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의 산실인 갯벌이 신음하고 있다. 이곳을 삶터로 해 대대로 살아온 갯마을사람들의 시름도 날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거대한 역사(役事)가 진행되고 있는새만금 동진강 만경강 하구는 옛 모습을 잃은 지 오래다.
갯벌에서 홍합, 농게, 실뱀장어 등을 잡아 삶을 영위해 왔던 갯마을 사람들은 그래도 이곳을 버리지 못한다. 조상 대대로 일구어 온 「땅」이기에 죽어가는 바다지만 그들은 오늘도 그물을 손질하고 배를 띄운다. 새만금 동진강 하구 마을엔 요즘갈까마귀가 「왕초」노릇을 하고 있다. 이곳 바다와 하구, 그리고 하늘을 수 놓았던 도요새, 청둥오리떼는 해마다 개체수가 줄어들고 있다. 다만 문포 둑길 따라 이어지는 갈대밭과 길옆 보리밭이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주고, 갯가에서 한가롭게 노니는 개꿩, 도요들의 재롱이 도리어 서러워 보인다.
아름다운 갯벌이 숨을 거칠게 몰아 쉬는 새만금. 세계 5대 갯벌에 속하는 이곳엔간척사업이 한창이다. 이 사업은 전북 군산시에서 부안군에 이르는 바닷길 33㎞를연결해 서울 여의도 면적의 140배에 이르는 갯벌 4만1백㏊를 매립하는 대규모 공사이다. 현재 방조제공사가 19㎞까지 진행됐다. 갯벌매립과 농지조성 등 「내부개발」을 고려한 전체공정으로 보면 20% 수준이다. 새만금이란 이름은 호남의 곡창만경평야의 옛날 이름인 금만평야처럼 간척을 통해 「새로운 금만」을 얻겠다는뜻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개발과 보존의 갈등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는 새만금 갯벌. 전북 부안군 안성리문포로 들어서니 살아숨쉬는 갯벌의 모습이 한눈에 들어온다. 이곳 안성마을에서해안 둑길을 따라 걷다보면 갯가 염습지에 핀 칠면초 등 염생식물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길손을 반긴다. 또 수천㎞를 날아온 마도요, 민물도요 등 도요새떼와 청둥오리떼들이 건너편 남포갯벌을 수놓고 있다. 도요새는 패류를 특히 좋아하는데 중국고사인 「어부지리(漁父之利)」에서 대합과 물고물리던 싸움을 벌이던 새이기도하다. 이곳에서는 천연기념물인 저어새도 간혹 찾아든다. 둑길을 따라 걸어가면 사람 키보다 큰 갈대 너머로 보리밭이 펼쳐진다.
간척사업이 진행되면서 요즘 이곳 마을사람들은 일손을 놓고 있다. 물막이 공사이후 해류의 흐름이 느려져 생태계가 교란됐기 때문이다. 군산대가 이곳 생태계 변화에 대한 조사를 실시한 결과, 96년을 기준으로 물막이공사 이전 158종이던 어종이 공사후엔 107종으로, 패류채취량이 89년 5천8백99t에서 96년 978t으로 급격히줄어들었다.
어민 김상조(65)씨는 『30년 전부터 이곳에서 실뱀장어를 잡아 아이들을 대학까지 보냈는데 새만금 둑을 막고나선 아예 고기가 사라졌다』며 『최근 수입 실뱀장어가 판을 친다는 말을 들으니 마음이 더 아프다』며 담배연기를 뿜었다.
갯벌에 생계를 의탁했던 주민들은 1~3년의 어로보상금을 받고 조만간 갯벌을 떠나야 한다. 방조제가 완성되면 새만금의 명물 망둥어, 실뱀장어는 물론 백합 등 패류와 해조류 등도 사라지게 될 것이다.
간척사업으로 갯벌만 죽는 것이 아니다. 새만금 인근의 산과 섬이 사라지고 있다. 지금까지 방조제 공사에 사용된 토석만도 15t 트럭 1백30만대분이 넘었다. 이에 따라 변산반도 국립공원 내의 해창석산은 바닷가쪽 일부만을 남겨두고 있고 비응도, 가력도, 야미도 등은 사실상 지도에서 사라졌다. 해창석산 앞 갯벌엔 지난해환경단체가 세워놓은 장승들이 인근 새만금전시관 공사장 아래에 있는 「환경과개발의 조화 새만금사업」이란 표지판을 노려보고 있는 듯하다.
