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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20> 신공법 방파제 개발자 김상기

레고처럼 이은 ‘1석 다조’ 방파제…안전사고 막고 경관 살려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10-17 19:12:37
  •  |   본지 1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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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방파제 파도 돌아갈 구멍 뚫어
- 다음 파도와 부딪히게 해 충격↓
- ‘회파블록 공법’ 독자개발 성과

- 원천기술 필요성 느껴 회사 설립
- 상상 실현한 신공법 특허 70개
- 업계 선입견 뚫고 기술 상용화
- “몰디브 땅 되찾아 주고파” 포부

갈수록 바다가 거칠고 사나워진다. 초강력 태풍의 위력 앞에 전국 해안선에 깔린 인공구조물이 무기력해 보인다. 흔히 해안선에서 보는 테트라포드라고 예외는 아니다. 2020년 울릉도에선 태풍 마이삭이 무게 50t의 테트라포드를 터널로 밀어 넣었다. 바다로 다가서려는 인간의 열망과 심술궂은 자연의 견제 사이에 슬기로운 중재가 필요해 보인다.
㈜유주가 2016년부터 2년에 걸쳐 부산 기장군 월내항에 타이셀, 회파블록, 무들고리 공법을 적용해 건설한 방파제(위)와 이 월내항 방파제가 태풍에도 파도를 막아내는 모습. ㈜유주 제공
항만건설 분야에 몸담은 지 30년 된 김상기 ㈜유주 대표가 그 중재를 자임하고 나섰다. 평소에도 미관을 해치고 쓰레기가 쌓이며 추락사고가 속출하는 테트라포드 대신 파도도 막고 경관도 살릴 신공법 방파제로 ‘1석(石) 다조(多鳥)’ 효과를 거두겠다는 뜻이다. 김 대표가 개발해 바다에 면한 각지에서 우수성을 입증한 신공법 특허 기술은 무려 70여 가지에 달한다.

■구멍 뚫어 파도 줄이는 방파제

김상기 대표가 신공법 방파제를 설명하고 있다. 김정하 교수 제공
그 중 대표적인 ‘회파(回波)블록 공법’은 파도가 돌아나갈 구멍을 방파제에 뚫어 뒤이어 달려온 파도와 맞부딪치게 하는 기술이다. 이 기술은 2014년 부산 기장군 칠암항 물양장 보강공사로 진가를 드러냈다. 기왕에 테트라포드로 전망이 가려져 있던 지점에 같은 시설의 설치를 극구 반대하는 횟집 주인들 탓에 일부 구간 공사가 자꾸만 지체됐다. 방파 시설이 없으니 밀려드는 쓰레기로 청소를 담당한 공무원만 곤욕을 치러야 했다. 이에 ㈜유주가 1.5㎞ 구간에 ‘회파블록’을 설치하자 과연 월파 양은 줄고 경관이 살아나는 한편, 수변공간이 확보되면서 관광객이 늘어나는 부수적 효과를 거두었다. 그런 칠암항에서의 효과가 알려지자 부산 각지와 전국 도처에서 같은 시설을 설치해달라는 요청이 ㈜유주에 쇄도했다. 이에 부산 죽도 물양장과 대항항, 광안리해수욕장, 암남공원에 이어 전북과 전남, 제주 등지의 40여 지역에서 공사가 진행되어 왔다.

■취업 후 안전한 테트라포드 고민

김상기는 1966년 부산 연산동에서 일본 기계제품 국산화 전문가였던 엔지니어 김석수와 이인숙의 1녀 3남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미술 선생님이 미대 진학을 권할 정도로 손재간이 뛰어났던 그는 내면에 침잠해 상상을 즐기는 버릇이 있었다. 가지런한 진열장이 마련된 상상의 세계 속에 몇백 채씩 집을 짓고 그곳에 들여놓은 세간살이와 입주민의 표정까지 떠올릴 정도였다. 그 버릇은 자연스레 발명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져 아인슈타인과 벨의 위인전을 탐독한 뒤에는 집안의 라디오와 오디오를 모두 해체해 고장을 내놓곤 했다. 초등학교 5학년 무렵 안전사고로 부친이 세상을 떠났지만 모친의 알뜰한 살림살이 덕에 학업을 계속하기엔 지장이 없었다.

취업을 염두에 두고 자원공학과를 택해 동아대에 입학한 후에도 그의 관심은 여전히 발명이었다. 대학 2학년 때는 공사장 아르바이트를 해서 번 돈으로 자동차 헤드라이트 특허를 출원하기도 했다. 대학 졸업 후 건설회사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김상기는 항만건설회사로 자리를 옮긴 뒤 고리원자력발전소 방파제 공사장의 현장소장을 맡았다. 막상 맡고 보니 바다를 상대로 한 인공구조물 설치작업이 그는 너무도 신나는 일이었다. 다만 방파제의 주요 설비인 테트라포드에 대한 불만과 고민이 그때부터 시작되었다. 낚시를 좋아하던 어린 아들이 그 위에서 미끄러질까 노심초사한 것도 계기가 됐다.

