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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동체의 재발견 <1> 부산 북구 화명2동 대천마을

환경 문제로 머리 맞댄 주민들, 이웃 간 벽 허물고 하나됐다

  • 김현주 기자 kimhju@kookje.co.kr
  •  |   입력 : 2012-12-31 18:43:37
  •  |   본지 38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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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북구 화명2동 대천마을 맨발동무도서관에서 진행하는 '유아 한밭나들이'에 참여한 아이들이 영상을 보며 책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 맨발동무도서관은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다양한 책읽기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나지막한 담 너머 보이던 이웃집 대신 무채색 아파트숲이 도시풍경을 채운 지 오래다. 이웃 간 후한 인심을 찾아보기도 어려워졌다. 개인주의가 판치고 있는 요즘, 도시 한편에선 사람들과 먹거리를 나누고 육아 방법을 고민하고 좋은 물건을 함께 구매하는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나고 있다. 도시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고 있는 도심공동체를 소개한다.

- 금정산 자락, 자연·도시 공존 마을
- 아파트 건립·KTX 터널공사 '위기'
- 의기투합 극복 뒤 '네트워크' 조직
- 육아·환경 등 소규모 공동체 활성화
- "주민이 만드는 살기좋은 동네 구현"

■아파트촌에서 피어난 마을

   
지난 10월 북구 대천천을 중심으로 열린 '대천천문화환경축제'에서 아이들이 물고기를 잡는 모습. 대천천네트워크 제공
오전 11시 부산 북구 대천천환경문화센터가 왁자지껄하다. 건물 2층 대천마을학교는 바느질 동호회 회원 어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간밤 설레며 봤던 드라마 얘기부터 '○○가게에 좋은 물건이 들어왔더라', '○○네 아들이 이번 수능을 잘봤다더라' 등 밤새 수집한 동네 정보를 쏟아내기 바쁘다. 바로 옆 맨발동무도서관은 문을 열자마자 책을 빌리러 들른 어머니부터 영화를 보기 위해 모인 아이들로 바글바글하다. 대천천네트워크 사무실이 있는 3층도 바쁘긴 매한가지. 동네 아이들과 함께 할 생태체험교육 준비를 해야하는데 차 한잔 마시기 위해 들른 어르신과 외부손님이 연신 문을 두드린다.

부산 북구 화명2동 주민 2만 여 명이 모여사는 '대천마을'. 이곳은 자연과 도시가 어우러진 특별한 마을공동체이다. 금정산에서 물줄기를 뻗은 대천천을 중심으로 아파트촌이 빽빽하게 들어서있다. 하지만 여느 아파트촌과 달리 마을 공기가 여유롭다. 동네를 오가는 이웃들의 얼굴엔 '잘 지내시죠'란 말을 머금은 웃음이 가득하다.

대천마을은 1990년대 후반 도시계획에 따라 아파트촌이 형성되면서 기틀을 갖췄다.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외부인 유입도 늘었고, 여느 아파트와 다를 바 없이 이웃끼리 만나도 대면대면한 동네에 불과했다.

대천마을 사람들이 힘을 모으게 된 것은 2번의 위기를 겪으면서다. 2000년대 초반 화명택지지구 유휴부지(7000㎡)에 아파트가 들어선다는 소식이 전해지자 입주민들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동네로 들어오는 사람은 느는데 학교, 어린이집, 상가 등 부대시설이 턱없이 적어 주민 불편이 이만저만이 아니었기 때문. 이에 각 아파트운영위원회와 부녀회가 힘을 모아 '아파트건립반대위원회'를 결성, 해당 부지에 고등학교 건립을 추진했고 금명여고 유치에 성공했다.

또 하나의 사건은 금정산 KTX 장대터널공사였다. 터널공사로 대천마을 위쪽을 뚫는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주민들은 공사판이 된 마을을 구하기 위해 손을 잡았다. 매일 공사 반대 운동을 벌였고 결국 마을을 통과하는 흙 반출량을 절반으로 줄이고 피해보상 차원에서 대천천환경문화센터 건물을 얻어냈다.

두 차례 위기를 통해 주민들은 마을 문제에 지속적으로 관심을 갖게 됐다. 2004년 대천천네트워크를 결성하고 각 아파트 입주자 대표, 부녀회장 등 100여 명이 모여 대천천 살리기 운동과 각종 마을 축제 개최에 앞장섰다. 주민들이 얻어낸 대천천환경문화센터는 대천마을학교, 맨발동무도서관, 대천천네트워크가 한데 모여 마을 기지 역할을 하며 주민들의 사랑방으로 자리 잡았다.

