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신 이름 내건 박원욱 병원장
- 개원 초 자금난·횡령 등 시련
- 뼈 깎는 구조조정도 원칙 지켜
- 모든 직원 직접 만나 설명까지
- 10년간 휴가 단 이틀 …병원 몰두
- 덕분에 부인은 혼자 놀기 달인
- 직원 소통 위해 취미생활 맞춰
- 내시경 수술로 손 성한데 없는
- 손상규 병원장은 엄격한 가장
- 야단도 치며 구성원 성장 도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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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원욱병원은 매년 봄 여름 가을 겨울 직원들과 함께 이벤트를 갖는다. 2018년 10월에는 병원 지하1층 테라스에서 독일 맥주축제를 리뉴얼한 ‘옥토버 페스트’를 열었다. 이날은 특히 진료원장들이 1일 쉐프와 서빙을 담당했다. 왼쪽 첫 번째가 손상규, 세 번째가 박원욱 병원장이다. |
■원칙 지키되 같이 걷는 리더십
“저는 리더십이 없는 사람이에요. 선천적으로 화를 잘 못내요.”
99병상에 총 9명의 전문의, 11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하는 병원을 10년간 이끌어왔다는 박원욱병원 박원욱 대표병원장이 뜻밖의 말을 던졌다. 인터뷰하던 소설가는 잠시 말을 잃고 고개를 들었다.
박원욱병원은 정형외과(척추 및 관절) 신경외과(척추 및 중추신경계) 신경과(중추신경계·뇌졸중·파킨슨병 및 말초신경 질환) 영상의학과 마취통증의학과 등 척추 및 관절 위주의 진료를 표방하며 2011년에 개원했다. 이후 중앙이 아닌 지역에서 고군분투하면서도 척추치료 분야에서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2018년에는 양방향 내시경 수술(UBE)의 창시자인 손상규 병원장 등 척추 및 관절 의료진을 보강해 최소침습과 변형수술 두 영역을 함께할 수 있는 지역 유일의 병원으로 우뚝 섰다. 명실공히 척추·관절 중점병원의 입지를 더욱 확고히 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 병원의 병원장이 “지금까지 병원을 잘 이끌고 온 리더십은 무엇입니까”라는 뻔한 질문에 뜻밖의 대답을 내놓은 것이다. “처음 병원을 운영하며 여러 시련을 겪었죠. 지금 생각하면 시행착오라 생각할 수 있지만 여러 문제가 있었어요.”
병원은 개원 이후 99병상 중 98병상까지 찰 정도로 환자가 밀려들었다. 하지만 병원의 적자 폭은 이와 반비례해 커져만 갔다. 보존적 치료 후 정통 수술 방식의 원칙을 지키고, 비급여 수술을 최대한 지양했기 때문이었다. 한국은 특이하게 보건복지부의 공무원이 의료 행위나 약제에 대한 급여기준을 정한다. 현실과 괴리된 책상머리 정책인 것이다. 그 기준 준수의 확인 과정에서 진료행위에 대한 의료비 삭감은 이미 많은 논쟁을 낳고 있다. 수년 전 이국종 아주대병원 교수를 통해 크게 이슈가 됐던 ‘수술을 많이 하면 할수록 적자’라는 말이 생각났다. 의료체계의 오류와 불합리한 시스템의 문제가 떠오르는 대목이다.
“그런 문제와 함께 병원 전반에 대한 관리가 부실했어요. 저는 체질적으로 리더십과는 거리가 있는 사람이에요. 심지어 실수한 후배 의사에게도 화를 못 냈으니까. 이후 갖 가지 문제가 드러났어요. 자금난, 직원 간 갈등, 횡령까지…. 하루는 혼자서 곰곰이 모든 문제를 되짚어 보았죠. 분석하는 것도, 모든 책임을 져야 하는 것도, 결국 저였어요. 제 이름이 걸린 병원이니까요.”
뼈를 깎는 노력이 뒤를 따랐다. 많은 구조조정을 하면서도 지킬 부분은 끝까지 지키려 노력했다. 인원 감축 대목에선 안타까운 표정이 그대로 드러났다. 당시 박 병원장은 행정책임자에게 맡기지 않고 직원 한 명 한 명을 직접 만나 사실을 전했다고 한다.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지만 지금 생각해도 가장 안타까운 시기였어요. 참 미안했죠. 더 많은 사람에게 피해가 가면 안 된다는 절박함도 있었어요. 그 또한 제가 짊어질 부분이었죠.”
리더십이란 말에 손사래 치는 박 병원장이지만, 지금의 박원욱병원이 있게 만든 것은 바로 저런 자세에서 우러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환자를 진료하듯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원칙을 지키되 같이 걷고 걱정하는 리더십을 자연스레 형성했던 것이다.
