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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롯데그룹 창업주인 신격호 명예회장이 생전에 고향인 울산 울주군 삼동면 둔기리 생가에서 열린 마을잔치에 참석해 주민과 악수를 나누는 모습. 롯데그룹 제공 |
신격호 롯데 명예회장과 부산·울산·경남의 인연은 매우 깊다. 가난했던 울산 농가의 장남으로 태어나 ‘돈을 벌어보겠다’는 결심을 세웠던 곳이 부산이었다. 스무 살이던 1941년 부산 중구 남포동 일대에서 지내면서 일본을 오가는 큰 선박을 보며 사업가로 꿈을 키웠다.
1950년대 일본에서 껌과 초콜릿 사업을 벌여 성공한 뒤 박정희 전 대통령으로부터 고국의 투자 권유를 받고 입국한 그는 롯데제과를 설립해 성공한 후 200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부산에 투자하기 시작했다. 현재 롯데백화점과 롯데마트, 롯데호텔 등 20여 개 계열사가 부산에 본사와 영업망을 두고 있다. 직간접적으로 이곳에 소속돼 근무하는 이가 4만여 명에 이르는 것으로 추산된다.
지역 기반 시설에 적극 투자했다. 1000억 원이 넘는 예산을 들여 영도다리 복원사업에 참여하고 부산시가 북항에 추진 중인 오페라하우스 건립 사업에도 예산을 지원하고 있다. ‘부산=롯데’라는 인식이 자리 잡은 것은 ‘롯데자이언츠’ 야구단 운영이 계기가 됐는데, 부산 야구 팬들에게는 투자 등에 인색하다는 평을 받기도 했다.
신 명예회장은 1987년 민주화운동으로 쟁취한 언론 자유화 조치로 1989년 2월 복간된 국제신문 경영에 뛰어들기도 했다. 롯데그룹은 1990년 국제신문을 인수해 직접 운영하다 '김대중 정부의 언론사와 재벌 분리 정책'에 따라 국제신문을 그룹에서 분리시켰다.
부산상공회의소 허용도 회장은 “신격호 회장이 이끄는 롯데가 부산에 기여한 부분이 적지 않다는 것을 부산시민과 기업인은 모두 잘 알고 있다. 신동빈 회장이 뒤를 이어 부산에서 롯데가 더 많이 기여하는 토대를 만들지 않겠느냐”면서 애도의 뜻을 밝혔다.
고인은 고향인 울산에도 각별한 애정을 쏟았다. 1971년 울산지역 공업용수댐인 대암댐의 건설로 고향인 둔기마을이 수몰돼 주민이 흩어졌다는 소식을 듣고 마을사람들과 함께 둔기회를 조직했다. 이어 신 회장은 실향민이 된 마을사람들의 아픔을 위로하기 위한 잔치를 마련했으며 이 행사가 2014년까지 유지됐다. 매년 5월 초 열리는 잔치에는 실향민과 가족을 포함해 평균 1000여 명이 몰릴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그러다 세월호 사태 이후 2015년부터 중단된 상태다.
김성룡 방종근 김화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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