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0년대 아일랜드의 가난한 농민들에게 감자는 반찬이 아니라 식사 그 자체였다. 당시 성인 남성이 하루 5kg이 넘는 감자를 먹었다는 기록이 있을 정도로 아일랜드 사람들은 감자에 크게 의지했다. 척박한 땅에서도 잘 자라고 좁은 땅에서 많은 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 감자는 가난한 농민들에게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먹거리였다. 감자와 약간의 우유만으로 하루를 살아가는 사람도 흔했다.
1845년, 그 감자가 검게 썩기 시작했다. 감자 역병은 빠르게 아일랜드 전역으로 퍼졌고 이듬해에도 작황은 회복되지 않았다. 먹거리의 상당 부분을 책임지던 감자가 사라지자 굶주림과 질병이 뒤따랐다. 수많은 사람이 목숨을 잃었고 살아남은 이들마저 고향을 떠났다. 훗날 ‘아일랜드 대기근’이라 불리게 된 비극의 시작이었다.
한 가지에 너무 의존하다 보면 예상하지 못한 문제가 생기기도 한다. 2000년대 초 핀란드를 대표하는 이름은 단연 노키아였다. 세계 휴대전화 시장을 주도했던 노키아의 성장은 핀란드 경제와도 맞물려 있었다. 하지만 2007년 아이폰이 등장하고 시장의 중심이 스마트폰으로 옮겨가자 노키아는 변화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했다. 시장점유율은 빠르게 떨어졌고 핀란드 경제 역시 오랜 기간 낮은 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반면 비슷한 상황에서 전혀 다른 길을 걸어간 나라도 있다. 바로 대만이다. 한때 국가 전체 수출의 40% 가까이를 반도체가 차지했을 만큼 한 산업에 크게 쏠려 있지만, 대만 경제는 성장을 이어갔다. 그 중심에는 세계 최대 반도체 위탁생산 기업인 TSMC가 있다.
핀란드의 노키아, 대만의 TSMC. 두 나라 모두 한 기업과 산업이 경제에서 차지하는 몫이 컸지만, 결과는 정반대였다. 노키아는 시장의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면서 한때 압도적이었던 경쟁력을 잃었다. 반면 TSMC는 더 앞선 반도체 기술에 꾸준히 투자하면서 경쟁사와의 격차를 더욱 벌렸다. 한쪽은 경쟁력을 잃었고, 다른 한쪽은 오히려 그 경쟁력을 더 키웠다.
주식시장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찾을 수 있다. 기업의 경쟁력이 높아지고 이익이 커지면 투자자들의 돈도 그곳으로 향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시장 비중이 커지면서 너무 한쪽으로 몰린 것 아니냐는 우려도 나온다. 과거 한국의 메모리 반도체는 업황에 따라 실적이 크게 흔들렸다. 하지만 최근 AI 반도체 시장에서 주목받는 HBM은 한번 거래가 시작되면 공급사를 쉽게 바꾸기 어렵다. 다른 회사 제품을 쓰려면 다시 검증하는 데 상당한 시간과 비용이 들기 때문이다. 지금의 기술 우위가 이어진다면 반도체로 돈이 몰리는 현상도 단순한 과열이 아니라 경쟁력이 만들어낸 결과일 수 있다.
쏠림은 원인이 아니라 결과일 수 있다. 우리가 살펴봐야 할 것은 얼마나 많은 돈이 몰렸느냐보다 투자자들이 왜 그곳으로 몰렸고, 그 이유가 지금도 남아 있는 지다. 시장의 쏠림을 막연히 두려워하기보다 그 경쟁력이 여전히 유효한지 살펴보는 것은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