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딩 뱅크·후임은 부산銀 출신이'…6년 전 취임 때 개인적 목표 달성
- 인간관계 중시한 게 성공 비결
- 독재스타일 평은 양면성 지녀…직원에겐 엄격, 고객에겐 친절
- 자회사 CEO에 소신껏 역할 주문, 그룹 내 시너지 효과 창출 주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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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장호 BS금융지주 회장이 지난 13일 부산 동구 범일동 BS금융지주사 회의실에서 올해 경영화두로 정한 '金蟬脫殼(금선탈각)' 액자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금선탈각(金蟬脫殼, 매미가 허물을 벗는다는 뜻으로 변화와 혁신을 상징하는 말)'. 부산 동구 범일동 부산은행 별관 8층 이장호(65) BS금융지주회장 집무실에 걸려 있는 편액의 글이다. BS금융지주회사의 올해 경영 화두라고 한다. 부산은행은 이 회장이 은행장으로 취임한 2006년 초 총자산 22조8000억 원, 당기순이익 1839억 원에서 2011년 말 현재 총자산 40조6000억 원, 당기순이익 3983억 원으로 급성장했다. BS금융지주회사의 변화와 혁신을 위해 지난 6년간 일해온 부산은행장직에서 용퇴한 이 회장을 지난 13일 만나 그간의 소회와 향후 포부를 들었다.
-세간에서는 이 회장이 3년 더 은행장 자리를 지킬 것이라는 예상도 많았습니다. 용퇴를 결심한 배경이 궁금합니다.
▶오래 전부터 재선 은행장으로 끝낼 마음을 굳히고 직속 라인에게 승계 준비를 시켰습니다. 능력엔 때와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6년도 긴 세월입니다. 조직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선 새로운 인물, 새로운 시각이 필요할 때가 된 겁니다. 내가 조직의 변화와 혁신을 이끌어야 겠다 싶어 금선탈각의 심정으로 용퇴를 결심했던 것이죠. 무엇보다 내가 물러나고 내부에서 승계가 이뤄지면 직원들이 '나도 CEO가 될 수 있다'는 꿈을 갖게 될 것으로 봤습니다. 나의 용퇴는 4000명 직원에게 꿈을 주고 조직에 활력과 비전을 준다는 의미입니다.
-부산은행은 지난 6년간 괄목할 만한 성장을 이룩했습니다. 기억에 많이 남는 성과 중에는 어떤 것들이 있습니까?
▶6년 전 행장에 취임할 때 '행원 출신 최초의 최고경영자(CEO)'로서 자부심과 함께 전범을 보여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더랬습니다. '이것 만은 이루자' 하고 두 가지 개인적인 목표를 세웠어요. 부산은행을 지역의 리딩 뱅크로 키우는 것과 나의 자리를 후배에게 물려주는 일이었습니다. 당초 두 가지 목표를 이뤄 기쁩니다. 이 외에 부산시금고 유치, CI작업 및 신사옥 착공, 2011년 종합금융서비스를 위한 BS금융지주회사 설립 등은 은행장 시절의 보람으로 오래 기억될 것 같습니다.
-행원에서 행장을 넘어 지주회사 회장에까지 오르면서 '입지전적 인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자신의 성공 비결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요?
▶어릴 때부터 친구를 많이 사귀었고, 청년기에 인간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했어요. 인적 네트워크를 넓히려면 낮은 자세로, 겸손한 자세로 남을 대해야 한다는 것을 체득했고요. 이 같은 평소 생활철학이 영업맨으로서 성과를 내고 행장까지 오른 비결이라면 비결일 겁니다. 은행원이라는 직업 자체가 많은 사람을 만나는 직업 아닙니까. 특히 은행 일은 서비스업이면서 동시에 생각하기에 따라서는 남에게 베푸는 직업이기도 합니다. 자신의 재산을 맡기는 고객에게 더 편하게, 믿을 수 있도록 해주고 자금이 필요한 사람에게 기쁜 마음으로 대했습니다. 나중에 은행이 어려울 때 그분들이 다 도움을 주더군요. 다만, 가정에는 충실하지 못한 것 같아 집사람과 자녀들에게 미안할 때가 많습니다.
