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안게임 유치라는 ‘열매’는 달콤했지만 결국 그 열매를 따기 위해 둔 무리수가 끝까지 발목을 잡고 있다.”(사진은 지난 95년 5월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유치를 이끈 대표단이 부산시청 앞에서 환영식을 갖고 있다.)
최근 터진 굴욕적인 시드니 이면계약서 사태 등으로 난국에 봉착한 부산아시안게임을 보며 지난 95년 당시 아시안게임 유치에 발벗고 나선 한 인사가 내뱉은 넋두리다.
이 말처럼 현재 부산아시안게임 위기의 근원은 아시안게임 유치당시로 거슬러 올라갈 수밖에 없다.
문제의 핵심은 유치당시 공약사항으로 내걸었던 3천5백만달러의 기부금. 부산시는 2002년 아시안게임 유치 도시를 결정한 지난 95년 5월 제14차 아시아올림픽평의회(OCA) 서울총회에서 대만의 가오슝과 치열한 유치경쟁을 벌였다. 당시 김기재(金杞載) 부산시장은 대회 유치의 당위성을 역설하며 △마케팅 및 스폰서를 통한 수입중 3천5백만 달러의 기부금 납부 △각국 선수단 30명에 대한 체재비 제공 △개별적으로 무료항공권 또는 무료숙박을 요구할 경우 추가 보조금 제공 △이의 이행보증을 위해 1백만달러 OCA예치 등을 약속했다.
이후 잠잠하던 이 문제는 4년 7개월이 지난 98년 12월 방콕아시안게임 개최 기간 중 다시 OCA측에 의해 제기된 뒤 1년여가 지난 99년 11월부터 본격적으로 문제화되기 시작했다.
OCA는 당시 조직위에 보낸 공문을 통해 3천5백만 달러의 기부금 외에 부산시가 5천만 달러의 발전기금(이후 이 문제는 거론 안됨)과 아시안게임에 출전하는 전 선수단에 무료 숙식과 항공권을 제공키로 했다고 주장했다.
이에대해 아시안게임조직위는 “마케팅과 스폰서 등을 통한 수익금이 총 1억5백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보고 OCA 헌장상 수익금의 3분의 1(3천5백만 달러)을 OCA에 기부해야 한다는 규정에 따라 제시된 금액”이라고 반박했으나 OCA측을 설득하는데 실패했다.
당시 국내에 몰아닥친 IMF사태 등으로 인한 경제적 위기상황도 이 같은 거액을 OCA에 기부하는데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김기재 전 시장측 관계자는 “당시 3천5백만달러를 제시한 것은 흑자대회로 치러질 경우를 감안해서 나온 것”이라며 “이후 부산시와 조직위가 뛰어난 협상력을 발휘했으면 시드니 이면 계약과 같은 굴욕적인 문제는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후 양측의 기부금 갈등은 계속됐고 OCA측은 지난해 8월 개최권 박탈 의사까지 표명, 양측의 관계는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게 됐다. 다급해진 조직위는 일단 이 문제를 일단락짓기 위해 지난해 9월 시드니에서 ‘OCA측에 사업 전권을 모두 넘겨주고 이를 이행하는 조건으로 2천만달러의 이행보증금을 예치한다’는 치욕적인 이면협정을 맺었다.
부산지역 한 체육계 인사는 “아시안게임 유치후 초기에 관계기관들이 유기적인 협조체제를 갖춰 적절한 대응을 했다면 문제가 달라질 수도 있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조직위는 아시안게임을 유치한 뒤 3년반이 지난 99년 초에야 국제본부를 신설하고 95년 서울 총회때의 공약 발표 녹음테이프를 넘겨 받아 분석 조사에 나서는 등 ‘뒷북 대응’에 나섰다. 또 시는 조직위에서 처리할 문제라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했고 중앙정부는 아시안게임에 대한 인식 결여로 아예 관심조차 두지 않았다.
부산아시안게임 유치위원을 지냈던 한 인사는 “당시 대만의 파격적인 물량 공세로 부산입장에서는 기부금 3천5백만달러 공약을 내세우지 않을 수가 없었다”고 실토했다.
/ 신수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