준비는 고되다. 모르는 이들은 책 읽어주기가 뭐가 힘드냐고 의문을 갖지만 어린이들이 잘 이해하도록 읽어주기 위해서는 꼼꼼한 준비가 필요했다. 매주 화요일 오전 10시 30분 도서관에 모여 책을 선정하고 읽는 방법 등을 논의하는 것은 기본이다.

독후활동 과제를 선정하는 것도 만만찮다. 한 번 행사를 준비하려면 4∼5일이 걸린다. 재료를 사야 하고, 다음에는 일정 크기로 자르고 미리 접어 놓는 등 어린이들이 만들기 쉽도록 준비해야 하기 때문에 거의 도서관에서 살다시피 한다.

그렇지만 오후에 도서관을 찾은 어린이들에게 책을 읽어주고 만들기를 가르칠 때 한눈팔지 않고 집중하는 눈빛을 보면 기쁨을 느낀다.

이정아 씨는 "책 읽어주기와 연계해 독후활동을 하면 어린이들이 즐거워해 기분이 아주 좋다"며 "앞으로도 아이들이 희망을 키우고 함께 살아가는 것을 제대로 배울 수 있도록 공동체 활동을 해 나갈 것"이라고 각오를 밝혔다.


■ 팔판작은도서관은

- 동화책 등 6500여권 보유, 문화·독서공간 자리매김
- 시 5000만원 지원 받아 2009년 개관
- 책두레 통해 시립도서관 등 대출도

김해시 장유면 팔판마을 부영e그린 3차 아파트 관리동에 있는 '팔판작은도서관'은 회색빛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아파트 내의 유일한 문화·독서 공간이다. 공동체 '행복한 울타리'가 둥지를 튼 곳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 7월 4일 개관해 3년7개월여 만에 아파트의 사랑방으로 자리 매김을 했다. 아파트 입주자대표회의 회장인 배주임(43) 관장이 지난 2008년 도서관 설치 지원을 건의하고 입주민과 준비 운영위원회를 구성하는 등의 노력 끝에 시로부터 5000만 원을 지원받아 문을 열었다. 126㎡의 작은 공간이지만 동화책을 비롯한 보유 장서가 6500여 권에 이른다. 책두레를 통해 인근의 장유도서관이나 기적의 도서관, 시립도서관 책도 모두 대출받을 수 있어 제대로 활용을 하면 모든 도서를 접할 수 있다.

매주 토요일마다 책읽기, 독후활동, 주민과 함께하는 벼룩시장, 영화감상 등 행사를 한다. 여름방학 때는 '한여름밤의 시낭송 대회' 등 문화행사도 열린다. 겨울방학 때는 학부모와 함께하는 겨울여행, 도서관이랑 친구되기 등 체험 프로그램이 마련된다.

유치원이라 생각하고 매일 도서관에 들르는 어린 쌍둥이를 비롯해 아침마다 책을 대출한 뒤 출근하는 책사랑 맘, 공룡에 빠져 공룡박사가 된 다둥이네 가족 등 다양한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

개관 초기에는 보유 도서도 적고 공간도 협소하다는 생각에 일부 어린이들만이 들렀지만 시립 도서관과 연결 시스템으로 읽고 싶은 책을 2∼3일이면 대출받을 수 있다는 것을 안 뒤에는 발길이 끊이질 않는다.

도서관이 아파트의 사랑방, 문화공간으로 떠오르면서 기부천사도 늘고 있다. 지난 2011년 8명에 불과했으나 최근에는 33명으로 늘었다.

배 관장은 "시가 지원하는 운영비가 최근 25% 정도 줄어 책 구매에 어려움이 있으나 기부천사들의 후원과 벼룩시장 수익금 등으로 도서관을 꾸려가고 있다"며 "아파트 공동체의 구심점이 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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