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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조광래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이 지난달 30일 자신의 고향인 경남 진주시 남강 둔치에서 강물을 바라보며 상념에 잠겨 있다. 곽재훈 기자 kwakjh@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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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전통보 없이 감독직 경질당해…사실상 협회 파벌다툼에 희생양
- 처음엔 충격·분노, 지금은 조금…
- 협회 특정인의 권력 유지위해 감독 짓밟는 일 다시는 없어야
- 능력있는 축구인 계속 배척 땐 한국축구 퇴보의 길로 걸을 것
"웃지 않고 사진 찍어보기는 이번이 처음인 것 같네." 애써 웃음을 지어보이려 하지만 금방 얼굴은 굳어졌다. 표정엔 명예와 자존심에 타격을 입은 마음의 상처가 그대로 묻어났다. 조광래(58)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 얘기다. 그를 비가 내린 지난달 30일 그의 고향인 경남 진주시 남강변에서 만났다. 그는 월드컵 3차예선 마지막 경기를 남겨둔 지난해 12월 8일 경질됐다. 합리적인 절차를 거치지 않은 그야말로 전격적이었다. 그 이유와 배경은 무엇일까. 그간 은둔하다시피 해온 조 감독을 만나기는 쉽지 않았다. 면전에서 상처에 소금을 뿌리는 듯한 질문을 던지는 것은 더 어려웠다. 그는 한국축구협회가 국민들로부터 '이 정도 수준밖에 안 되나'하는 질책을 더 이상 받지 않아야 한다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공식 경질을 통보받은 게 지난해 12월 8일인데 그 하루 전 황보관 축구협회 기술위원원장이 조 감독을 찾아갔었다지요?
▶황보 위원장이 전화를 걸어와 만나자고 해서 12월 7일 오후 7시쯤 서울 역삼동 로보텔 커피숍에서 만났죠.
-황보 위원장이 그 자리에서 경질을 통보하던가요?
▶통보라기보다 권유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요. "부회장단과 논의했는데 3차 예선 통과가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며 사퇴를 권유하더군요. 그러면서 "죄송합니다"를 연발하데요.
-황보 위원장에게 뭐라고 했습니까?
▶황보 위원장에게 내 말 잘 들어라며 단호하게 얘기했죠. '내가 그만 두고 안 두고 문제가 아니다. 국가대표팀 감독의 진퇴 문제를 이렇게 절차와 과정을 무시하고 처리하면 안 된다. 기술위를 열어 그 결과를 통보하겠다고 조중연 축구협회 회장에게 얘기해라. 그래야 기술위원장이 중심을 잡고 끌고 갈 수 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술위원장은 윗사람 심부름꾼밖에 안 된다'.
결국 그날 밤 KBS 뉴스에 조 감독 경질 보도가 났고 다음 날 축구협회는 조 감독 경질을 공식 발표했다.
-결과적으로 황보 위원장은 조 감독에게 '윗선'의 결정을 전하러 온 것이었네요. 협회 회장이나 그 윗선으로부터 경질을 예고하는 신호같은 것은 없었습니까?
▶전혀 없었어요. 다만, 협회의 공식 발표 후 축구 선후배들은 축구계 대표적 야당인사인 허승표 전 한국축구연구소 이사장의 내년 1월 차기 축구협회장 선거 출마 가능성이 영향을 미친 것 같다고 얘기하더군요. 제가 황보 위원장을 만난 그날 한 스포츠신문에 허승표 전 이사장의 인터뷰 기사가 크게 실렸답니다. 허 전 이사장은 2009년 선거에서도 조중연 회장과 각축을 벌였지요. 이 보도를 접한 조 회장이 '윗선'에 보고했고, '윗선'이 저의 경질을 전격 지시했다는 게 선후배들의 추론이지요. '윗선'은 얼마 전까지 조카를 차기 회장으로 밀고 있었거든요. 최근에 조 회장이 연임의사를 내비치기도 했지만요.
