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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프런티어 해양인 열전] <5> 갠트리크레인 기사 안종식

항만 공중 컨 하역의 달인 … AI는 못 따라올 그 ‘30년 짬밥’

  • 김정하 한국해양대 글로벌해양인문학부 교수
  •  |   입력 : 2022-03-14 19:43:02
  •  |   본지 1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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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찍이 농기계 도입한 부친 덕에
- 어린시절부터 기기 조작 능숙
- 감천부두서 하역크레인 다루다
- ‘항만의 꽃’ 갠트리크레인 전향

- 자동화장비 등장에 동료 실직
- 스마트항만 거스를 수 없지만
- 일자리 유지 등 접점찾기 절실

항만은 살아 있다. 이역만리 바다를 오가는 선박을 상대로 살아 움직인다. 그처럼 항만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건 다름 아닌 항만근로자다. 항만의 시설과 장비는 지금까지 그들의 보조도구였다. 그런데 최근 중국 칭다오와 상하이, 네덜란드 로테르담 항만을 모델로 부산항에 ‘스마트항만’이 건설되면서 사정이 달라졌다. ‘자동화와 일자리의 조화’란 애초의 구호와 달리 무인장비에 항만근로자가 밀려날지도 모른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올해 정년퇴직을 앞둔 안종식(60) 기사는 31년간 부산항 신선대부두에서 일했다. 야드트랙터와 트랜스퍼크레인을 6년간 운전하고 갠트리크레인 위에서 25년을 보냈다. 그는 어려서부터 기계와 친했다. 1962년 경남 밀양시 상남면 평촌리 대흥동에서 태어난 안종식의 부친 안소도는 ‘얼리어답터(early adopter)’였다. 대규모 한약 재료 재배에 영농기계를 사용한 부친 덕에 안종식도 어린 시절부터 경운기 등을 손에 익혔다. 그런데 그의 군 입대를 앞두고 부친이 갑자기 세상을 뜨더니 어머니마저 뒤를 따르며 가세가 급속히 기울었다. 군대에서 제대하고도 손가락 부상과 취업 실패에 시달리던 그의 마음을 달래준 건 콤바인, 트랙터 운전과 운동뿐이었다.
갠트리크레인 기사 안종식 씨가 부산항 신선대부두 내 50m 높이의 조종실(캐빈)에서 컨테이너를 옮기는 작업을 하고 있다. 김정하 제공
■야드트랙터 기사로 부산항과 인연

1987년 25세의 안종식이 얻은 첫 직장은 그즈음 개장한 감천부두였다. 그곳에서 고철과 원목 하역 일로 받는 월평균 60만 원의 수당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걸핏하면 철야해가며 36시간이나 작업을 하는 데다 고철을 맨손으로 만지자니 고역이었다. 어느 날인가 영농기계에 익숙했던 안종식이 배에 부착된 하역크레인으로 그 험한 일을 단숨에 해치우자 주위에서 찬사가 쏟아졌다.

1991년 안종식은 57명의 부산항운노조원 중 장비기사로 특채돼 동부산컨테이너터미널에 입사했다. 그해에 개장한 동부산컨테이너터미널은 초대형 선박 4척이 동시에 접안할 수 있는 최신의 하역장비와 첨단 전산시설을 갖추고 24시간 연중무휴로 운영되는 국내 컨테이너항의 간판이었다. 하지만 안 기사는 야드트랙터와 트랜스퍼크레인을 다루는 6년간 부두에 버티고 선 갠트리크레인이 오나가나 눈에 밟혔다. 앞서 감천부두에서 크레인을 다뤄본 데다 일주일이나마 갠트리크레인 연수도 받은 터였다. ‘안벽크레인’, ‘컨테이너크레인’, ‘STS크레인’으로도 불리는 갠트리크레인은 역할로 보나 가격으로 보나 영락없는 ‘항만의 꽃’이었다. 틈나는 대로 그 위에 올라 조작법을 익히던 안 기사는 그 장비야말로 자신의 섬세한 성격과 남다른 운동신경에 꼭 들어맞음을 알아챘다.

■갠트리크레인 기사로 전직

갠트리크레인 기사가 컨테이너 운반 작업을 위해 머무는 공간인 ‘캐빈’. 김정하 제공
마침내 기회가 왔다. 1997년 선석이 추가되고 장비가 보충되면서 중장비자격증 소지자 중에서 갠트리크레인 기사를 뽑기로 한 것이다. 신바람이 난 안 기사는 컨테이너를 옮기는 테스트가 일상처럼 익숙했고, 10명 중 2명의 합격자가 되고 보니 “하늘을 날 듯한” 기분이었다.

그러나 작업을 계속하려니 그 일도 만만치 않았다. 50여m 높이의 ‘캐빈’에 앉아 고개를 숙이고 최장 4시간의 작업을 하노라니 어지럼증과 목 디스크 등 근골격계 질환이 엄습했다. 야간에 부두를 밝히는 조명 때문에 시력이 떨어지고 장비 오작동이나 추돌로 의자에서 굴러떨어지는 일도 있었다. 가장 곤란한 건 컨테이너가 엉뚱한 곳에 ‘찡기는’ 사고로, 그로 인해 선박 입출항이 늦어지면 감당하기 힘든 손해가 발생했다.

