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계' 발행인이자 민족통일 운동가였던 장준하 씨가 1975년 8월17일 경기도 포천군 이동면 약사봉 계곡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김수환 추기경은 그를 추모하며 강론했다. "그의 죽음은 별이 떨어진 것이 아니라 죽어서 새로운 빛이 되어 우리의 갈 길을 밝혀 주기 위하여 잠시 숨은 것 뿐입니다."
경찰은 장 씨가 등산 도중 실족, 추락사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그때나 지금이나 없다. 12m나 되는 높이의 벼랑에서 떨어졌다면 당연히 전신에 골절상, 타박상이 있어야 하는데 전혀 없었고, 옷도 멀쩡했다.
그는 '행동하는 지식인'이었다. 일제에 학병으로 끌려가 탈출해 임시정부에서 활약하다 해방 후 귀국, 김구 주석을 도왔다. 1953년 월간 종합교양지 '사상계'를 발행하면서 자유언론투쟁에 앞장섰던 그는 1970년 5월 김지하의 담시 '오적(五敵)'을 게재한 것이 빌미가 돼 그해 9월 지령 205호로 폐간당한다. 그는 특히 박정희 정권과 정면에서 맞섰으며, 1973년 12월 유신헌법의 잘못을 지적하며 '개헌청원 백만인 서명운동'을 이끌어 생애 9번째 투옥된다. 박정희에게 그는 '눈엣가시'같은 존재였다. 독재권력에 맞서 꺾이지 않는 의지로 민주주의와 자유, 민권을 외쳤기 때문이다. '권력에 의한 타살' 의혹은 그래서 나왔다.
파주 천주교묘지 추모비에는 "빼앗긴 민주주의의 쟁취, 고루 잘사는 사회, 민족의 자주·평화·통일 운동의 위대한 지도자"라고 적혀있다. 그를 숭모한 후배 동료 선배 동지들이 그의 생애를 기려 새겼다. '돌베개' 장준하의 꿈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