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질녘 낙동강 하구에는 모래톱 사이로 ‘물별’이 뜬다. 하루를 접는 청둥오리고방오리 가마우지떼들이 피곤한 날갯짓을 하며 명지주거단지 위를 낮게 날아 김해벌판으로 향한다. 을숙도 남단의 갈대숲은 바람에 일어서고, 갯벌 곳곳엔 고니떼와 홍머리오리가 ‘홋호 홋호’ ‘휘이 휘이’하며 울음운다. 아미산 상공에 선회하는 솔개와 간간이 물살을 가르는 보트의 굉음에 철새들이 흠칫 놀라지만, 그래도하구는 물별의 속삭임처럼 포근하다.
60~70년대 해마다 80만~1백만 마리가 날아들었던 동양 최대의 철새도래지 낙동강 하구 을숙도(乙淑島). 새가 날 땐 하늘 절반이 덮였다던 이야기도 전설로 남았을 뿐, 하구둑과 갈대숲에 무지개공단이 들어선 뒤로 공단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연기가 철새를 대신하고 있다. 그러나 낙동강 천삼백리 물길과 태평양 바닷물이 만나서 빚어낸 낙동강 모래톱은 살아 꿈틀거리는 한폭의 동양화를 그리고 있다.
부산에 오래 살았다는 사람치고 예전 을숙도의 추억을 간직하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구둑이 생긴 뒤로 을숙도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린 사람들도많다. 천연기념물 제179호이자 문화재보호구역인 낙동강 하구는 부산이 자랑할만한세계적인 자연유산이다. “도심 가까이서 이렇게 다양하고 멋진 새들을 볼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며 이곳을 찾은 외국인들마다 “원더풀”을 연발한다. 낙동강하구는 아직도 물이 빠지면 조개잡는 아낙들을 볼 수 있고 쌍안경 하나만 있으면철새의 마음도 읽어낼 듯한 곳이다.
하구를 조망하기 위해 아미산에 오른다. 부산시 사하구 다대 5지구 임대아파트뒤쪽 공터에 올라서면 하구 모래톱이 한눈에 들어온다. 황조롱이 솔개 등이 여유롭게 날고 모래톱 사이로 반짝이는 물별이 황홀하다. 쉽게 자리를 뜨지 못함은 ‘다대팔경’의 하나인 아미산의 정겨운 풍광 때문인가. 내려오는 길에 보이는 다대포갯벌엔 엽랑게 농게 등이 많아 아이들 자연학습장이 되고 있다. 세계적인 희귀새인고대갈매기도 관찰된다.
하구둑을 지나 을숙도광장에 차를 세워두고 걷기를 작정하면 곧바로 ‘철새공화국’에 들어갈 수 있다. 광장 휴게소 뒤쪽 제방에선 홍머리오리 흰뺨검둥오리 등이, 일웅도쪽에선 흰죽지 흰뺨오리 등 수천 마리가 노니는 모습을 볼 수 있다. 이곳에서 반대로 옛 쓰레기매립장을 지나 을숙도 남단으로 약 20분 걸어가면 철조망너머로 고니떼를 가까이서 만날 수 있다. 추운날 고니, 홍머리오리의 울음소리를듣고 있노라면 정신이 맑아진다. 풀밭위에 잠시 누워 청둥오리떼 날아가는 모습과날갯짓 소리를 들으면 세상사 시름이 사라진다.
낙동강하구에서 놓칠 수 없는 탐조포인트는 명지주거단지 남동쪽 제방. 볼썽사나운 러브호텔 사이를 뚫고 제방쪽으로 가면 맞은편 대마등에 노니는 1천여 마리의고니떼를 만날 수 있다. 이곳 고니들은 선외기선이 지나자 신경을 곤두 세운다. 그런데 이곳에 20층 고층아파트가 들어서면 이들 철새는 어디로 갈거나.
천연기념물 제201호인 고니를 흔히들 백조로 잘못 알고 있다. 고니의 일본말‘하쿠쵸(白鳥)’를 우리식 한자로 읽은 것이다. 이들은 매년 11월 하순엔 3천여마리나 왔다 봄이 되면 시베리아로 올라간다.
신호리와 진우도에선 건강한 갯벌을 만날 수 있다. 신호대교를 지나 르노삼성자동차공장 정문에서 왼쪽으로 들어서면 신호마을이다. 이곳은 도요새나 물떼새를 가장 가까이서 만날 수 있는 곳이다. 썰물이 돼 맞은편에 숲처럼 보이는 진우도까지갯벌이 열리면 아낙네 20~30명이 모시조개, 맛, 빛조개 등을 잡는다.
