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유 사용 물류업계 부담 완화
- 물가·소비·건설 등 악영향 차단
- 정유사 경쟁력 훼손 목소리도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 안팎까지 치솟자 정부가 국내 기름값 안정을 위해 ‘석유 최고가격제’라는 초강수 카드를 꺼내 들었다. 유가 안정에 효과가 있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오는 가운데 시장 왜곡과 정유업계의 경쟁력 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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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동 사태로 국제유가가 치솟는 가운데 12일 오후 대구 남구의 한 주유소에서 대구시, 남구, 한국석유관리원, 한국주유소협회 관계자들이 휘발유·경유의 정량 및 품질, 가격 등을 합동점검하고 있다. 연합뉴스 |
■정유사 공급가 통제
12일 관계부처에 따르면 정부가 이날 ‘석유 최고가격제’ 카드를 꺼내든 것은 중동 사태로 급등한 국제유가가 시차 없이 국내 석유류 가격에 즉각 반영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까지는 통상 2, 3주 시차를 둬 왔다. 현재 국내 기름값은 휘발유(12일 오후 1898.78원·ℓ당) 기준 1900원 안팎, 경유(1918.97원) 기준 1920원 안팎에 형성돼 있다. 정부의 거듭된 압박으로 최근 하락 추세를 보이지만 중동 사태 이전(지난 2월 27일 기준 휘발유 1692.58원·경유 1597.24원)과 비교하면 불과 한 달도 안 돼 각각 12%와 20%가량 급등했다. 특히 최근 80달러대까지 떨어졌던 국제유가가 이날 장중 100달러(브렌트유 기준 101.59달러)를 다시 돌파하는 등 불확실성이 오히려 커져 국내 기름값의 추가 상승이 우려되는 상황이다.
무엇보다 기름값 상승은 국내 물가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특히 경유를 많이 사용하는 화물차와 물류 운송업계에 부담이 가중되면서 물류비 상승과 소비자 물가 인상으로 이어질 수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이날 ‘경제동향’ 3월호에서 “중동 전쟁이 물가·소비·건설·설비투자 등에 고루 악영향을 미쳐 경기 하방 위험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고 진단했다. 정부가 ‘석유 최고가격제’를 통해 정유사 공급가에 상한을 둔 것은 이처럼 국민의 고유가 부담을 최소화하고 소비자물가 상승으로 전이되는 것을 막으려는 의도로 풀이된다.
정부가 주유소 판매가가 아닌 정유사 공급가를 겨냥한 데에는 현실적인 이유가 있다. 전국 주유소는 직영·자영·알뜰주유소 등 운영 형태가 다양하고 지역별 임대료나 물류비 차이가 커 일괄적인 가격 통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주무 부처인 산업통상부도 이날 “주유소 판매가는 지역별로 차이가 크게 나고 경영 전략이나 운영 방식(셀프 등)에 따라 상이해 일률적인 규제가 곤란한 측면이 있다”고 설명했다.
■수출로 돌리는 행위도 제한
최고가 제도 시행으로 단기적으로는 국내 유가를 억제하고 시장의 가격 상승 심리를 완화하는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동시에 유통 과정에서의 불공정 행위나 과도한 가격 인상 등을 단속하는 근거가 돼 소비자 부담 감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하지만 부작용도 우려된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시장에 개입해 가격을 누르면 정유사와 주유소의 수익성이 악화될 수 있다. 이는 ‘공급 축소’로 이어져 소비자의 구매 대란으로 이어질 위험이 있다. 아울러 이번 최고가격제의 근거가 되는 석유사업법 제23조에는 ‘가격을 통제받은 사업자의 손실을 국가가 보전해 줄 수 있다’는 규정이 포함돼 있다. 유가 상승세가 장기화하면 민간의 적자를 세금으로 메워야 해 막대한 재정 부담이 될 수 있다.
세계적인 고유가 및 공급 차질 속 정유사가 손실을 피하고자 국내 공급을 줄이고 수출로 물량을 돌리는 공급 왜곡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이는 제도 취지와 달리 국내 공급가를 오히려 올리고 국내 정유업계의 경쟁력까지 훼손하는 결과로 연결된다. 정부는 최고가격 적용 품목(보통휘발유·경유·등유)과 관련, 국내외 시장 간 가격 차이로 국내 공급물량을 해외 수출로 과도하게 전용하는 행위를 방지하기 위해 수출 물량을 2025년 같은 기간 수출 물량의 100% 수준으로 제한하기로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