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민이 어선현대화 의견 제시
- 전문가 심의·실증 거쳐 법 개정
- 원양선망 선단 5척→4척 변경
- 복지·안전성 강화, 수익성 개선

- 국내 대형선망 어선 대다수 낡아
- 본선 129→199ｔ 신조선 추진
- 정부 지원에도 참여 선사 없어
- 부산경제 악영향 가능성 커져
- 보조금 정책 현장의견 반영해야

‘국민생선’ 고등어를 잡는 대형선망은 국내 연근해 41개 업종 중 규모가 제일 크지만 어선들의 노후화는 가장 심각하다. 현재 대형선망 24개 선사와 선원 1500여 명 모두 부산에 근거지를 두고 있다. 고등어가 경매되는 공동어시장의 임직원부터 중도매인, 항운노조, 유통업자, 운송업자 등을 합하면 관련 산업 종사자가 1만 명에 이른다. 이 때문에 어선 노후화에 손을 놓고 있다간 부산 경제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우려감이 크다. 이에 본지는 국내 어선 노후화의 현황과 일본이 2008년부터 진행한 어업구조개혁 프로젝트를 짚어보고 전문가 좌담회를 통해 대형선망 어선뿐 아니라 국내 어선의 노후화 문제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본다.

■ 정부의 대책 마련… 업계는 ‘글쎄’

국회 입법조사처는 지난 8월 ‘2017 국정감사 정책자료’를 통해 “노후화된 연근해어선과 이에 대한 안전대책이 시급하다”고 밝혔다. 정책자료에 따르면 21년 이상인 배를 노후화 어선으로 보면 연안어선 4만5000여 척 중 15.5%, 근해어선 900여 척 가운데 28.9%가 이에 해당된다. 특히 해양수산부의 해양수산통계연보에 따르면 대형선망 어선의 경우 21년 이상 어선이 143척 중 92%(134척)로 가장 심각했다.

입법조사처는 최근 5년간 2889건의 해양사고 중 노후화로 인한 주기관, 보조보일러 등 보조기기 손상 사고가 35%를 차지하고 있어 향후 이런 유형의 사고가 계속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젊은이들이 배를 타지 않으려는 현상과 유류 과다 사용 등 다양한 문제점을 해결할 수 있어 정부의 어선현대화 사업이 빨리 확대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해양수산부는 2014년부터 ‘대형선망 어선 선진조업시스템 구축 연구개발사업(정부 81억 원, 업체 60억 원 부담)’을 추진하고 있다. 이 사업을 통해 현재 129t인 대형선망 본선의 침실 등 선원 복지 공간을 늘리고 자동화와 함께 성능을 높여 일본 선망어선(199t) 수준으로 만들 계획이다. 하지만 선사가 한곳도 참여하지 않으면서 해수부가 확보한 예산은 불용 처리돼(본지 지난 7월 10일 자 18면 보도) 내년도에는 사업 자체가 사라지게 됐다. 특히 해수부가 신조선 건조비용의 50%를 지원하는 등 파격적인 지원조건을 제시했지만 수산업계가 소극적으로 나서 어선 노후화 문제는 해결되기 어려울 전망이다.

■ 일본 ‘상향식’ 어업개혁프로젝트

우리나라와 유사한 어업 여건에 놓여있지만 일본은 지속적인 어선현대화로 연근해 어업의 경쟁력을 높이고 있다. 특히 일본 정부는 2008년부터 ‘어업구조개혁프로젝트’를 펼치고 있다. 정부가 일괄적인 표준선형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어업인이 스스로 에너지와 인력절감, 수산물 선도제고 등 다양한 유형의 개혁형 어선을 일본 어업협동조합을 통해 제시하는 방식이다.

어민들의 의견은 산·학·연·관의 전문가로 구성된 지역협의회와 중앙협의회를 거친 후 배를 만들고 3년 동안 시험조업을 실시한다.

일본 원양선망협동조합 마코토 호타이 부장은 “어업구조개혁프로젝트는 선주가 배를 만들기 위해 지원해주는 시스템이 아니다”라며 “어업인이 수익성을 개선하면서 수산자원관리가 합쳐진 새로운 모델을 제시하면 정부에서 이를 지원하는 형태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심의 과정에서 새로운 형태의 조업방식 제시 여부와 생산성이 3%이상 향상하는지가 중점적으로 검토된다. 생산성 향상을 목적으로 한 개혁형 어선의 경우 어선의 규모가 기존 어업 제도에 맞지 않는 경우가 많았다. 이 때문에 사업이 종료되면 일본 수산청에서는 어업허가를 변경하고 관련 법령을 개정해 실제 어업활동에 적용한다.

■ 선원복지공간 늘리고 비용 줄이고

기자는 어업개혁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9월 신조를 마친 일본의 대형선망 어선인 ‘키요마루’호를 둘러봤다. 일본 히라도 시 선적의 199ｔ급 어선인데 선원복지공간을 대폭 확충했지만 선단의 구조를 변경해 비용을 아꼈다. 기존의 일본 대형선망 어선은 5척의 배가 하나의 선단을 이뤄서 조업했다. 하지만 어업구조개혁 프로젝트를 통해 4척의 배가 하나의 선단을 이루도록 구조를 개선했다. 이에 따라 선단에 필요한 선원도 기존 55명에서 45명 수준으로 줄었다.

또한 ILO(국제노동기구) 어선원노동협약의 기준에 부합할 수 있도록 어선원 복지를 위한 공간을 대폭 확충했고 선실의 대부분을 수면 위에 배치해 안전성을 강화했다. 선실에는 선원들이 이용할 수 있게 개별 냉장고와 TV 등을 설치했고 층고를 높여 선원들이 쾌적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설계했다.

한국해양수산개발원(KMI) 엄선희 부연구위원은 “우리 정부와 전문가들은 어선현대화의 개념을 수산업의 생산성을 높이는 것으로 보고 있고 어업인들은 어획 능력을 높이는 것으로 본다”며 “한쪽에서는 어획 능력이 지나치게 높다고 수산자원 관리를 위해 세금을 들여 감척사업을 진행하는데, 다른 쪽에서는 기존 어선을 현대화해 어획 능력을 향상시키려고 한다”고 말했다.

그는 “정부가 어선 현대화를 지원하는 이유는 바로 국민들에게 수산물을 보다 저렴하게 공급하기 위한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해야 한다”며 “수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규모화와 생산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한 만큼 제대로 일을 추진할 수 있는 사람에게 보조금을 과감하게 지원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일본 히라도=이수환 기자 leesoo@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