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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일 부산 연제구 거제동 국제신문 4층 대강당에서 '한국의 슈바이처'로 추앙받는 성산 장기려 박사 10주기 추모식이 열리고 있다. 김성효기자 kimsh@kookje.co.kr |
◇ 장기려박사의 삶과 철학
- 천막병원서 키운 인술 44년
장기려 박사는 사랑과 봉사, 청빈한 삶으로 평생을 가난한 이웃과 부산시민에게 헌신했다.
의사가 된 동기를 "의사를 한 번도 못 보고 죽어가는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서"라고 말한 장 박사는 1950년 겨울 임시수도 부산에서 천막병원을 세운 것을 시작으로 44년 동안이나 부산에서 인술을 베풀다 1995년 12월25일 타계했다.
평안북도 용천 출신인 장 박사는 1932년 경성의전을 졸업하고 당시 국내 최고의 외과의사였던 백인제(백병원 설립자) 선생의 수제자로 경성의전 외과에 근무했다. 이때 그는 맹장염을 일으키는 세균에 대한 논문(충수염 및 충수염성 복막염의 세균학적 연구)을 완성했고 1940년 이 논문으로 일본 나고야대학에서 의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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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기려 박사가 1950년 12월 둘째 아들만 데리고 월남, 이듬해 부산 영도에 세운 천막병원이 복음병원이다.(1950년대 영도 복음병원) |
평양 연합기독(기흘)병원에 근무하던 장 박사는 해방후 평양도립병원장과 평양의과대학(김일성대학) 외과교수로 재직하던 중 한국전쟁으로 둘째 아들 가용(70·전 서울대 해부학과 교수)씨만 데리고 월남했다.
장 박사는 이후 복음병원장(1951~1976년) 청십자병원장(1975~1983년) 부산아동병원장(1976년) 부산백병원 명예원장(1983년)으로 부산에서 인술을 폈다. 치료비를 낼 수 없는 환자에게 병원 뒷문으로 도망치도록 알려준 장 박사의 일화는 유명하다. 또 서울의대 교수(1953~1956년), 부산의대 교수 및 의대학장(1956~1961년), 서울 가톨릭의대 교수(1965~1972년), 복음간호대학장(1968~1979년)을 지내며 부산의대에 외과를 신설하는 등 의학발전과 의학도 양성에 헌신했다.
외과 전문의인 그는 1959년 우리나라 최초로 간암 환자의 간암 부위 대량 절제수술에 성공해 대한의학협회 학술상을 받기도 했다. 이러한 활동으로 인해 그의 생전 부산은 가난한 사람과 난치병 환자들에게 복음과 희망의 땅이었고 국내 의학기술의 중심지로 주목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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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둘째 아들가족(앞줄 왼쪽부터장기려 박사, 가용씨, 뒷줄 왼쪽부터 손자 여구, 며느리 윤순자, 손녀 예원 |
장 박사는 의술을 통한 사회봉사를 개인적 사랑이 아니라, 사회적 제도적인 차원에서 마련하기 위해 1968년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을 부산에서 설립했다. '건강할 때 서로 돕고, 아플 때 도움 받자'라는 청십자 의료보험조합의 정신은 국민 의료보험제도로 발전하여 그의 뜻대로 이 땅에 돈이 없어 병원에 가지 못하는 사람이 없도록 했다. 이러한 공로로 국민훈장 동백장(1976), 막사이사이 사회봉사상(1979), 제1회 호암상 등을 수상했으며, 숭고한 의사의 삶을 적은 춘원 이광수 소설 '사랑'의 주인공도 장 박사로 알려져 있다. 이산가족인 그는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떨어져 있어도 사랑은 영원하다"는 말로 대신했으며 북한에 부인과 5남매가 살아있다는 것을 확인하고도 결국 생전에 만나지 못했다.
북한의 가족으로는 부인 김봉숙 여사(2004년 사망)와 큰아들 택용(1998년 사망·약사), 셋째아들 인용(2004년 사망·강계의대 교수), 장녀 신용(제분공장연구원), 차녀 성용(핵물리학자), 막내딸 진용(교원)씨가 있으며 서울의 둘째 아들 가용씨는 현재 당뇨합병증으로 거동이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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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박사는 1975년 복음병원에서 정년퇴임한 후에도 집 한 채 없이 고신대 복음병원이 병원 옥상에 마련해 준 20여평 관사에서 무소유를 실천했다.(송도 사택에서) |
◇ 추모사업의 방향
- 의학상 제정· 기념관 설립 추진
장기려 박사의 추모사업은 크게 '장기려의학상'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헌정' '장기려 기념관 건립' 및 무료의료봉사 활동 등 4가지이다.
장기려 박사 서거 10주기 추모식을 계기로 국제신문은 먼저 '장기려 의학상'을 제정해 내년부터 수여키로 했다. 장기려 의학상은 생전 국내에서 가장 뛰어난 외과의사이자 의학도 양성에 헌신하고 인술로 사회에 봉사한 장기려 박사를 기리기 위해서 매년 장 박사의 추모식때 시상할 계획이다.
장기려 박사 기념관은 부산과학기술협의회가 장기려기념사업회, 의료 및 시민단체 등과 공동으로 범 시민 차원에서 추진하는 것으로 장 박사의 탄생 100주년에 즈음한 2009년께 개관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대상지로는 장기려 박사가 청십자의료보험조합 운동을 폈던 부산 동구 초량동 청십자병원이 우선적으로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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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박사는 1959년 국내 최초로 간 대량 절제수술에 성공한 의과학자이며 외과 전문의였다.(환자 진료에 몰두하는 모습) |
되고 있다. 현재 부산 동래구 온천동에는 우장춘 기념관이 건립되어 있으며 기념관 앞 도로는 우장춘로(路)로 명명되어 있다. 무료진료활동은 현재 부산과 서울의 4개 지역에서 노숙자 및 외국인 근로자 무료진료활동이 펼쳐지고 있으나 이를 더욱 확대하는 방향으로 전개될 예정이다. 특히 서울 강서구 등촌동에 최근 설립된 장기려 기념 무료진료소의 역할을 확대하고, 부산지역에서도 노숙자와 외국인근로자들을 위한 무료의료 활동에 보다 많은 의료인들이 참여할 수 있도록 추진한다.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은 정부가 지난 2003년 서울 종로구 국립서울과학관에 설립한 시설로 허준 장영실 우장춘 등과 같은 과학선현 14명이 헌정되어 있다.
부산과학기술협의회는 장기려 박사가 간암 환자의 간 부위를 국내 최초로 대량절제하는 등 뛰어난 의학자였지만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자신의 의학기술을 베푼 점을 기려 지난 10월 정부에 과학기술인 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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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 박사는 북한에 있는 가족들과 끝내 재회하지 못하고 1995년 86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서울대병원에서 열린 장례식) |
헌정을 요청했다. 손동운기자 dwsoh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