■직원 90% 연구인력, 기술개발 박차

그가 현장에서 느낀 또 다른 감정은 자못 애국적이었다. 2005년 마창대교와 거가대교 공사에 참여하니 선진기술을 지닌 외국인 기술자들은 좋은 여건에서 높은 연봉을 받는 데 비해 어렵고 힘든 일은 온통 한국인 기술자들 몫이었다. 원천기술 없는 나라의 설움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후배 근로자에 대한 선배로서의 미안함에 어깨가 무거웠다.

“기술개발과 특허만이 살길”이라 여긴 김상기 대표는 2003년 39세의 나이에 동생인 김맹기 상무와 함께 ㈜유주를 설립하고 방파제 기술개발에 뛰어들었다. 다시 생각해 보니 어린 시절 상상을 즐기던 습관은 기술개발 과정이었고 아이디어를 도면과 3D 프린터로 가시화하는 일은 시뮬레이션이었다. 그는 자신이 직접 개발한 기술의 특허 등록에 발 벗고 나섰다. 어느 날 현장에서 ‘무들고리 공법’이 떠올라 모든 일정을 취소한 채 회사로 직행해선 신공법 특허 명세서를 만드느라 하얗게 밤을 새웠다. 날이 밝는 즉시 변리사를 찾아가 특허출원을 마치고 난 순간 그는 삶의 절정에 도달한 기쁨을 느꼈다. 그처럼 기술개발에 전력투구한 김 대표는 ㈜유주의 인력을 대폭 보강한 후에도 전체 직원의 90%를 연구진으로 채웠다.

■타이셀·무들고리 공법 특허·신기술

그가 창안한 ‘타이셀 공법’은 수중에서 블록을 결속시켜 안정성을 추구하면서 공사비를 절감하고 시공이 용이하게 만든 기술이다. 이 공법을 2018년 해양신기술로 인증받은 ㈜유주는 미국 러시아 등 60여 개국에서 원천기술 특허를 출원하고도 연구를 거듭해 여섯 가지의 버전을 개발해냈다. 이와 함께 ‘천공타이셀 공법’은 현장에서 지반과 기둥을 일체화시키는 타설로 블록 일체화를 꾀한 안벽공법으로 제주 구좌읍 연안 해상풍력 발전기의 하부기초 건설에 적용된 바 있다.

특히 ‘회파블록 공법’에 대해 김 대표는 “기존 방파제에 비해 월파 양을 10분의 1 이하로 줄이는 데다 회파관(回波管)을 타고 올라간 모래가 원위치로 되돌아가므로 해안침식 문제도 해결할 수 있는 기술”이라고 강조한다.

그 다양한 공법들이 두루 적용된 부산 대항항에서는 그에 걸맞은 성과도 있었다. 대항항은 2016년 태풍 차바로 심각한 피해를 봤음에도 방파제 복구 예산은 절반만 지원됐다. 이에 ㈜유주가 주민의 요구에 맞춰 길이 100m의 방파제를 건설하면서 ‘타이셀 공법’ 등을 두루 적용한 결과, 되레 기존 방파제보다 더 만족스러운 결과를 얻었다. 김영석 대항어촌계장은 “금년 힌남노 태풍 내습에도 새로 만든 방파제 덕을 보았으니 주민 입장에선 다행스러운 일”이라고 말했다.

■신공법 적용, 보수적 풍토에 더뎌

회사 설립 후 19년간 김상기 대표가 부딪쳐 온 것은 기술개발의 어려움만이 아니었던 듯싶다. ‘설계기준’ 유무를 따지며 신공법 인정에 10년씩 걸리는 토목업계와 항만건설 분야, 공직사회의 보수적 풍토에 성과를 내기 어려웠을 법하다. ‘테트라포드가 있는데 구태여 신공법 방파제가 필요하느냐’는 선입견에 기존 업체의 견제 또한 강고했을 터이다.

그러나 근래 김 대표의 집념 어린 노력에 드디어 응답이 오기 시작했다. ㈜유주의 기술은 2016년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을 비롯해 해양수산과학기술진흥원 등의 연구과제로 잇따라 선정되면서 기술 상용화의 길이 열렸다. 일단 기술의 우수성이 알려지면서 올해 5월부터 쿠웨이트 항만청 프로젝트부터 미국 해상풍력사업, 말레이시아와 필리핀 항만건설 프로젝트 참여 계약에 이르기까지 협의 중이다. 2021년 해수부 해양과학기술 대상이나 오는 20일 부산과학기술상 대상 수상은 저간의 노력에 대한 보상인 셈이다.

“부산의 미래 먹거리가 기득권의 횡포로 사장되는 것 아니냐”는 주위의 기대 반 우려 반 속에 김 대표가 추구해온 신공법은 ‘항만도시 부산에 가장 적합한 기술’로 조명을 받고 있다. 그 기술이 바다에 대한 열망에 어떻게 기여할지 지켜볼 일이다. “사업 대상지는 부산과 한국만이 아니다. 언젠가 바닷물에 잠길지 모를 몰디브에 땅을 되찾아주고 싶다.” 자연과의 중재에 나선 김상기 대표의 인류애 가득한 꿈이자 포부다.

▶도움 말씀 주신 분 = 김도삼(한국해양대 교수), 정진교(부산과학기술대 교수), 박현수(부산도시공사 부장), 김영석(대항어촌계 계장), 박태욱(성림횟집 대표)

※ 공동 기획=국제신문, 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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