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월 지방재정법 개정안 시행을 앞두고 부산지역 각 구·군이 주민참여예산제 조례 제정에 바쁘지만 정작 조례안에 '주민'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예산 편성에 대한 주민 의견을 개진하는 위원회는 구청 간부나 전문가로 채워지는 바람에 정작 주민이 참여하는 길은 막혀 있다는 지적이다. 

3일 현재 부산지역 16개 구·군 중 '주민참여예산제 운영 조례안'에 대해 입법예고 절차를 밟고 있는 곳은 2곳(표 참조)이다. 9개 구는 막 입법예고를 끝내고 의회 상정을 기다리고 있고, 3개 구는 조례안을 준비 중이다. 동래구와 해운대구는 이미 2008년부터 시행하고 있다. 

각 기초단체가 너도나도 주민참여예산제 조례 제정에 나선 이유는 현재 임의 규정인 이 제도가 오는 9월부터 의무 규정으로 바뀌기 때문이다. 오는 9월 9일부터 시행되는 지방재정법 개정안 제39조는 '지방자치단체의 장은 예산편성과정에 주민이 참여할 수 있는 절차를 마련하여 시행하여야 한다'고 못박고 있다. 이 제도가 시행되면 자치단체장과 공무원들이 독점하던 예산 편성 과정에 주민이 참여, 지방재정 운영에 투명성과 공정성이 더해질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그러나 부산지역 각 구·군이 개정안 시행에 맞춰 급하게 조례안을 만들다보니 정작 주민의 참여 길이 막힌 '부실안'이 속출하고 있다. 

조례의 핵심으로 예산 편성에 대한 주민 의견을 제출·수렴하는 '주민참여예산위원회'에 구·군청 간부나 전문가, 동장 추천 인사만 임명하도록 규정한 조례안이 다수다. 서구의 경우 위원 20명이 ▷주민복지국장 도시국장 기획감사실장 ▷동장 추천 인사 ▷대학교수 등 지방재정에 전문 지식이 있는 사람으로 구성되고 심지어 위원장은 부구청장, 부위원장은 총무국장이 맡는다. 남구는 전체 위원 30명 중 10명을 구청 국·실·과장으로 임명할 수 있도록 규정했다. 강서구는 아예 위원회 구성·운영 세부 규정이 없어 과연 주민들이 예산 편성에 참여할 길이 있을지 의문이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주민참여예산제 모범 사례로 주목받는 울산 동구나 광주 북구가 주민 역량을 높이기 위해 조례로 규정한 주민예산학교(연구회) 같은 기구는 기대할 수 없다. 바닥 민심을 듣는 동단위 지역위원회나 예산의 분야별 의견을 개진하는 분과위원회도 부산지역 조례안에서는 찾아볼 수 없다.

이에 대해 손동호 부산참여자치시민연대 사무처장은 "구청장은 고유권한인 예산 편성권이, 구의원은 예산 심의권이 축소될까봐 주민참여예산제 시행에 부정적이다"며 "부산시를 비롯한 각 구·군은 9월 전까지 조례를 제정해야 한다는 생각을 버리고 주민 참여를 실질적으로 보장할 수 있는 조례안을 공청회 등을 통해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