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만 원권이 지폐 3형제 중 맏형이라면 500원은 주화 6형제 중 맏형이다. 지금이야 동전 한닢으로 전락했지만 500원은 1962년 통화개혁당시에는 최고액 지폐였다.
500원 권이 처음 선보인 것은 1962년 6월10일. 영국 토마스 데라루사에서 제조한 것으로 앞면은 남대문, 뒷면은 성화였다. 1966년 한국조폐공사가 직접 발행하면서 국산으로 대체됐고, 1973년에는 이순신장군으로 도안이 바뀐다. 요즘 500원으로는 신문 한부 사기에도 벅차지만 1960년대 500원은 서민들에게 큰 돈이었다.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 따르면 1963년 서울의 자장면 가격은 20~30원이었다. 500원 권 한장이면 20여명은 너끈히 자장면을 먹을 수 있었다는 말이다. 물가가 급등한 60년대 후반에도 자장면은 50원, 개봉극장 관람료 55원, 시내버스요금 10원에 불과했다.
500원은 80년 초까지만 해도 가치가 있었다. 80년 자장면 값은 350원으로 500원이면 '곱배기'를 먹고도 남았다. 500원이 최고자리를 내놓게 된 것은 발행 10년 뒤인 1972년 5000원 권이 제작되면서다. 경제성장으로 물가가 뛰고 거래단위가 커지면서 정부는 고액권을 발행키로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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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52년 나온 500원 권(위쪽 사진). 1962년 화폐개혁 이후 나온 500원 권(아래). |
'10년 천하'를 끝낸 500원 권은 그 이후 1000원, 1만 원권이 잇따라 발행되면서 점차 서열에서 밀려났다. 1982년 500원 권은 주화로 바뀌었다. 앞면은 학이고 뒷면은 숫자 500이 새겨졌다. 성분은 백동(구리 75%, 니켈 25%)으로 주화둘레는 위조를 막기 위해 120개의 톱니가 새겨졌다. 한국은행은 주화 전환과 관련 "자판기 수가 늘면서 주화수요가 증가한데다 화폐제조비를 절감할 필요가 있었다"고 이유를 밝혔다.
굳이 따지면 500원의 시조는 한국전쟁 당시인 1952년 10월 발행된 '이승만' 500원 권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돈은 이듬해 2월 화폐단위를 환으로 바꾸는 긴급통화조치가 이뤄지면서 발행 5개 월만에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박병률기자 brpark@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