-부산은행의 눈부신 성장에는 지역밀착경영을 내세운 이 회장의 개인적이 능력이 큰 요인으로 작용했다고 평가들을 합니다. 성장을 이룬 열쇠는 무엇인가요?
▶기업들이 어려울 때 우리가 낮은 자세로 다가가야 한다고 직원들에게 요구했어요. 어려운 기업에 더 적극적으로 관심을 가지라, 대출 회수 압박을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우리 은행도 IMF 때 위기에 몰려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한 후에 지역사회의 도움으로 회생했기 때문에 조금이라도 보은하자고 다짐했지요. 이런 자세가 자산성장의 밑거름이 된 것 같습니다.
-4000명에 가까운 임직원을 일사불란하게 이끌지 못했다면 부산은행의 성장을 보기 힘들었겠지요. 임직원들에게 엄격한 독재스타일이라는 평도 있던데요?
▶(질문을 던지자마자 배석한 박영봉 지역본부장이 기다렸다는 듯이 "'대인춘풍·對人春風 지기추상·知己秋霜'이 회장님 모토입니다" 한다. 박 본부장은 이 회장의 복심·腹心으로 통한다. 이 회장은 박 본부장을 넌지시 건너보다 답변을 이었다.) 영업을 할 때는 고객들에게 봄바람처럼 부드럽게 대하지만 우리 직원에게는 서릿발처럼 엄격하게 합니다. CEO가 되면서 다짐한 게 있습니다. 인사에서 절대 지연 학연에 치우치지 않겠다고요. 좁은 지역 사회에서 안면받히고 손아픈 일이 왜 없겠습니까. 하지만 6년 동안 칼날처럼 엄정하게 지켜왔다고 자부합니다. 독재스타일이란 소리에는 양면성이 있지만, 없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조직을 살리기 위해 직원들에게 엄격하게 하되, 현장 영업부서 직원들은 격려를 많이 하고, 본부 기획부서 직원들은 매우 엄격하게 대합니다. 기획부서가 잘못 판단하면 은행 전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입니다.
-현재 부산은행에는 부산상고 동아대 출신이 주류를 이루고 있고, 조직의 건강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외부인 수혈 등 이종교배가 필요한 게 아닐까요?
▶인적 구성으로 볼 때 부산상고 출신 비율이 높은 것은 사실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우리나라 인력수급 구조상 신입사원 채용방법에서 비롯된 것이지 인위적으로 이들 만을 뽑아서 이렇게 된 것은 아닙니다. 편애를 갖고 이런 구성을 만들었다면 벌써 큰일이 났을 것입니다. 앞으로 6~7년이 지나면 상고출신 임원들이 대부분 퇴임하기 때문에 인력구조가 달라질 것으로 봅니다.
-시민들은 지난해의 '자영업 성공시대 대출' 같은 저리의 대출 프로그램을 확대하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올해도 그 프로그램을 시행합니다. 영업이 아니라 사회공헌 차원에서 하는 것이죠. 이자율 4~6%로 최우량기업과 같은 대우입니다. 신용이 낮은 자영업자를 대상으로 하는 것인 만큼 부실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지만 감수할 각오입니다.
-'비올 때 우산을 뺏지 말라'는 말이 있습니다. 일부 지역 업체에서 세계금융위기 때 우산을 뺏으려 한다고 하소연하는 소리도 들리던데요?
▶은행은 고객의 자산예탁금을 운용하는 곳입니다. 부실이 뻔한 곳에 빌려주는 것은 다른 고객의 예금을 날리는 일이죠. 다만, 기업의 위기가 일시적일 경우, 한 고비만 넘기면 회생할 수 있다고 판단될 경우 여신을 과감하게 합니다. 리스크가 큰 곳에 대출을 하면 전체 이자를 올려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집니다. 은행은 고객의 부실이 일시적이냐 구조적이냐의 판단이 매우 중요한데, 우리는 PF 부실이 없는 유일한 은행입니다. 높은 건전성을 유지하는 이유입니다.
부산은행이 부산경제(가계와 기업)에 미치는 영향력은 막강하다. 부산은행장은 부산의 경제시장이나 마찬가지이며 부산의 권력서열 2위라는 말도 공공연하게 나돈다. 이 회장은 비록 부산은행장직은 내놓았지만 여전히 부산은행을 자회사로 거느린 BS금융지주회장으로서 막각한 영향력을 행사할 것이란 분석이 지배적이다.
