쌀 소비량이 매년 떨어지면서 과잉 생산으로 인한 산지 쌀값 하락이 되풀이되자 정부가 벼 재배면적 감축을 통해 사태 해결에 나서기로 했다. 그러나 농민들은 이 정책이 미봉책일 뿐 문제를 풀 근본적인 대책이 되지 못한다며 반발하고 있다. 쌍방이 합의하는 특단의 방안이 나오지 않으면 갈등은 내내 이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
| 부산 강서구에 있는 논에서 벼 수확이 진행되고 있다. 연합뉴스
|
25일 농업계 등에 따르면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12월 12일 ‘쌀 산업 구조개혁 대책’(2025년~2029년)을 발표했다. 초점은 생산보다 소비량 감소율이 더 큰 구조적 공급과잉 상태 때문에 2005년 이후 12차례에 걸친 시장격리에도 쌀값 불안정이 계속되는 현상을 개선한다는 데 맞춰졌다. 통계청 자료를 보면 지난해 1인당 연간 쌀 소비량은 55.8㎏였다. 관련 통계가 시작된 1962년 이후 가장 적다. 이 수치는 1970년 136.4㎏로 최고치를 기록한 후 완만한 감소세를 보이다가 외식 문화 등이 자리 잡은 1980년대 중반 이후부터 급격히 줄기 시작했다. 지난해 쌀 소비량은 30년 전인 1994년(108.3㎏)의 절반 수준이다.
상황이 심각해지자 농식품부는 올해부터 ‘벼 재배 면적 조정제’를 시행하기로 했다. 8만 ㏊를 줄이는 것이 목표다. 이는 전체 벼 재배면적(69만8000㏊)의 11%에 해당한다. 또 여의도(290㏊)와 비교하면 276배에 이른다. 농식품부는 앞으로 시·도별로 면적을 배정한 뒤 농가가 타작물 전환 등 다양한 방식으로 감축을 이행하게 한다. 정책에 동참한 농가에는 공공비축미 매입 등의 혜택을 주기로 했다. 또 벼 대신 타작물을 심는 농가 지원을 위해 전략작물직불제 규모는 지난해 1865억 원에서 올해에는 2440억 원으로 늘린다. 농식품부는 제도가 제대로 정착하면 쌀 과잉 생산 현상이 개선될 것으로 기대한다.
그러나 쌀 산지의 반응은 다르다. 우선 농민들은 정부의 계획을 ‘강제 감축’이라고 맞선다. 매년 40만8000t에 이르는 의무 수입 쌀 물량을 줄이는 한편 수요를 늘리기 위한 다양한 대책을 내놓지 않은 채 무작정 재배면적만 줄이는 것은 앞뒤가 바뀐 정책이라고 주장한다. 농민의 영농권과 식량 주권을 침해하는 것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연히 전국 농민회 등에서는 정부를 규탄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경남 진주농민회는 지난 12일 “벼 재배면적 감축은 농민 생존권과 작물 선택권, 경작 자율권을 침해하는 반농민적 정책”이라는 성명을 발표했다. 이어 정부에 벼 재배면적 감축 정책 즉각 철회, 쌀값 폭락에 따른 근본 대책 마련, 농민 생존권 보장, 식량자급률 향상 등과 같은 대안을 마련하라고 요구했다.
정치권도 거들고 나섰다. 권영국 정의당 대표와 농어민먹거리위원회는 지난 23일 국회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벼 재배면적 강제 감축 계획을 철회하는 한편 쌀 산업 구조개혁 대책을 전면 재수립하라고 촉구했다. 국가의 쌀 수매 의무를 강화하는 ‘양곡관리법’ 통과도 주장했다. 전종덕 진보당 의원과 농민의 길도 지난 14일 “벼 재배면적 강제 감축은 수입쌀 들이겠다고 우리 쌀 죽이는 농업 말살 정책”이라며 정부를 강력하게 비난했다.
이에 대해 농식품부는 벼 재배면적 조정제는 강제적·일방적 제도가 아니라고 해명했다. 이어 모든 농가에 정률 감축 통지를 하지 않았으며 앞으로 지역 상황에 맞게 자율적으로 벼 재배면적을 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또 정책을 따르지 않는 농가에는 직불금 감액 등의 불이익을 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혜택 중심으로 벼 재배면적 감축 참여를 자연스럽게 유도할 계획이라고 반박했다.
전문가들은 대화와 소통을 통한 사태 해결을 주문한다. 지금으로서는 정부와 농민의 입장 차이가 워낙 커 충분한 논의가 전제되지 않으면 제도 도입에 따른 긍정적인 효과 창출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이와 관련, 송미령 농식품부 장관은 최근 열린 업무 계획 설명회에서 “국민의 목소리를 적극적이고 신속하게 반영, 모두가 체감할 수 있는 정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