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쟁의 아픔과 희망 담아낸 현인의 '굳세어라 금순아'부터
- 사직 주제가 '부산갈매기'까지 부산 대표하는 노래들 담아내
- 걸출한 가수들 잇따라 배출, 끊어진 명맥 다시 이어지길
흔히 부산 사직야구장을 '세계에서 가장 큰 노래방'이라고 표현한다. '부산 갈매기' '돌아와요 부산항에' 등 부산을 상징하는 노래를 3만여 관중이 합창하는 광경은 전 세계 어느 야구장에서도 볼 수 없다. 박재환 부산대 사회학과 명예교수는 "'부산 갈매기'는 부산을 통합하는 에너지"라고 말했다. 한국인들의 여가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것이 노래이고, 이를 즐기는 대표주자는 부산 사람이다. 개항과 일제 강점기, 광복과 6·25전쟁 그리고 근대화. 그 속에서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숨가쁘게 살아온 서민의 애환이 서려 있는 노래비가 부산 곳곳에 세워져 있다.
■굳세어라 금순아-이별과 그리움
6·25전쟁으로 팔도 사람들이 모여들면서 부산에 대중문화의 토양이 형성됐다. 총성은 없었지만 전쟁으로 인한 아픔의 울림은 부산에 남아 있다.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 일제 강점기 때 노래 활동을 시작한 이른바 '가수 1세대'의 대표격인 현인이 노래한 '굳세어라 금순아'는 그 중 가장 잘 알려진 울림이다. "금순아 보고싶구나/고향꿈도 그리워진다/영도다리 난간위에/초생달만 외로이 떴다/철의 장막 모진설움/바꿔서 살아를 간들/천지간에 너와 난데/변함 있으랴"는 노랫말의 배경이 되는 영도다리를 건너다보면, 현인 동상과 '굳세어라 금순아' 노래비를 만날 수 있다.
국제시장에서 장사를 하면서 북에 남겨두고 온 가족들을 영도다리 위에서 그리워하는 노래 가사의 주인공이 어디 한둘이었으랴. 피란 온 젊은 사람에게 마음을 주었던
'경상도 아가씨'가 휴전과 함께 고향으로 돌아가는 이를 붙잡지 못하고 떠나 보내야 하는 마음은 또 어떠했을까. 전쟁 때문에 생이별하고 만나고 전쟁이 끝나자 또 이별을 해야 했던 부산에는 사무치는 그리움, 애잔한 눈물이 가득했을 것이다.
■해운대 엘레지-사랑과 이별
6·25전쟁이 끝나고 부산에는 이전과 다른 애잔함이 감돌았다. 해운대해수욕장에 서 있는 '해운대 엘레지'의 "언제까지나 언제까지나/헤어지지 말자고/맹세를 하고 다짐을 하던//세월은 가고 너도 또 가고/나만 혼자 외로이/그 때 그 시절 그리운 시절/못 잊어 내가 운다"라는 노랫말처럼, 해운대와 용두산과 같은 곳은 젊은 연인들이 사랑을 속삭이고 영원한 사랑을 약속하는 장소였다. 영원할 줄 알았던 사랑이 깨져 그 약속을 추억으로 떠올리는 장소가 되기도 했다.
이 시기부터 해운대, 남포동, 용두산공원은 사랑하는 연인이 자주 찾는 장소가 됐다. '용두산 엘레지'가 울려퍼졌던 용두산공원에는 몇년 전부터 '사랑의 자물쇠'존이 만들어져 연인끼리 자물쇠를 채우며 변치 않는 사랑을 약속하는 공간이다.
1960년 이후 부산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의 요충지였다. 역동적인 성장의 이미지는 부산항의 컨테이너 박스로 상징되지만 무역선, 원양어선이 한 척 한 척 출발할 때마다 떠나가는 이의 무사귀환을 기원하고, 그리움에 영도다리 위에서 흘러내린 눈물은 부산 바닷물을 더 짜게 만들었을 것이다. 특히 원양어선의 마도로스와 부산 아가씨와의 사랑과 이별은 부산에서 흔했다. '잘 있거라 부산항', '부산 마도로스', '아메리칸 마도로스'는 당시 '다이내믹'한 부산의 슬픔을 잘 표현하고 있다.
■돌아와요 부산항에-대중문화의 핵
해운대해수욕장 해안도로에 노래비가 있는 조용필의 대표곡 '돌아와요 부산항에'는 말이 필요없는 국민가요다. '돌아와요 부산항에'가 담긴 조용필의 데뷔 음반은 '노래가 너무 일본스럽다'며 박대당해 앨범 홍보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사장되는 듯했다. 그러나 부산의 새벽다방 등 소위 다운타운가를 중심으로 급속도로 퍼졌다. 이에 힘입어 노래를 재녹음하던 1975년, 남북의 냉전 기류로 그동안 고향을 방문하지 못하던 조총련계 재일동포들이 고국을 방문하게 됐다. 시대적 상황에서 통속적인 사랑노래 '돌아와요 부산항에'의 "그리운 내 님아" 부분이 "그리운 내 형제여"로 수정되는 등 시대상을 담은 노래로 환골탈태하면서 전 국민의 애환을 담아내게 됐다.
이 노래는 한국 노래의 일본 진출을 위한 선봉장 역할을 했다. 1980년대 일본 진출을 시도한 조용필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대표곡으로 불렀으며, 그의 앨범은 일본에서 600만 장이 팔려 일본 한류의 효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처럼 6·25 때 전쟁을 피해, 경제발전기에는 일자리를 찾아 사람들이 몰리면서 부산은 대중문화의 중심지로 꽃을 피웠다.
■'부산갈매기' 다시 날아오르길…
부산에서 노래하던 젊은이들은 떠나고 있다. 부산에 살면서 부산을 노래할 젊은 밴드들은 부산대나 경성대가 아닌 서울의 홍익대 앞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다. 나훈아, 현철, 설운도, 김건모, 이승환 등 굵직한 대중가수를 배출했던 부산에서 더 이상 대중가요계를 뒤흔드는 스타가 나오고 있지 않다. 부산의 장기적인 경제 침체는 더 이상 팔도 사람을 모이게 하는 환경이 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많은 젊은이들이 일자리를 찾아 부산을 떠나고 있는 것은 부산이 해결해야 할 가장 큰 숙제로 꼽힌다.
이들이 부산에 다시 돌아와 사직구장을 넘어 부산 전역에서 '부산갈매기'가 울려퍼지고, 부산 곳곳에 새로운 노래비가 더 많이 세워지는 날이 오기를 꿈꾸면서, 오늘도 부산은 '돌아와요 부산항에'를 기억하고 노래한다.
공동취재= 조정래 부산대 사회학 박사과정
공동기획= 국제신문·대안사회를 위한 일상생활연구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