■10년 고군분투와 이틀간 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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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병원 직원들이 제주도 앞바다에서 스킨스쿠버를 하는 모습. 전 직원의 3분의 1이 자격증을 갖고 있다. |
박원욱 병원장의 노력은 10년간 단 이틀 휴가를 했다는 말로 상징된다. 병원일 외에도 그는 자신의 분야에서 끊임없이 연구와 실천을 거듭했다. 박 병원장은 부울경 척추외과학회장을 역임했고, 부산시교육청 척추측만증 케어 서비스 대표의사, 건강보험심사평가원 부산제주지원 척추전문 심사위원으로 현재 활동 중이다. 그런 그이지만 가족 얘기가 나오자 한숨부터 먼저 내쉰다.
“그렇게 달려오며 가장 미안하고 가장 고마운 게 가족입니다. 개원 후 5년간 10원 한 장 갖다 준 적이 없을 정도였으니까요. 정신을 차리고 보니 아내는 산악자전거에 스킨스쿠버까지 혼자 놀기의 달인이 되어 있더라구요.”
취미 얘기가 나온 김에 그의 독특한 취미관도 들을 수 있었다. “저는 골프를 되도록 안 치려고 했어요. 불편한 사람과 치면 그게 그렇게 몸에 안 맞더라구요. 그 시간에 직원들과 함께 즐길 수 있는 취미를 찾았죠. 스킨스쿠버나 스키는 직원들과 함께 하며 체득한 취미에요.” 불편하단 말엔 여러 의미가 있으리라. 가족이나 직원들이 애호하는 취미에 맞추다 보니 자신도 그 취미를 즐기게 됐다는 얘기였다. 역시나 같이 걷는 사람이었다.
“사실 오래된 취미는 따로 있어요. 중학생 때부터 연주했던 클래식 기타를 무척 좋아합니다. 잘 치고 못 치고를 떠나 연주회도 1년에 한 번씩 개최하죠. 초등학교 때부터 열심히 해왔던 우표 수집은 이제 마니아 수준입니다.”
그러고 보니 복도에는 박원욱 병원장이 개최한 클래식 기타 연주회 사진이 붙어있었다. 우표 중 가장 사랑하는 것을 묻자 ‘구한국 일자첨쇄’우표 4장을 뽑는다. 우표를 설명하는 그의 얼굴에 살짝 홍조가 보인다. 장난감을 가지고 놀 줄 아는 어른, 진짜 마니아인 것이다.
■손이 먼저 말해주는 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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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상규 병원장은 오른손이 더 크고 거칠다. 20년간 수술 때 펀칭질과 소량의 X선을 쬐다 보니 이렇게 변했다. 직업병이다. |
박원욱 병원장의 솔직담백한 얘기를 듣다 보니 어느덧 시간이 흘러 있었다. 그런데 박 병원장의 얘기에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었다.
“정형외과 전문의는 보통 성격이 활달하고 외향적이에요. 그런 점에서 저는 많이 내향적이죠. 그래서 우리 병원에서 야단도 치는 아버지 역할은 따로 있어요. 아, 마침 저기 오시네.”
손상규 병원장이었다. 안 그래도 호기심이 잔뜩 부풀어 있던 터라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주먹인사를 나누었다. 때마침 소설가의 촉이 갑자기 발동했다. 그의 손이 눈에 확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부두 노동자와 같은 거친 오른손은 다른 손보다 한결 컸고, 엄지손가락의 손톱 일부가 까맣게 죽어 있었다.
“아, 제 손 말입니까. 이거야 뭐 수술할 때 한쪽 손으로 펀칭질을 하도 많이 하다 보니 이래 커져 버렸습니다. 하하하! 손톱 이거요. 이것도 수술 덕이지요.”
내시경 수술할 땐 절개를 하지 않고 최소의 구멍을 낸다. 그때 그 구멍이 제대로 뚫렸는지 소량의 X선을 비춰 확인하는 기구가 있다. 수술 중 직접 확인하며 피치 못하게 계속 엄지 부분을 X선에 쬐다 보니 까맣게 점이 되었다는 얘기였다.
“오늘도 4번 했으니까…. 한 20년간 수술을 거의 매일 3, 4회 하다 보니 워낙 많은 빈도에 피폭량이 누적된 거죠.”
이 병원 왜 이러나. 만나는 분마다 입이 쩍 벌어지는 얘기들이 쏟아진다. 그런데 왠지 정겹다. 그러면서 쉬지 않고 달려온 부모님들의 모습이 겹쳐진다. 한 지역의 가치는 그곳에서 땀 흘리며 노력하는 사람들에게서 형성되는 것이다. 손상규 병원장의 이어지는 이야기가 기대되는 이유다. 배길남·소설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