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2년 러시아산 원유 금수
- 국내 소비자물가 5.1% 급등
- 전쟁 지속 땐 100弗 넘을 듯
- UAE 원유 600만 배럴 확보
- 생필품값 담합 전방위 조사
중동발 지정학적 리스크 확대로 최근 국제유가가 배럴당 90달러를 넘어서면서 2022년 우크라이나 전쟁 발발 당시 발생했던 ‘물가 충격’이 다시 나타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중동 사태 장기화 가능성과 유가 폭등세를 고려할 때 정부가 올해 초 제시한 ‘2026년 소비자물가 상승률 2%대’ 전망에 불확실성이 커졌다는 분석이 나온다.
■물가 충격, 2022년보다 더 할 수도
8일 국가데이터처가 운영하는 국가통계포털(KOSIS) 등에 따르면 2022년 우리나라의 연간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5.1%로 외환위기 중이던 1998년(7.5%) 이후 가장 높았다. 그해 월 기준 상승률은 1, 2월 각각 3.8%에서 7월 6.3%로 5개월 만에 두 배 가까이 높아졌다. 특히 당시 미국과 유럽 등 주요국이 단행한 러시아산 석유 금수 조치 때문에 세계적으로 원유 수급에 차질이 빚어졌고 이 여파로 국제유가는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섰다. 당시 국내 휘발유·경유 가격도 국제유가 영향을 받아 ℓ당 2100원을 돌파했다. 석유류는 조금만 움직여도 전체 물가에 큰 영향을 준다.
현재 정부는 이런 ‘전례’를 고려해 지난달 말 중동 사태 발생 이후 물가 충격을 최소화하기 위한 총력전에 나섰다. 과도한 가격 인상이 이뤄지지 않도록 범부처 석유시장점검단을 가동하는 한편, 산업통상부·공정거래위원회 등 관계부처가 협력해 매점매석 등 불법 석유 유통행위 근절 특별점검에도 나섰다. 정부는 수급 측면에서도 긴급 대책을 내놨다. 강훈식 대통령실 비서실장은 지난 6일 “호르무즈 해협을 통과하지 않는 아랍에미리트(UAE) 내 항만을 통해 원유 400만 배럴을 수혈하고, UAE가 한국에 보관 중인 공동 비축 물량 중 200만 배럴을 필요할 때 받기로 약속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중동 사태가 장기화·전면전 양상을 보여 이번 물가 충격이 우크라전 때보다 더 클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당시에는 러시아산 석유 공급이 막힌 데 따른 간접 영향이었는데, 이번에는 한국 수입 원유의 약 70%를 차지하는 중동산 원유를 들여오는 데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최악의 상황에서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150달러까지 오를 수 있다는 경고도 이어진다.
국제유가 상승이 석유류를 거쳐 대부분 품목에 시차를 두고 광범위하게 상승 압력을 준다는 점도 문제다. 2022년 석유류 물가 상승률이 7월까지 30%대를 유지하다가 11월에는 5.2%로 뚝 떨어졌지만 당시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023년 4월(3.7%)이 돼서야 3%대로 내려왔다. 물가는 지금도 불안한 상태다. 부산의 지난달 소비자물가는 지난해 2월보다 2.0% 올랐다. 지난해 12월 2.1%에서 올해 1월 1.9%로 둔화됐지만 지난달에는 다시 2%대로 올라선 것이다. 지난달 상승률에는 이번 중동 사태에 따른 기름값 급등 등이 반영되지 않았다. 김광석 한국경제산업연구원 경제연구실장은 “장기전이 되면 2022년보다 영향이 더 클 것으로 예상된다. 2, 3개월 뒤 물가 상승을 막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전망했다.
■“당국 조치만으론 한계”
물가에 대한 우려가 높이지자 정부도 석유제품뿐만 아니라 설탕 밀가루 계란 등 먹거리 품목부터 생리대·교복까지 생활밀착형 품목 전반으로 감시망을 넓힌다. 우선 정부는 공정거래위를 중심으로 범부처 차원의 불공정 가격담합 단속을 전방위로 진행 중이다.
국세청의 탈세·탈루 세무조사도 민생 품목에 타깃을 맞춘다. 최근에는 물가 불안을 일으킨 53개 업체를 세무 조사한 끝에 3898억 원의 탈세를 적발하고 1785억 원을 추징했다. 장바구니 물가를 위협한 탈세자를 대상으로 한 추가 세무조사도 진행 중이다.
중동발 국제유가 상승분이 국내에 반영되기도 전에 기름값을 서둘러 끌어올린 일부 주유소의 ‘꼼수 인상’도 타깃이다. 지난 6일 대전 소재 한 주유소를 현장 점검한 구윤철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은 “국가적 위기 상황을 틈타 무분별하게 가격을 올리는 파렴치한 행위를 막겠다”고 경고했다. 당장은 담합·독점 등 불공정한 가격 인상을 억제해야 하는 당위성이 부각되지만 장기적으로는 당국의 조치만으로 물가 관리에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