-축구계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가진 국가대표팀 감독이 허 전 이사장과 합세할 경우 차기 선거를 장담할 수 없다고 본 주류 측에서 사전에 조 감독을 잘랐다는 말이군요.
▶동향인 허 전 이사장과는 30년 동안 형님 동생하는 사이입니다. 허 전 이사장이 세 번 회장선거를 치르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저는 허 전 이사장 쪽으로 분류됐지요. 이번 일도 차기 회장 등 축구협회 주도권 싸움에서 빚어졌고, 저는 그 희생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결국 조 감독 경질에는 '윗선'의 의사가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것 같은데, 그 '윗선'은 구체적으로 누구인가요?
▶'윗선' 하면 다 아는데 뭘…(조 감독은 '윗선'을 알려주면서도 총선 때고 하니 실명은 밝히지 말아달라고 당부했다.) 축구계 비주류인 제가 감독에 선임될 때 조 회장이 '윗선'의 결재를 받았다는 것을 축구협회 고위 임원으로부터 들었어요. 선임을 승인했으니 당연히 경질에도 결재했겠지요.
-많은 논란을 불렀던 조 감독 경질발표는 결국 기정사실이 돼버렸는데, 아직도 분이 다 풀리지 않은 것 같은데요?
▶(손사래를 치며) 이젠 다 정리해야죠. 처음엔 '협회 수준이 이것밖에 안 되는구나'하는 체념 같은 게 일더군요. 국가대표팀 감독으로서 합리적인 절차도 없이 해임된 것은 그동안 축구인 조광래라는 이름으로 쌓아온 명예를 모두 잃어버린 아픔이자 충격이었습니다. 조금 시간이 지나면서 그 충격은 분노로 바뀌었습니다. 협회 특정인이 자신의 권력 유지를 위해 국가대표 감독직을 짓밟는 일은 이번 저의 사례로 끝나야 합니다.
-축구팬들이 아쉬워하는 일본전·레바논전 패배가 경질에 영향을 미치지 않았을까요?
▶고비는 어느 팀에나 다 한 번쯤 있게 마련입니다. 특히 레바논전을 앞두고 문제가 생겼어요. 박지성 선수와 이영표 선수가 한꺼번에 은퇴를 한 겁니다. 설상가상으로 바레인전을 앞두고 핵심 전력인 이청룡 기성룡 박주영 선수가 부상 등으로 못 뛰는 상황이 발생한 거죠. 악재가 겹친 겁니다. 그러나 홈경기인 쿠웨이트전은 자신이 있었습니다. 문제는 위기가 닥쳤을 때 협회 수뇌부가 대표팀 감독진과 의논하고 부족한 부분을 보완할 있도록 도와줘야지 무조건 감독부터 잘라서야 되느냐 하는 겁니다.
-감독 재임시 이회택 축구협회 부회장과의 갈등설과 특정 선수 기용 외압 실체는 구체적으로 어떤 것입니까?
▶감독 부임 첫해 당시 이회택 기술위원장(현재 축구협회 부회장)의 납득하기 힘든 처사로 인한 것입니다. 세르비아 및 가나와의 A매치 평가전을 앞두고 선수 명단이 적힌 선수 선발 운용 계획서를 이 위원장에게 보여줬더니 "올림픽팀은 어쩌란 말이야"라고 소리치며 계획서를 홱 던지는 겁니다. 아무리 선배라도 이건 아니다 싶어 경고 멘트를 날렸죠. 또 한번은 부상선수들의 공백을 메울 선수를 뽑기 위해 기술위원회에 선수 추천을 의뢰했는데 이 위원장이 자신이 전에 밝힌 특정 선수의 이름을 대면서 "이 선수 뽑으라니까"하는 겁니다. 황당했죠. 공식적인 자리에서 특정 선수 이름을 대면 안 되거든요.
-한국축구 발전을 위한 제언을 한다면?
▶축구협회를 30년 넘게 장악해온 정치축구인들이 물러나야 합니다. 능력 있고 건강한 축구인들은 축구계에서 배척되는 상황이 계속되면 한국축구는 퇴보할 게 분명합니다.
