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일 국회에서 ‘경제형벌 민사책임 합리화 제2차 당정협의회’가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정부가 단순 행정의무 위반에 대한 형벌을 완화해 사업자의 형사처벌 부담을 줄이는 대신 중대 위법 행위에 대한 금전적인 책임은 지금보다 대폭 강화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이에 따라 ‘갑’ 지위에 있는 본사가 ‘을’ 입장인 납품업체(대리점)의 타사 거래 등을 부당하게 방해할 경우 현재 5억 원 수준인 과징금이 50억 원으로 10배 늘어난다.

담합 행위가 적발되면 최대 100억 원의 과징금을 물린다. 이동통신사가 위치정보 유출 방지 노력을 안 하면 20억 원의 과징금을 부과받게 된다. 지금은 4억 원이다.

●과징금 상향 등 금전적 책임성 대폭 강화

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30일 개최한 당정협의회에서 이 같은 내용의 ‘2차 경제형벌 합리화 방안’을 발표했다.

지난 1차(9월 30일)에 이어 3개월 만에 발표된 이번 방안은 불공정 거래 등 기업의 중대 위법행위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이를 실효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금전적인 책임을 강화하는 데 초점이 맞춰졌다.

대신 ‘과도한 형벌 규정이 민간의 경제활동을 위축시킬 수 있다’는 판단에 따라 사업자의 단순 실수에 대해서는 벌칙을 줄여 이들의 형사처벌 부담을 줄이고 전과자 양산을 막기로 했다.

우선 정부는 기업의 중대 위법행위를 실질적으로 억제하기 위해 과징금 상향 등 금전적 책임성을 대폭 강화한다. 특히 불공정 거래행위 등 중대 위법행위에 대해서는 과징금을 현실화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공급업자가 우월한 지위를 남용해 대리점의 거래 정보를 요구하는 등 부당하게 간섭할 때 부과하는 정액 과징금은 5억 원에서 50억 원으로 상향 조정한다.

지금은 우선 ‘징역 2년’의 형벌로 처벌하게 돼 있지만 앞으로는 일단 시정명령을 내리고 이를 이행하지 않는 경우 형벌과 더불어 10배 늘어난 경제적 불이익을 주겠다는 게 정부의 계획이다.

납품업자가 타사와 거래하는 것을 부당하게 방해하는 경우도 마찬가지로 시정명령을 내린 뒤 미이행 시 형벌과 과징금을 부과하는 시스템으로 변경한다. 정액 과징금은 역시 10배 늘어난 50억 원으로 한다.

발주자로부터 선급금을 받은 사업자가 하도급 업체에 대금을 주지 않는 경우는 시정명령을 우선 내리고 따르지 않으면 현재의 2.5배에 해당하는 50억 원의 정액 과징금을 부과한다.

가맹 본사가 정보공개서를 제공하고 14일 이내에 가맹 계약을 맺는 경우에 부과하는 정액 과징금 한도를 현재의 10배인 50억 원으로 증액한다. 즉시 형벌을 부과하는 대신 우선 시정명령을 내리고 불이행 시 형벌과 과징금으로 규율한다.

가격이나 생산량을 짬짜미해 경쟁을 부당하게 제한하는 경우 현재 40억 원으로 돼 있는 정액 과징금 한도를 100억 원으로 올린다. 정률 과징금 기준은 관련 매출액의 20%에서 30%로 상향한다.

시장지배력이 있는 사업자가 부당하게 가격을 결정하는 행위(시장 지위 남용)를 하면 과징금 한도를 매출액의 6% 혹은 20억 원에서 20% 또는 100 억원으로 강화한다.

●단순한 의무 위반 등은 형벌 완화

경제 형벌 개편을 계기로 공정거래위원회는 반복해서 법을 위반하는 사업자에 대한 가중 제재도 강화한다.

지금은 1차례 이상 위반하면 과징금 가중률 10% 이상 20% 미만을 적용하지만 40% 초과 50% 이하로 더 무겁게 한다. 4차례 이상 위반하는 경우는 90% 초과 100% 이하로 가중한다.

이동통신사 등이 위치정보 유출 방지 노력을 하지 않는 경우의 벌칙인 형벌을 폐지하고 대신 과징금을 늘린다.

현재는 1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 원 이하의 벌금으로 처벌하게 돼 있는데 이런 형벌을 폐지하는 대신 정액 과징금 한도를 4억 원에서 20억 원으로 올린다.

반면 정부는 사업자의 고의가 아니거나, 단순한 행정 의무 위반 등은 형벌을 완화하거나 과태료로 전환해 형사 리스크를 줄이고 전과자 양산을 막기로 했다.

동물미용업자 등이 인력 현황 등의 변경을 등록하지 않은 경우에 처하는 징역 1년의 벌칙을 폐지하고, 식품제조가공업 대표자 성명 변경을 신고하지 않은 경우의 처벌을 징역 5년에서 1년으로 줄이는 등 경미한 실수에 대해서는 형벌을 없애거나 완화한다.

캠핑카를 튜닝하고 검사받지 않으면 지금은 벌금을 부과하지만, 앞으로는 일단 과태료를 부과하도록 제도를 바꾼다.

자동차제작자가 온실가스 배출허용기준 준수 여부 확인 서류를 기한 내에 제출하지 않은 경우 ‘벌금 300만 원’으로 돼 있는 벌칙 조항을 ‘과태료 300만 원’으로 변경한다.

당정은 이날 발표된 개선안의 신속한 입법을 위해 함께 노력하는 한편, 지난 9월 발표한 1차 방안에 대해서도 조속히 입법이 완료되도록 협조해 나가기로 했다. 3차 과제 발굴에도 즉시 착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