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생 회복 소비쿠폰 1차 신청 첫날일 21일 부산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들이 순서를 기다리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21일 13조9000억 원 돈 보따리가 풀렸습니다. 이유가 뭐든, 목적이 뭐든 다들 들썩들썩합니다. 오랫동안 풀 죽었던 시장에도 활기가 돕니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 1차 신청이 시작된 이날 많은 카드사와 지역화폐 홈페이지가 접속 폭주로 한때 ‘먹통’이 됐습니다. 온라인뿐 아닙니다. 전국 곳곳 행정복지센터는 문 열기 전부터 중장년층 시민으로 북새통을 이뤘습니다. 한참 기다리고 선 시민은 “시장에 가서 고기나 실컷 사야죠” “큰돈은 아니라도 없는 사람들한텐 요긴하게 쓰여요” 등의 말로 기대감을 드러냈죠. “평소 생활비가 모자란다”는 생계급여자는 선불카드를 받아 오랜만에 윤기 나는 가족 밥상을 차릴 거라며 줄이 줄어들기를 기다렸습니다.

카드사와 은행은 저마다 ‘여기서 신청하세요’라고 일찌감치 홍보 문자를 날리며 과열 경쟁을 벌입니다. 스마트폰 앱 초기화면을 아예 ‘회복과 성장의 마중물, 놓치지 마세요’ 등의 문구와 함께 소비쿠폰 신청 페이지로 바꾸기도 했습니다. 기민하죠.

외식 프랜차이즈, 편의점 등은 ‘소비쿠폰 사용 가능 매장’임을 알리며 마케팅에 열을 올립니다. 가맹점마다 홍보물을 부착한 건 물론 광고 문자도 ‘무차별 살포’합니다. 전통시장 점포나 식당은 손으로 투박하게 쓴 ‘소비쿠폰 환영’ 문구를 붙이기도 했고요. 소비쿠폰에 할인 혜택을 얹어주기도 합니다. 배달 앱도 소비쿠폰을 쓸 수 있는 ‘만나서 결제’ 기능을 알리느라 바쁩니다.

각 지자체는 소비쿠폰과 연계할 소비 진작 정책을 개발하고 나섰습니다. 단체장마다 ‘도우미’를 자처하며 소비쿠폰 지급 현장을 찾은 건 기본. 김민석 국무총리도 이날 아침 이른 시간 환경공무관들과 서울 시내 한 식당에서 아침을 먹으며 소비쿠폰 홍보와 골목상권 살리기에 동참했습니다. “민생 회복 소비쿠폰을 계기로 새벽 시간에도 식당을 찾는 분이 많았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전하기도 했죠. 말 그대로 여기도 ‘들썩’ 저기도 ‘들썩’.

좀 다른 성격으로 ‘들썩’이기도 했습니다. 볼썽사납다고 할까요. 잘사는 동네 일부 성형외과는 소비쿠폰 지급액 한도에서 받을 수 있는 보톡스 물광주사 등 시술을 소개하며 광고 문자를 남발해 눈살을 찌푸리게 했습니다. 가격을 정말 자세히도 안내했더라고요. 이뿐 아닙니다. 이때다 싶은 사기꾼들은 피싱 문자를 보내 온갖 범죄에 악용하려 합니다. 참 약은 사람들이죠. 소비쿠폰 안내 문자에 인터넷 주소(URL)가 들어 있으면 100% 사기입니다.

21일 부산의 한 행정복지센터에서 시민이 민생 회복 소비쿠폰 선불카드를 수령하고 있다. 전민철 기자 jmc@kookje.co.kr

아무튼 이날 하루 온 동네가 떠들썩했습니다. 좋은 쪽으로든, 그렇지 않은 쪽으로든.

그래도 모처럼 우리 경제가 활력을 띠는 듯해 나쁘지 않습니다. 지난해 12·3비상계엄 이후 바닥을 치던 소비심리가 최근 조금씩 회복되는데, 여기에 소비쿠폰이 힘을 보탠다면 좋겠네요. 특히 소비쿠폰은 소상공인과 전통시장 등에서만 사용할 수 있게 설계돼 골목상권 활성화에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읍니다. 정부가 직접 소비를 촉진하는 신호를 주는 것도 기대 효과 중 하나죠.

물론 우려가 없는 건 아닙니다. 눈덩이 나랏빚은 누가 책임지며, ‘반짝 효과’에 그치거나 물가 상승만 부추긴다면 그 후폭풍은 어떻게 감당하냐는 거죠. 뿌린 만큼 실익이 없을 수도, 부작용만 키울 수도 있습니다. “부산시민은 25만 원 필요 없다”고 했다가 논란의 중심이 된 국민의힘 박수영 의원은 이날도 “지역화폐 같은 일시적 현금 살포가 아니라 배수로 확충, 지류·지천 정비, 사방 사업 등 국민 안전이 최우선 과제가 돼야 한다”며 수해 참사를 빗대 소비쿠폰을 에둘러 비판했죠.

그러나 전국이 이렇게 들떴는데, 우선은 소비쿠폰이 ‘회복과 성장의 마중물’이 되도록 모두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요. 한국개발연구원 분석에서 보듯, 우리는 코로나19 팬데믹 때 긴급재난지원금으로 26.2~36.1%의 매출 증대 효과를 경험했습니다. 위축된 가계 소비가 회복되기 시작했다는 평가도 받았죠.

소비쿠폰은 정부 구호처럼 ‘마중물’일 뿐입니다. 펌프질로 물을 잘 끌어 올리기 위해 위에서 붓는 물이죠. 마중물 한 바가지 퍼부었다고 끝나는 게 아닙니다. 마중물에 힘입어 얼마나 많은 물을 퍼 올릴 수 있을지는 이후 정부 정책에 달렸습니다. 깜짝 이벤트가 아니라 위기의 소상공인이 다시 일어서고, 어려운 민생이 생생하게 살아날 수 있도록 후속 대책도 착실히 준비해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