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석 회피용 해외출장 등 만연
- 美 청문회처럼 품격있게 해야
“오너(기업 소유주)와 식사 약속 잡아와라.” 국정감사를 앞두고 오너의 증인 채택을 막아보려는 대기업 담당자에게 한 국회의원이 전한 요구다. 삐뚤어진 국회의원의 ‘오버’로 치부하기에는 많은 의도가 담겼다. 국감 때만 되면 왜 그렇게 무더기로 기업인을 부르고, 막상 출석하면 벌을 주거나 호통으로 일관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22대 국회 첫 국정감사에서도 무분별한 기업인 증인 채택에 이은 ‘갑질 국감’이 여전하다. 선진국 반열에 들어선 지 오래다. 그런데도 국회 국정감사는 ‘공인된 갑질’로 고착화된 모습이다.
이번 국감에서도 재벌가 오너 등 기업인이 증인, 참고인으로 줄소환되고 있다. 국회 상임위원회 중 가장 많은 증인·참고인을 부른 곳은 과학기술정보방송통신위원회다. 무려 161명을 채택했다. 정의선 현대차그룹 회장, 김영섭 KT대표 등이 증인이나 참고인으로 채택됐다.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전영현 삼성전자 부회장(DS부문장)과 곽노정 SK하이닉스 대표이사 등을 참고인으로 불렀다. 오는 21일 열리는 국회 정무위 증인 명단에는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이 이름을 올렸다.
중앙일보가 지난 8일까지 증인 명단을 확정한 15개 상임위를 분석한 결과를 보면 일반증인으로 채택된 470명 가운데 현직 기업 총수나 임원 등 기업인은 159명에 달했다. 지난해 채택된 기업인 증인은 95명. 올해는 1.6배나 늘어난 것이다. 국정감사 기업인 증인은 ▷2020년 63명 ▷2021년 92명 ▷2022년 144명으로 매년 늘어나는 추세라고 보도했다.
이렇게 불러놓고도 설득력 있는 지적과 충분한 답변이 이뤄지는 것도 아니다. 과방위 국정감사에 출석한 안철현 애플코리아 부사장은 오후 2시에 출석한 뒤 7시간이 지난 오후 9시에야 처음이자 마지막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답변은 3분40초에 불과했던 것이다.
국정감사 증인·참고인은 개별 의원들이 신청하면 여야 간사단 협의로 결정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충분한 협의가 이뤄지지 않고, ‘일단 불러놓고 보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렇게 해서 출석하면 고함지르고, 망신 주고, 벌세우는 ‘갑질’을 반복한다. 이러니 기업인들도 해외출장 등의 핑계로 불출석 사유 찾기에 바쁘고, 기업 대관 담당자들은 국회 출석을 막으려고 진땀을 빼는 촌극이 빚어지는 것이다.
미국 의회도 청문회 등을 통해 기업인을 비롯해 민간인을 증인으로 채택한다. 하지만 의제 설정부터 증언, 질의응답까지 충분한 답변 기회를 제공한다. 우리 국회처럼 ‘하인 다루듯’하는 행태를 하지 않는다는 말이다. 이들 역시 국민이다. 국민이 그런 권한까지 국회에 위임하지 않았다.
국회가 국정감사를 통해 정부와 유관 기관은 물론 공적 기능을 담당하는 기업 문제를 짚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 절차와 방식은 적법성과 설득력을, 태도는 품격을 갖춰야 한다. 기업인들도 ‘피하고 보자’식이 아니라 충실하게 설명하고 해법을 고민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