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일대에서 항일무장 독립운동을 지휘하다 일본군에 체포돼 순국한 경남 산청군 덕산 송하 출신 항일의병대장 박동의(?~1908) 선생이 순국 103년 만인 제92주년 3·1절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는다. 이번 서훈은 하동 독립운동연구소 정재상(45) 소장이 2007년 5월 사료발굴과 함께 국가보훈처에 신청해 결실을 보게 됐다.
박 의병장은 한일 강제병합 직전인 1905~1908년 250여 명의 의병을 규합, 독자적으로 의병대를 조직한 뒤 산청 하동 함양 진주 등 지리산 일대에서 활동하며 일본군과 수차례 격전을 벌여 큰 타격을 가했다. 그는 특히 지리산 벽계암을 진영으로 삼고 4개의 의병진을 구성해 일본군과 맞서 싸웠다.
박 의병장에 대한 당시 일본경찰의 비밀문서에는 '1908년 3월 26일 밤 11시 박 의병장과 휘하 의병 50명이 산청경찰서를 습격해 불태우고 산청군청 사령실과 군수 관사를 불태웠다'고 기록돼 있다. 또 박 의병장은 1908년 4월 18일 하동 출신 의병장 박인환(박매지) 유명국 등과 함께 합동작전을 벌여 단성경찰서를 습격, 건물 전체를 불태우기도 했다. 박 의병장은 1908년 10월 15일 산청군 덕산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 체포돼 피살됐다.
또 마산일원에서 용진단이란 비밀결사를 조직, 독립운동가의 활동사실을 홍보하다 옥살이를 한 고 이정문(1952년 작고) 선생도 대통령 표창을 받는다. 이정문 선생은 1921년 12월께 조선독립을 목적으로 용진단을 조직, 총무를 맡으면서 당시 청산리 전투 대승 사실이 담긴 격문을 등사해 배포하다 일경에 적발됐다. 이정문 선생은 1년간 옥고를 치르고 출옥한 뒤에도 거리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다 다시 검거돼 1년간 징역살이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