문포에서 동진교를 건너 23번, 29번 도로를 따라 1시간 30분 정도 가다보면 옥구염전이 나온다. 이 염전에선 왜가리, 쇠백로를, 경우에 따라선 황새도 볼 수 있다.
옥구염전의 끄트머리인 수산리쪽에는 다 허물어진 초소가 외롭게 서 있다. 이곳이탐조포인트다. 갯골이 뚜렷이 드러나는 이곳에서 밀물과 함께 몰려드는 청둥오리떼들을 보면 세상 시름을 잊을 수 있다. 힘을 뺀 채 물살에 동동 떠다니는 청둥오리의 모습이 앙증스럽다. 인근 월연리로 들어서면 개꿩이나 민물도요떼를 가까이서볼 수 있다. 염생식물이 포근함을 더해주는 살아있는 갯벌. 지는 해를 보면서 절로그림이라도 그리고 싶은 마음이 생긴다.
옥구염전에서 군산시내 종합운동장쪽으로 차로 약 20분 가면 「뜨락」(주인 강철영·011-9645-0087)이라는 한옥식당이 있는데 음식맛은 물론 아담한 뒤뜰이 있어 여행의 피로를 녹여주기에 좋은 곳이다. 전북환경련 열성회원인 주인 강씨로부터 옥구염전 일대 생태가이드는 물론 숙박할 곳도 안내받을 수 있다.
부산에서 새만금으로 가려면 경부고속도로 대전IC에서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전주 IC로 접어들어 국도 26번을 따라가다 대야읍쪽으로 들어가 옥구염전이나 문포쪽으로 가면 된다.
/ 김해창기자 hckim@kookje.co.kr《탐조상식》철새의 이동에 관해서는 「먹이설」 「빙하설」 「대륙이동설」 「지자기중심설」 「귀소본능설」 등 다양한 설이 있지만 대체로 추운 지역에서 사는 새들이혹한기를 피해 먹이와 알맞은 서식지를 찾아 남쪽으로 옮겨가던 습성이 유전된 것으로 학자들은 보고 있다.
낙오자도 많이 생기는 철새의 대항행에서 한반도 서해안 갯벌은 중간기착지로매우 중요하다. 철새들은 바다를 통과하는 거리가 가장 짧은 해안지역을 집중적으로 통과하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새만금 갯벌은 가을엔 시베리아에서, 봄에는 호주와 뉴질랜드에서 날아오는 수만 마리의 도요새들이 먹이활동을 하는 철새들의「국제공항」이다. 새만금 갯벌에는 조사결과 검은머리갈매기, 저어새, 황새, 노랑부리백로 등 천연기념물만 18종, 쇠청다리도요사촌 등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의적색목록에 오른 국제보호조 14종 등이 찾아든다. 우리나라 최대의 철새도래지로한 해 20만 마리 이상의 철새들이 모여드는 데는 어패류 새우 곤충 해초 등 이곳의 풍부한 먹이감도 한몫한다.
《지킴이 주용기. 신형록씨》새만금 갯벌에는 새만금매립사업이라는 「골리앗」에 대응해 싸우는 「다윗」들이 있다. 새만금 매립 반대의 선봉에는 전북환경운동연합의 주용기(35·사진 오른쪽· 018-221-7977)사무차장과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 대표 신형록(35·011-675-7332)씨가 서 있다.
주 사무차장은 지난 94년부터 새만금 간척사업의 즉각 중단을 위해 각종 집회개최뿐만 아니라 갯벌 보호의 논리찾기에 노력해왔다. 지난 98년 1년간 국제이동 철새조사작업에 참여했고 지난해는 두차례 일본 습지단체인 JAWAN과 함께 새만금지역 갯벌 생태 문화 한일공동조사를 벌였다. 그는 지역 어민들과 자주 만나 의견을 나누고 틈틈이 갯벌 여행 가이드도 해준다.
새만금 사업을 반대하는 부안사람들(www.buan21.co.kr) 대표인 신씨는 서울에서대학을 졸업한 뒤 지난 95년 고향으로 내려왔다. 부안의 문화와 역사에 관심을 가져오다 새만금 갯벌의 중요성에 눈을 떠 주민들을 설득, 지난 99년 단체를 만들었다. 갯벌생태체험 교육자 양성 프로그램도 운영중인 그는 『미래세대의 자산을 국책사업이란 이름으로 빼앗아선 안된다』고 주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