그런 어려움을 이겨낸 안 기사가 장비의 움직임에 “머리보다 몸으로 반응”하기까지는 꼬박 2년이 걸렸다. 차츰 작업을 앞두고 “도를 닦듯 마음을 비우는 법”도 터득했다. 일솜씨에 대한 주위의 호평이 늘어나면서 어느덧 그도 ‘세계 최고의 작업능력을 지닌 부산항 기사’가 되었다. 그동안 동명대 항만물류시스템학과를 졸업한 둘째 아들 지환이 뒤를 잇겠다고 나서기도 했다. 10여 년이 지나 근무 조건이 2조 2교대에서 3조 2교대로 바뀌고 짬이 생기자 안 기사는 운동이 그리워졌다. 먼저 배드민턴동호회를 조직한 그는 내쳐 테니스, 산악자전거, 스쿠버다이빙, 등산 모임을 만들어 직장대항전에 참가하고 전국대회에도 출전했다.

■항만 자동화와 고용안정 접점 찾기

직장이 늘 안온했던 건 아니었다. 2006년 신항 개장으로 일감이 부족해지면서 장비기사 948명이 신선대부두를 떠나야 했다. 다시 2013년에도 우암부두와의 합병으로 130명이 구조조정 대상이 되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를 하루아침에 떠나보내야 했던 아픔은 아직 상처로 남아 있다. 이후로도 항만이 조금씩 자동화되면서 신호수를 비롯한 동료가 하나씩 주위에서 사라져갔다.

이번 자동화는 숫제 태풍이다. 그에 대해 항만장비를 다뤄온 기사들은 대체로 부정적이었다. 특히 갠트리크레인 무인화에 대해선 “신기하다!”는 냉소적 반응을 보였다. 강풍에 흔들리는 선박의 컨테이너를 다루는 기사들의 섬세한 ‘감(感)’을 센서나 컴퓨터가 따라오겠냐는 것이었다. 작업속도 역시 포물선을 그리며 컨테이너를 옮기는 기사들이 직각으로 움직이는 무인장비보다 월등히 빠르다고 주장했다. 무엇보다 그들은 기사들이 서로 호흡을 맞추고 신뢰를 쌓아온 작업장의 분위기가 사라질 것을 염려했다.

하지만 일찍이 안종식 기사가 중장비로 인정을 받았듯 항만 자동화는 거스르기 어려운 대세다. ‘중대안전사고 감소’와 ‘컨테이너 처리 시간 단축’이란 목표는 무조건 반대하기 어려운 사안이다. 부산항 신항에서 자동화는 무인(無人) 갠트리크레인을 설치한 2-4선석 개장에 이은 2-5선석의 무인운송장비(AGV) 도입 계획 등으로 꾸준히 추진될 전망이다.

문제는 항만근로자다. 북항 인력을 전원 고용한다는 보도에도 불구하고 논란은 수그러들지 않는다. 이윤태 부산항운노동조합 위원장은 “우리는 기술 진보를 무조건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삶의 질을 높여준다는 첨단 시설과 장비가 일자리를 줄이는 건 좌시할 수 없다”고 말했다. 그는 AGV 도입에 관한 사전 협의가 없었고 인력 재배치계획도 모호하며, 장기적으로 단순하역인력 실직이 불가피한 데도 어차피 사라질 신호수 등을 고용하겠다는 약속은 허구라고 지적했다.

남기찬 전 부산항만공사(BPA) 사장은 한국이 항만 자동화를 추진한 동기가 항만인력 부족이나 과도한 인건비 때문에 시작한 외국과 다르다고 보고 있다. 따라서 “인력 재배치를 위한 정부와 항만공사, 운영사, 항운노조의 포괄적 종합적 협의와 재취업 기회 제공, 기금 마련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는 “항만인력 고용승계와 재배치, 보상, 지원에 대한 협의가 필수적”이라는 김근섭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항만연구본부장의 견해와 일치했다. 나아가 김 본부장은 자동화로 인한 산업 전반의 다양한 변화와 신종 직군의 출현에 대비한 혁신적 창조적 직무교육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이에 고정한 한국항만연수원 부산연수원 교수는 “현재 젊은 층 위주로 리모트컨트롤 등의 교육이 진행 중”이라 전하면서 ‘장비 정비’와 ‘자동화기기 보수’ 등을 장차 고용이 창출될 유망직군으로 꼽았다.

“이제 스마트항만 구축은 문명사적 필연”이라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은다. 그러자 한편에선 그 편익이 항만근로자에게도 돌아가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진다. 그동안 항만에 생명을 불어넣느라 피땀을 흘린 항만근로자의 헌신을 돌아보면 마땅히 그래야 할 듯 싶다.


▶도움 말씀 주신 분 = 남기찬 전 부산항만공사 사장, 이윤태 부산항운노동조합 위원장, 김근섭 KMI 항만연구본부장, 고정한 한국항만연수원 부산연수원 교수, 이진규 부산항운노동조합 지부장

※ 공동 기획=국제신문·한국해양수산개발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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