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현대차도 지분비율 떠안아
- 경총, 제조업 전반 악화 우려

통상임금 관련 1심 재판에서 패소한 기아자동차가 조 단위의 ‘임금 폭탄’을 떠안게 되면서 가뜩이나 내우외환에 휩싸인 자동차 업계의 위기감이 최고조에 달하고 있다.

기아자동차 ‘통상임금’ 소송의 1심 선고가 내려진 31일 오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법에서 일부 승소 판결은 받은 노조측 관계자들이 관련 발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기아차는 31일 입장 자료를 통해 “(1심 패소로) 당사가 잠정적으로 부담해야 할 금액은 1조 원 안팎으로 예상된다”고 밝혔다. 아직 1심 선고인 만큼 막대한 재원이 당장 비용으로 지출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법적으로는 판결 시점(올해 3분기)부터 이 예상비용을 회계장부에 ‘충당금’ 형태로 반영해야 한다. 회계장부상으로는 적어도 수천억 원의 영업손실이 불가피하다. 기아차가 올해 3분기 통상임금 관련 충당금을 모두 반영해 영업적자를 내면, 이는 2007년 3분기 이후 10년 만의 일이다.

더욱이 기아차의 지분을 33.88% 가진 현대차도 지분법에 따라 이 적자를 지분 비율만큼 떠안게 된다. 이날 판결이 현대차그룹을 넘어 자동차업계의 ‘도미노 위기’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재계는 이날 판결에 대해 “노사 간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라며 반발했다. 경제단체들은 이에 따라 통상임금의 명확한 범위와 규정 등은 물론, 신의칙의 세부지침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사용자를 대표하는 한국경영자총협회(경총)는 이날 논평에서 “기아차의 임금 부담은 (현대·기아차와) 협력 관계를 맺은 수많은 중소기업에 영향을 미쳐 제조업 경쟁력 전반이 악화되는 결과를 낳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대기업·공공부문 근로자에게 신의칙을 엄격히 적용하는 법원의 태도는 통상임금 논쟁의 최종 수혜자를 ‘좋은 일자리’를 가진 정규직 근로자로 귀결시켜 노동시장 양극화를 심화시킬 뿐”이라며 “이는 취약근로자 보호를 중시하는 최근 정책과도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박재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환경조사본부장도 “이번 통상임금 판결은 대법원이 제시한 신의칙을 인정하지 않은 것으로 상급심에서는 더 심도 있게 고려해 판단해 주기를 기대한다”고 밝혔다.

통상임금 관련 ‘줄소송’이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바른정당 하태경 의원과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통상임금 관련 소송이 진행 중인 국내 기업은 올해 6월 말 기준 115개사에 달한다.

동남권에서는 현대·삼성·두산·한진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위아, STX조선해양 등이 이 문제를 놓고 노조 등과 법적 다툼을 벌이고 있다. 이미 경총은 2013년 발표한 보고서에서 “정기상여금이 통상임금으로 인정될 경우 전체 노동비용 증가 규모가 최대 38조5509억 원에 달할 것”이라고 주장했다.

자동차부품 업계도 침울한 분위기다. 현대·기아차의 경영 위기는 이들 업체의 생존을 위협하는 리스크가 될 수 있다. 이미 현대·기아차의 올해 상반기 중국 판매량은 중국 당국의 각종 규제 등으로 지난해 상반기보다 52.3%나 줄었다. 자동차산업협회는 “통상임금 판결에 따른 막대한 임금 부담은 업계 전반의 경쟁력에 치명타를 줄 것”이라고 말했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