-앞으로도 조 감독의 삶에서 축구를 뗄 수 없겠지요?
▶돌이켜 보면 저보다 행복하게 축구선수·감독 생활을 한 축구인이 있나 싶어요. 제 꿈은 축구를 시작한 초등학교시절부터 한국축구의 세계화였습니다. 패싱 위주의 빠른 축구 이른바 '만화축구'의 실현을 위해 헌신할 것입니다. FC서울, 경남FC 그리고 대표팀에서 확인했습니다. 대표팀 감독 경험을 통해 만화축구는 유소년 때부터 익혀야 한다는 생각이 더욱 굳어졌습니다. 조광래 유소년 축구교실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남강 둔치에서 강물을 바라보던 조 감독은 협회 처사에 대한 분노가 요즘은 아쉬움 정도로 잦아들었다고 했다. 축구협회와 축구팬들이 '조금 더 기다려 주지 않은 데 대한 아쉬움'이라는 것이다. 둑길을 걷는 조 감독이 절룩거렸다. 조기축구회에서 지인들과 축구를 하다가 허벅지 근육이 몇가닥 파열됐다고 한다. 국가대표팀 감독이 조기축구회라니, 웃음이 절로 나왔다. 그는 천생 축구인이다. 편집부국장
# 유소년축구교실 준비…'만화축구'는 계속된다
조광래 전 축구국가대표팀 감독은 선수시절 '컴퓨터 링커'라는 별명을 가진 두뇌플레이어의 대명사였다. 경기장 전체를 읽는 넓은 눈으로 송곳처럼 찔러주는 날카로운 패스는 그의 특기였다.
그의 이 같은 경기 스타일은 고교시절로 거슬러올라간다. 초등학교 때 선수로 활동한 그는 중학교에서는 선수생활을 하지 않았고, 진주고등학교에 특기생이 아닌 시험을 쳐 일반학생으로 입학했다. 그는 교실 창문으로 축구선수들이 뛰는 운동장을 바라보며 당시로서는 획기적인 축구의 패러다임을 그렸다. 그게 바로 조광래 '만화축구'의 밑그림이었다.
"당시 저는 영국 맨유에서 활약 중이던 조지 베스트(1946~2005년)에 매료됐습니다. 주로 윙어로 활약한 그는 빠른 속도, 강한 몸싸움, 화려한 개인기를 갖춘 당대 세계 최고수준의 선수였어요. 그의 경기 비디오를 수없이 보면서 그가 추구하는 패싱 위주의 빠른 축구를 꿈꾸었습니다."
조 감독은 최근 페페 세레르(46) 대교시흥 FC 바르셀로나 축구학교 총감독을 만나 유소년 훈련 시스템 도입에 관해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경남 FC 감독 시절에 유망주 발굴에 성과를 거둔 조 감독은 경남 FC 및 구단주인 경남도와 유소년 축구교실 연습장 건립에 관해 논의를 상당부분 진척시킨 상태다. 조 감독은 "조만간 '바르셀로나 축구'를 모델로 삼은 조광래 유소년축구교실을 진주에 세울 것"이라고 말했다.
● 약 력
▶1954년 경남 진주 출생 ▶1974년 진주고 졸업 ▶1978년 연세대 졸업 ▶1980년 아시안컵·1986년 월드컵 출전(A매치 80경기 12골) ▶1978~79년 포항제철 ▶1982~87년 대우 로얄즈(1983년 K-리그 베스트 11) ▶1987년 대우 로얄즈 코치 ▶1992년 국가대표팀 코치 ▶1992~94년 대우로얄즈 감독 ▶1995~97년 수원 삼성 블루윙즈 코치 ▶1999~2003년 안양 LG 치타스 감독(2000년 K-리그 우승, 2001년 FA컵 우승, K-리그 감독상) ▶2004년 FC 서울 감독 ▶2007~2010년 경남 FC 감독 ▶2010년~2011년 국가대표팀 감독 ▶팽현자(56) 씨와 1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