-부산은행장이 BS금융지주회장의 영향권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시각이 많습니다.
▶6개 자회사가 모두 돈을 다루는 곳이라 큰 틀에서 관리를 하는 콘트롤타워가 필요합니다. 지주회장이 바로 그 역할을 해야죠. 구체적인 실행은 자회사 CEO의 역할이고 지주사가 관여하지 않을 겁니다. 일부 은행에서 은행장의 임기를 2년으로 바꾸는 등 지주회장의 역할을 강화하는 추세이긴 하지만 우리는 아직 그럴 생각이 없습니다. 자회사 CEO들에게 소신껏 하라고 합니다. 지주사와 자회사는 경쟁이 아닌 보완관계입니다. 현재 부산은행은 지주사가 100% 출자한 회사 아닙니까.
-BS금융지주회사 출범 1주년을 맞았습니다. 지주사 회장으로서 중점을 둘 역할은 무엇인가요?
▶우선 자회사 간의 시너지 효과 창출입니다. 다음으로 무한경쟁시대에 적극 대처하기 위해 종합금융그룹으로서 자회사 추가 설립도 적극 추진할 것입니다. 부산 금융중심도시 발전을 견인할 수 있는 크고 강한 지역금융기관으로 거듭날 수 있도록 관련 분야 전문가를 적극 영입하고 육성해나갈 계획입니다. 편집부국장
■ 결단의 순간
- 평생직장 나와 신생 은행으로
- IMF 직전 대기업 여신 회수
이장호 BS금융지주회장은 행원에서 행장, 지주회사 회장에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평가받는다. 이 회장은 오늘이 있기까지 세 차례 결단의 순간을 기억하고 있었다.
#1973년 외환은행에서 부산은행으로
당시 외환은행은 한국은행과 함께 미래가 보장되는 선망의 직장이었다. 반면 부산은행은 생긴지 5년에 불과한 신생 지방은행. 이 행장은 "신생 은행에서 새로운 역사를 써보라"는 선배의 권유를 받고 처음엔 망설였다. 하지만 부산은행을 일으키는 것이 곧 고향 부산의 발전에 기여하는 것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자 결단을 내렸다.
#IMF 때 대기업인 여신 회수
IMF의 징후가 드러나기 시작한 1997년 서울지점장이던 이 회장은 국내 굴지의 기업인 D그룹의 여신 회수를 추진했다. 여신 규모는 무려 2000억 원에 달했다. 당시 D그룹은 워낙 잘 나가는 상황이어서 대부분 은행들은 걱정하지 않고 있었다. 하지만 이 회장의 실물감각은 남달랐다. 얼마 가지 않아 그룹은 부실투성이임이 드러났고 결국 도산했다. 만약 이 회장이 D그룹 여신을 회수하지 못했다면 부산은행도 IMF 파고를 넘기 힘들었을지 모른다. 2년 후 이 회장은 임원으로 승진했다.
#2006년 은행장 후보 신청
심훈 부산은행장이 3선을 포기한 뒤 후임 행장 자리를 놓고 치열한 경합이 벌어졌다. 부산상고 출신의 대통령 재임 시절이어서 역학관계도 복잡했다. 처음 분위기는 매우 불리하게 돌아가 이 회장은 아예 신청을 포기할까도 생각했다. 하지만 은행장후보추천위원회의 객관적인 평가에 모든 것을 맡기기로 결심했다. 결국 그 결정은 옳았다.
● 약 력
▶1947년 부산 출생 ▶1965년 부산상고 졸업 ▶1965년 한국은행 입행 ▶1967년 한국외환은행 입행 ▶1973년 부산은행 입행 ▶1987년 부평남지점장 ▶1996년 국제금융부장 ▶1997년 서울지점장 ▶2000년 부행장보대우 ▶2003년 부행장 ▶2006년 부산은행장 ▶2011년 부산은행장 겸 BS금융지주 회장 ▶현 2012년 BS금융지주 회장 ▶부인 김정자(57) 씨와 1남1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