■육아, 환경, 취미, 경제 등이 조합된 공동체

대천마을은 육아, 환경, 교육, 먹거리 등 다양한 주제별 소규모 공동체가 오밀조밀 얽혀있다. 대천천네트워크는 푸른동네 가꾸기와 청소년 생태교육을 담당하고, 2008년 문을 연 대천마을학교는 축구 가야금 만화 바느질 등 다양한 주제(강좌 20개, 동아리 7개)별로 주민들끼리 배움을 주고받는 사랑방 역할을 한다.

2005년 문을 연 맨발동무도서관은 '동네에 도서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 주민들이 힘을 모아 도서관 공간과 책 2만 권을 확보해 만들었다. 도서관에선 문학기행, 글쓰기 강사 초청 강연, 낭독회, 라면극장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며 아이와 어른 모두에게 책읽기의 기쁨을 나눠주는 '꿈나무' 같은 역할을 한다.

1999년 결성된 부산북구공동육아협동조합의 쿵쿵어린이집과 징검다리놓는아이들 방과후학교는 3~12세 아이들의 신체와 정서 발달을 돕는 대안교육 공간이다. '건강한 아이'를 키우고 싶은 동네 주민들이 뜻을 모아 운영하며, 매일 나들이 교육을 통해 아이들이 맘껏 뛰어놀고 싸우고 뒹굴며 하나의 인격체로 성장해가고 있다. 이밖에 반쪽이공방, 푸른바다생협, 어린이지역시민연대 등 다양한 공동체가 활발히 운영되고 있다.

대천마을학교 이귀원 교장은 "예전에는 동네 형에게 기타, 태권도 등을 배우며 자랐는데 마을이 해체되면서 이 같은 모습을 찾아보기 어려워졌다. 하지만 대천마을에선 이웃들 간 재능기부를 통해 예전 동네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며 "이곳은 다양한 공동체가 각자 활발하게 운영되면서 필요에 따라 서로 연계하며 시너지 효과를 내는 특별한 곳이다"고 자랑스레 말했다.

대천마을 공동체의 성공엔 뭔가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걸까. 이에 대해 대천천네트워크 강호열 사무처장은 '주민 중심'의 촘촘한 조직망을 꼽았다. 그는 "대천마을은 각 아파트 단지마다 주민으로 구성된 운영위원회가 결성돼 유기적으로 연결되며, 각 공동체 운영위원회끼리도 네트워크가 잘 구축되어 있다"며 "여기에 사회활동 경험이 있는 마을활동가들이 주민과 협력해 프로그램의 원할한 진행을 도와 서로 톱니바퀴가 잘 맞아떨어져 굴러간다고 생각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즉, 지역 주민으로 결성된 각종 공동체 운영위원회와 아파트연합회가 독립적으로 활동하다가 주요 현안이 생길 때면 결속하는 유기적 결합이 잘 되어 있어 '목소리 큰' 사람에게 좌지우지될 수 없는 공동체 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화명2동주민센터 이정석 사무장은 "이곳은 마을 주민이 교사, 활동가, 학생으로 참여하며 주민 스스로 '살기 좋은 동네'를 만들어 가는 곳"이라며 "마을공동체가 성공하기 위해서는 주민이 주인이 되는 것이 중요하다는 부분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고 힘주어 말했다.


# '공동의' 네트워크 결성 활발

- 관심사·가치 공유 공동체 크게 늘어
- 부산 '자발적 공동체' 20여 곳 달해
- 市 주도 도시재생 '마을만들기'도

전통적인 '공동체'의 개념은 지연·혈연으로 얽혀 형성된 인간관계를 일컫는다.

하지만 20세기 이후 가족 해체와 개인주의 풍토 만연 등 사회 전반적으로 전통적인 공동체가 분해되고 대신 새로운 공동체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단순히 지연과 혈연에 얽히지 않고 교육, 육아, 먹거리, 환경 등 다양한 분야에서 '공동의' 관심사와 가치를 중심으로 한 인적 네트워크가 형성되기 시작한 것. 특히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IT 기기의 진화로 소셜네트워크(SNS)를 기반으로 한 사이버 공동체도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다.

부산지역에서 '공동의 가치'를 추구하며 만들어진 자발적 공동체는 20여 곳 안팎으로 파악된다. 해운대구 반송 희망세상, 금정구 금샘마을공동체, 학장천살리기주민모임 등이 대표적이다. 부산시는 2010년부터 도시재생을 위해 '마을' 만들기를 도입하고 취약계층 주거지를 중심으로 ▷산복도로 르네상스 ▷희망마을만들기 ▷행복마을만들기 ▷커뮤니티 뉴딜 등의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부산발전연구원 지역재생창조연구실 한승욱 박사는 "마을의 전통적인 개념인 공간과 행정단위에서 벗어나 공감대를 주축으로 한 네트워크가 활발히 결성되면서 더 넓은 의미의 공동체가 만들어지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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