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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년 전 백혈병 완치 판정을 받은 하상훈씨. 막노동부터 청원경찰까지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을 만큼 건강하고 전기기기 자격증도 있지만 직장을 찾는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백혈병 병력이 그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박수현기자 parksh@kookje.co.kr |
막노동, 음식점 종업원, 우체국 청원경찰….
하상훈(24·부산 해운대구 반여동)씨는 파이터다. 그도 인정한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안 해본 아르바이트가 없다. "막노동만은 안돼"라는 어머니의 만류도 듣지 않았다. 용돈을 벌기 위해 일부러 야간대학(부산정보대 전기전자과)에 다녔다. 2학년 때는 우체국에서 계약직 청원경찰로 일했다. 오전 8시30분부터 오후 6시까지 온종일 근무하고 수업을 들었지만 항상 웃음을 잃지 않았다.
그러나 삶이 만만치 않다는 사실을 요즘은 절감한다. 어디에서도 그에게 일자리를 주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해에만 10여곳에 입사원서를 넣었지만 모두 낙방했다. 중학교 1학년 때 앓았던 '급성 골수성 백혈병'이 발목을 잡고 있는 것이다. 면접장에 들어설 때 마다 나오는 질문. "왜 군대를 안 갔어요?" "어렸을 때 백혈병을 앓았습니다." 그러면 어김없이 "어, 백혈병 앓으면 군대 안가나" 또는 "회사 와서 아프면 안되는데…"라는 반응이 돌아온다. 그리곤 연락이 없다. 매번 '담담하게 받아들이자'고 다짐하면서도,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하씨는 1995년 5월 동아대병원에서 백혈병 진단을 받았다. 골수이식을 받지 못해 6개월간 항암치료에만 매달렸다. 학교는 1년간 휴학했다. 큰 수술을 3번이나 받고서야 살아난 그를, 담당의였던 소아암의 권위자 이영호(현 한양대병원) 박사는 '의지의 한국인'이라고 불렀다.
지난 2000년 '완치 판정'을 받은 그는 일찌감치 세상으로 나섰다. 고등학교를 다니면서 아르바이트에 도전한 것이다. 5000만원이 넘는 치료비를 대느라 부쩍 늙어버린 부모님에게 더 이상 아픔이 되지 않기 위해 무수히 자신을 채찍질했다. 틈틈이 공부해 전기기기 자격증도 땄다. 항암치료를 받느라 왜소해졌던 키도 177㎝까지 컸다. '백혈병'을 이해해주는 여자친구도 생겼다. "새 생명을 얻었으니 두려울 게 없었죠. 치료하느라 잃어버린 세월을 보상받기 위해 다른 사람보다 배는 열심히 살았어요."
눈에 보이지 않던 커다란 '벽'은 상아탑을 떠나서야 나타났다. 편견과 차별도 처음 경험했다. "완치 판정을 받고 5년이 지났는데도 재발 징후나 합병증이 없어요. 대기업이나 많은 월급을 바라는 것도 아니예요. 그런데 일할 기회는 없더군요."
지난 2005년 1월 전자부품 중소기업의 사장은 '재발이 걱정돼서' 퇴짜를 놨다. 한달 후 이력서를 넣은 경비회사는 '체력이 약할 것 같아서' 채용을 거부했다. 그나마 이력서에 '백혈병을 앓았다'는 병력을 적었을 경우에는 면접 기회조차 받지 못했다. "소아암 환자는 군대보다 더 힘들고 고통스럽다는 항암치료를 3년이나 견뎌냅니다. 정신력은 다른 사람보다 월등히 뛰어나지만 사회에선 이해를 못해요."
그러나 하씨가 그리는 미래는 '희망적'이다. "물론 오만일 수도 있고 오산일 수도 있어요. 하지만 생각하면 뭘 하나요. 저한테 하나 좋을 게 없는데요. 어렸을 때부터 그랬어요. 전 돌이킬 수 없는 일은 돌아보지 않아요. 그저 열심히 살 뿐이죠."
아버지가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배달을 하는 장현인(가명·30)씨. 중학교 2학년때 골육종을 앓아 2년간 학교를 쉬었다. 중·고교 검정고시를 거쳐 경성대를 졸업했지만 취업의 문은 높기만 했다. 원서를 넣은 40여곳 모두 소아암 병력을 문제 삼았다. "주변에선 '취업난이 워낙 심하니까'라고 위로해 주지만 마음은 결코 편치 않아요. 이제는 부모님께 효도할 나이인데…."
고등학교 1학년때 골수성 백혈병을 앓았던 김진호(가명·23)씨. 2001년 자퇴하고 검정고시에 합격, 곧바로 사회로 뛰어들었다. 5년간 부산·경남의 중소기업을 떠돌아 다녔다. 소아암 병력을 숨기고 입사했다가 뒤늦게 밝혀져 그만둔 적도 있었다.
다행히 현재 일하는 마산의 한 기계부품공장 사장은 그를 이해해주고 정규직으로 채용했다. 활달하고 쾌활한 성격 덕택에 회식 자리에선 인기가 높다.
그 동안 겪었던 고생담을 이야기 하던 그는 공장으로 발길을 돌리며 한마디를 남겼다. "소아암을 이겨낸 사람들의 공통적 특징은 강한 정신력과 적극적인 사고입니다. 소아암 병력이라는 편견만으로 소아암 환자들을 예단하지 않았으면 해요. 능력을 봐 달라는 거죠."
사회1부 광역이슈팀=이노성 배성재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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