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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2일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에서 한국남극관측탐험단 원조 단원 토크콘서트가 열리고 있다. 김성효 기자kimsh@kookje.co.kr |
- 초기 단원 17명 중 6명 모여
- 정주영 전 현대 회장 지원 등
- 초창기 어려움과 추억담 나눠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재로 취임했는데, 아무도 생각 못했던 남극 탐사를 여기 계시는 홍석하 대표로부터 제안 받고 가슴이 뛰었습니다. 팀원 구성에 애를 먹었지만, 경비 마련과 정부 허가 등이 더 큰 문제였어요." (1985년 한국남극관측탐험단장 윤석순)
"당시 남극에 간다는 것은 우리에겐 탐험이었지만 외국에서는 과학탐사와 연구의 개념이었어요. 그래서 팀 이름도 탐험대에서 관측탐험단으로 바꿨어요. 비행기에서 낙하산을 메고 남극대륙으로 뛰어내렸어요. 목숨을 걸었었죠." (한국남극관측탐험단 대장 홍석하)
지난 2일 오후 부산 영도구 소재 국립해양박물관 대강당. 이곳에서는 대한민국의 극지 진출 30주년을 기념해 1985년 국내 최초로 극지 탐사에 나섰던 한국남극관측탐험단 단원 17명 중 6명이 토크콘서트를 펼쳤다.
참석자들은 저마다의 추억담을 펼치면서도 "극지는 인류 마지막 보고이자 우리의 미래 먹거리가 있는 곳이다. 젊은이들이 충분히 도전해 볼만한 곳"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단장이었던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은 "그해 8월 바로 여기 부산의 한국해양대에서 해양소년단 대회가 열렸는데 참가자들이 '나가자 바다로!'라고 외치는 소리를 듣고 남극 탐사 결심을 했다"며 "정부예산 퇴짜를 맞은 후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 흔쾌히 경비 지원을 승낙해 주셨던 기억이 아련하다"고 뒷얘기를 전했다.
남극 최고봉인 빈슨메시프(해발 4897m) 정상에 올랐던 허정식(사람과산 이사), 허욱(서울등산학교 교장) 등 당시 대원들은 "72시간 계속된 블리자드 등 악천후 속에서 더 이상 오를 곳이 없는 정상에 섰을 때 눈물이 쏟아졌다. 정상에 있던 국제연합(UN) 깃발 옆에 태극기를 내걸고 애국가를 불렀다"고 회상하기도 했다.
과학자로서 관측탐험단에 동참했던 장순근 박사(극지연구소 명예연구원)는 "당시 우리의 탐사 성공이 계기가 돼서 이듬해인 1986년 우리나라가 남극조약에 가입했고, 지금은 남극 2곳 북극 1곳의 과학기지와 쇄빙연구선 아라온호까지 갖춘 극지 강국이 됐다"고 남극 도전의 의미를 부여하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