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일 오전 9시 서울 명동성당. 잠시 그쳤던 눈이 다시 흩날리기 시작했다. 어제 밤새도록 내린 눈은 성당 곳곳에 잔설을 남겨놓고 있었다. 명동성당 입구는 눈으로 질척거렸다. 손끝을 얼어붙게 만드는 영하의 날씨와 온몸을 웅크리게 하는 삭풍은 명동성당으로 향하는 추모객들의 발길을 더디게 만들었다. 하지만 이날 명동성당에서 열린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에는 1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참가했다.
명동성당에는 오전 7시부터 추모객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장례미사가 열리는 본관 대성전뿐만 아니라 바깥 뜰 곳곳에도 김 추기경의 선종을 애도하는 사람들로 가득찼다. 대성전에 들어가지 못한 사람들은 땅바닥에 돗자리를 깔고 앉아 김 추기경의 마지막 모습을 지켜봤다. 추모객들은 2시간 동안 진행된 장례미사에서 한치 흐트러짐 없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흩날리던 눈발은 오전 10시 정각, 찾아든 햇빛에 밀려 사라졌다. 성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라'가 울려퍼지자 몇몇 사람들은 눈물을 떨구었다.
뇌성마비 2급 장애인으로 휠체어를 타고 장례미사에 혼자 참가한 권순욱(35) 씨는 "어머니가 위험하다고 가지 말라고 하셨는데 추기경님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싶어 2시간 동안 지하철을 타고 왔다"면서 "추기경님이 좋은 곳으로 가셔서 그곳에서도 우리를 인도해주셨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지난해 6월 대전에서 김 추기경과 인연을 맺은 벨기에 출신의 로렌지아(39) 씨도 "3년 전 선교 활동을 위해 한국에 온 나를 추기경님이 많이 격려해 주셨다"며 "나도 남에게 베풀고 남을 사랑하는 삶을 살고 싶다"며 눈시울을 붉혔다.
백일이 갓 넘은 아이를 데리고 장례미사에 참가한 류수경(32) 씨는 "항상 낮은 곳을 향하셨던 범종교적인 분이셨는데 이렇게 가시니 너무 마음이 아프다"면서 "우리 아이에게 추기경님의 마지막 길을 보여주고 싶어 왔다"고 밝혔다.
오전 11시 40분. 김 추기경의 영정을 따라 8명의 사제들이 관을 들고 대성전을 빠져나왔다. 조종(弔鐘)이 울려퍼졌다. 추모객이 한명두명씩 흐느끼기 시작했다. 여기저기서 "추기경님 사랑합니다, 사랑합니다…" 울먹이는 소리가 터져나왔다. 운구차가 움직이자 추모객들은 피붙이를 먼 곳으로 떠나보내는 듯 운구차를 쓸어내렸다. 운구차가 성당을 떠나자 사람들은 성호를 긋고 기도를 했으며 여성 신자들은 미사포를 벗어 흔들었다. 성당 입구 인도에서 김 추기경을 기다리던 사람들도 운구차가 보이자 연신 눈물을 훔치며 "잘 가세요, 편히 쉬세요"라고 외쳤다.
오전 12시 20분. 김 추기경의 장례행렬이 성당을 완전히 빠져나갔다. 하지만 추모객들은 명동성당에 삼삼오오 모여 기도를 하고 성경을 낭송했다. 일부는 대성전 내부 추기경의 관이 놓였던 자리에서 눈을 감은 채 기도를 올리기도 했다.
 |
| 20일 김수환 추기경의 장례미사가 열린 명동성당 대성전에 입장하지 못한 신자들이 성당 뜰에서 추모미사를 함께 하고 있다. 이용우 기자 ywlee@kookje.co.kr |
조윤순(47) 씨는 "이틀 전 조문을 왔을 때 지하철 역까지 줄을 서있던 사람들의 모습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너무 추워서 손끝이 아리지만 이보다 마음이 더 아프다"라며 눈물로 말을 잇지 못했다.
한편 경찰은 이날 김 추기경의 장례행렬에 대통령 이·취임식에 쓰이는 오픈카 2대와 사이드카 13대를 배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