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시와 부산아시안게임조직위원회가 지난해 9월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와 시드니협정을 맺으면서 작성한 이면 계약서는 한마디로 ‘현대판 노예문서’와 가까울 정도로 굴욕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부산시가 지난 95년 아시안게임 유치도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당초부터 실현 불가능한 3천5백만달러의 기부금을 내겠다고 약속하고 이행보증금으로 1백만달러까지 걸었으나 약속을 지킬 수 없게 되자 OCA와 갈등을 빚기 시작했다.
또 조직위는 ‘아시안게임 수익사업 전권은 OCA에 있다’는 OCA헌장과 개최도시계약서 등을 깨고 97년 동아시안게임을 앞둔 96년 한빛은행과 삼성화재, 대한항공 등 3개업체와 독자적으로 1백24억원 상당의 휘장계약을 맺어 OCA를 자극했다.
OCA는 몇차례 경고끝에 지난해 8월 아시안게임 개최권과 부산 OCA총회 박탈 등을 거론하며 조직위를 압박했다.
다급해진 당시 조직위 한기복 사무총장은 로비자금으로 사용할 예비비 5억6천5백84만원을 인출, 올림픽이 열리던 호주 시드니로 갔다. 부산대표단은 시드니 시내 리젠트호텔에서 OCA 무탈레브 사무총장과 만나 시드니협정서를 맺었다.
당시 언론에 공개한 합의 사항은 3가지. 첫째, 기부금 3천5백만달러 및 개최권 박탈 재론 금지, 둘째 11월 부산 IOC 총회 예정대로 개최, 셋째 수익사업을 포함한 제반사항에 대해서 OCA헌장 및 개최도시 계약서 준수 등이다.
일단 발표된 사항만 보면 부산시와 조직위가 손해 본 것이 없는 협상이었다. 오히려 그동안 조직위와 시가 골치를 3천5백만달러 문제가 완전 해결된 잘 된 협상이었다. 셋째 조항은 OCA헌장 등에 이미 명시돼 있는 내용이기 때문에 더욱 그랬다.
하지만 OCA는 비공개 이면계약을 강요했다. 외국 선수 임원 1천5백명에 대한 항공·숙박료 외에 협약서 이행을 보증하는 성격의 2천만달러의 이행기금을 홍콩 상하이은행에 예치하라는 요구였다. 아시안게임 개최때까지 자신들의 요구를 확실히 관철하면서 조직위의 발목을 잡아 두겠다는 계산이었다.
또 이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면 예치금을 몰수하겠다는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조항까지 삽입, 이 계약서가 투명하지 못하고 부적절하다는 것을 자인했다.
이 상황에서 안상영 부산시장과 조직위 한 총장은 별다른 협상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그만 협정서에 사인하고 말았다. 현장에 있었던 관계자들에 따르면 김운용 위원장은 이 이면계약의 불공정성이 마음에 걸린 듯 자신은 빠지고 대한체육회 임원을 시켜 대신 사인하게 했다고 한다.
조직위는 이후 97년 동아시안게임 당시 한빛은행과 휘장부여권 계약을 체결한 후 받은 1백1억원과 광고 수익사업 등으로 모아둔 돈으로 2천만달러를 만들어 협약 체결 한달후인 지난해 10월 중순 홍콩 상하이은행에 예치했다.
예치금은 ‘수익사업 등 제반 사항에 대해 OCA가 전권을 가지는 것에 대해 조직위가 반하지 않는 조건’으로 오는 10월16일 1차로 1천만달러, 아시안게임 폐막 두달후인 내년 12월 16일 2차로 1천만달러를 조직위가 되돌려 받기로 돼있다.
조직위 사정에 밝은 한 관계자는 “이면계약이 너무나 굴욕적이고 수치스러운 내용을 담고 있었지만 일단 아시안게임 개최권 박탈 등 발등에 떨어진 문제부터 해결하자는 안이한 생각에서 OCA의 요구를 받아들인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OCA는 이 사실이 외부로 알려지면 예치금을 몰수 하겠다고 했으나 아직 별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다. 예치금 몰수를 실행에 옮길 경우 예상되는 한국국민들의 거센 반발을 쉽게 볼 수 없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극단적인 경우 부산이 아시안게임 개최권을 전격 반납할 경우 내년 아시안게임을 사실상 치를 수 없다는 급박한 사정도 고려한 것으로 여겨진다.
부산지역 체육계 한 인사는 “아시안게임을 1년 앞둔 상황에서 OCA가 한국민들의 감정을 자극하는 행동을 쉽게 할 수는 없을 것”이라며 “현재 조직위도 예치금 문제를 빠른 시일내 해결하기 위해 움직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 신수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