이처럼 아름다운 낙동강 하구도 서부산권 개발이라는 개발논리에 밀려 옛 모습을 잃어가고 있다. 쓰레기매립장 분뇨해양투기장에 이어 을숙도를 가로지르는 명지대교 건설이 노선문제로 논란을 빚고 있고 명지주거단지의 고층화도 급속하게 진행되고 있다. 하구엔 2천여명이 생업을 하며 ‘바다농사’를 짓기도 하지만 일부불법어로도 횡행하고 있다. 부산시가 뒤늦게 ‘낙동강하구 보전’을 천명하고 있지만 과연 우리의 미래세대에게 낙동강 하구 해질녘의 아름다움과 철새의 날갯짓이계속 전해질 수 있을 것인가.
추위 속에 탐조를 하다보면 쉬 배가 고파진다. 하구엔 마땅히 찾을 만한 식당이없지만 명지 새동네에 있는 재첩전문식당인 덕성식당(271-1147) 정도는 한번 둘러볼 만하다. 이곳은 재첩국과 갈미조개국 등 30년간 재첩국 장사를 해온 할머니의손맛이 있다. 자연산 재첩은 거의 사라졌지만 그래도 낙동강 하구의 추억은 씹을수 있다. / 김해창기자 hckim@kookje.co.kr《낙동강 하구보존 시민연대》낙동강 하구를 보존하고 지키는데 앞장서는 파수꾼들이 있다. 부산지역 환경단체실무자들로 구성된 ‘낙동강 하구보전을 위한 시민연대’ 회원들에게 낙동강 하구는 주말에 찾는 고향집 같은 곳이다.
박중록(42)씨는 환경을 생각하는 부산교사모임 회장이자 습지와 새들의 친구 운영위원이다. 그는 3년째 매주말 낙동강 하구에 나가 탐조활동을 하며 최근 명지대교 노선에 이의를 제기하고 있다. 부산환경운동연합 자연생태부장 이성근(39)씨는지난 90년부터 활동가로 일하면서 낙동강 하구의 중요성을 국내외에 알리는 일을하고 있다. 최근 ‘하구의 보전원칙의 조례화’를 주장하고 있다. 전시진(46)씨는부산환경련의 환경감시선 선장. 그는 하구둑 축조전부터 틈틈이 낙동강 하구 감시활동을 해왔다. 주위사람은 그를 ‘하구의 감시자’라고 한다. 김은경(33)씨는 부산환경련의 소모임인 ’낙동강하구를 생각하는 모임’ 회장으로 회원들과 낙동강하구 기행 및 청소를 하고 있다. 부산녹색연합 김은정(31) 간사는 낙동강 하구 매립문제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있다. 특히 다대포 갯벌 보호와 매달 쓰레기청소에 앞장서고 있다. 낙동강공동체 한옥경(34) 간사는 낙동강 하구 탐조기행 및 가이드활동을 적극적으로 펼치고 있다.
《탐조상식 람사습지 기준은》낙동강 하구는 ‘물새서식지로서 특히 중요한 습지에 관한 협약’인 람사협약에가입할 필요성이 높은 세계적인 습지이다. 람사지구 등록에 있어 물새와 관련한특별한 기준은 △2만마리 이상의 물새가 정기적으로 서식하는 습지 △개체수에 관한 자료가 있는 경우, 물새의 종 또는 아종 개체수의 1% 이상이 정기적으로 서식하고 있는 습지 등이다.
이렇게 볼 때 낙동강 하구는 43과 209종으로 최근 발간된 ‘한국의 새’에 기록된 남북한 450종 중 46%를 볼 수 있는 생물종 다양성이 보장된 곳이다. 경성대 조류연구소 이종남 박사의 조사에 따르면 낙동강에서 조사된 209종 중에서 환경부지정 멸종위기종만 흰꼬리수리 참수리 매 넓적부리도요 청다리도요사촌 등 11종,보호종은 아비 쇠가마우지 큰기러기 개리 큰고니 고니 가창오리 솔개 등 29종에이른다.
낙동강 하구는 1~2월에만 매년 2만~3만마리의 철새들이 이곳을 찾고 있고 람사기준 ‘1% 이상’에 해당하는 물새만 민물가마우지 큰기러기 혹부리오리 알락오리 검은머리갈매기 쇠제비갈매기 큰고니 흰죽지 흰뺨오리 바다비오리 민물도요 세가락도요 마도요 등 13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