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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일 스키두를 탄 극지연구소 팀원들이 영하 20도의 폭풍설을 뚫고 코리안루트 개척에 나서고 있다. 이날 팀원들은 장보고 과학기지에서 120㎞ 떨어진 지점에서 출발, 내륙으로 60㎞를 전진해 올해 목표 지점 도달에 성공했다. 박수현기자 parksh@kookje.co.kr |
- 미지의 생명체 존재 추정 빙저호
- 탐색·시추 위한 루트 개척 박차
- 제3의 기지 건설도 함께 추진
- 성공 땐 세계 5대 극지강국 부상
- 대원들 영하 20도 폭풍설 뚫고
- 빙하 균열 맞서 목숨을 건 도전
"왼쪽에 크레바스(빙하의 표면에 생긴 깊은 균열), 위험하다. 오른쪽으로 이동하라. 오버."
두두두두두~. 16일 오전 11시께 AS350 헬기를 타고 남극 장보고과학기지의 내륙 방향 120㎞ 지점 상공을 저공비행 중이던 유한규(코오롱스포츠 상무) 안전대원의 목소리가 무전기를 타고 전해졌다. 영하 20도의 혹한에 폭풍설(블리자드)이 몰아치는 빙원 위에 스키두(설상 오토바이)를 몰던 극지연구소 박창근 선임연구원, 정지웅 선임기술원, 한상우 안전대원이 방향을 급히 틀었다. 크레바스 옆을 스쳐 지나간 대원들은 식은땀을 흘렸다.
앞서 이주한 극지안전실장을 비롯한 크레바스 탐지팀은 헬기와 지표투과레이더(GPR)를 활용해 크레바스를 탐지해 표시한 지도를 건네받았지만, 위험이 완전히 제거되지 않았다. 지도에는 크레바스를 나타내는 빨간색이 가득했다. 이 때문에 세 대의 스키두는 헬기의 유도 아래 위험한 크레바스가 많은 빙원 쪽이 아니라 암벽 옆으로 바짝 붙어서 내륙 이동경로를 개척하느라 어려움을 겪었다.
극지연구소는 장보고기지를 교두보로 빙저호(얼음 밑 호수) 탐사와 제3의 내륙기지 건설에 필요한 '코리안 루트' 개척을 1차 하계대가 도착한 지난 3일부터 본격적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종익 책임연구원은 "헬기 두 대, 스키두 세 대, GPR을 동원해 크레바스탐지팀과 육상루트탐사팀으로 역할을 나눠 코리안 루트 개척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극지연구소는 자체 연구비 5억 원을 편성해 지난 5월부터 내년 4월까지 '남극 빅토리아랜드 코리안 루트 사전조사와 빙저호 탐사를 위한 기획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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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빙으로 생긴 균열 |
빙저호는 암흑, 낮은 영양분, 높은 압력의 환경으로 호수의 물과 퇴적물이 기후 변화에 중요한 정보를 제공할 뿐 아니라 대기, 햇빛의 영향이 미치지 못한 채 수천만 년간 격리된 상태로 존재한다. 만약 빙저호 탐사가 성공해 이곳에서 알려지지 않은 생명체가 발견된다면 세계적인 과학 업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 극지연구소가 인공위성으로 조사한 결과, 장보고기지 반경 400㎞ 이내에 빙저호로 추정되는 얼음 밑 지형이 10여 개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 정확하게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코리안 루트 확보가 시급하다. 제3 내륙기지는 남극 세종기지, 장보고기지에 이어 남극점과 가까운 곳에 있는 제3의 과학기지를 말한다.
극지연구소는 2017년까지 장보고기지에서 빙저호가 탐지되는 지점까지 코리안 루트를 확보한 뒤 장보고기지 준공 10주년을 맞는 2024년 안에 우리 기술로 빙저호를 뚫겠다는 계획이다. 이 연구원은 "코리안 루트를 개척해 빙저호를 찾더라도 시추까지 하려면 상당한 기술과 준비가 필요하다. 그렇게 되면 우리나라는 빙저호 탐지 및 시추 분야에서 세계 5위권 극지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현재 남극 빙저호 시추에 성공한 나라는 미국뿐이다. 러시아는 시추에 성공했지만 환경오염이 문제가 되어 그 성과를 인정받지 못했다. 영국 역시 거의 성공 단계에 이르렀으나 두 개의 시추공을 연결하지 못해 실패했다. 빙저호 탐사가 우주 탐사보다 어렵다는 게 전문가의 지적이다.
극지연구소는 빙저호 탐사와 제3 내륙기지 건설에 필수적인 코리아 루트를 효과적으로 개척하기 위해 내년에 연구원 10명이 숙식과 연구를 동시에 할 수 있는 차량 형태의 이동식 사무실인 '트레바스'를 마련하기로 했다.
※ 빙저호(Subglacial lake)
수백 m에서 수천 m 두께의 남극 빙하 하단부가 녹거나 얼지 않아 형성된 호수로 남극에만 존재. 빙저호는 ▷위에서 누르는 빙하의 거대한 하중이 만들어내는 열과 압력 ▷빙하 아래 얼음의 유동에 의한 마찰열 ▷지구 내부에서 기인한 열 때문에 형성되는 것으로 알려졌다.
# 세종기지는 기후, 장보고기지는 빙하 연구
- 날씨 등 여건 장보고기지 더 열악
우리나라는 1988년 세종과학기지를, 지난해 장보고과학기지를 준공함으로써 세계에서 10번째로 남극에 두 개 이상의 연구기지를 보유한 국가가 됐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남극에서의 모든 연구 활동은 세종기지를 중심으로 이루어졌지만, 장보고기지 준공으로 역할 분담이 가능해졌다.
두 기지는 닮았지만 다른 점이 많다. 세종기지는 남위 62도의 비교적 저위도권의 섬에 자리 잡아 육상 및 해양생태계 중심의 기후변화 연구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이와 달리 장보고기지는 남위 74도의 고위도권에 있어 빙하, 대기과학, 운석 연구뿐 아니라 빙저호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두 기지는 4500㎞나 떨어져 있어 교류는 사실상 어렵다.
지내기는 어느 쪽이 좋을까. 2006년 세종기지를, 올해 장보고기지를 현장 취재한 기자의 눈으로 볼 때 장보고기지가 최근에 지어진 첨단시설이라는 장점이 있지만, 날씨나 주변 여건은 열악하다. 연평균 영하 1.7도로 비교적 따뜻한 세종기지와 비교하면 장보고기지는 연평균 영하 14도, 최저 영하 35도까지 떨어지며, 95일이나 종일 밤이 되는 극야기를 극복해야 한다. 또 세종기지는 반경 30㎞ 이내에 칠레 아르헨티나 브라질 중국 러시아 기지 등이 모여 있어 비상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장보고기지 인근 상주기지는 350㎞ 떨어진 미국 맥머도 기지가 유일하다.
# "향후 극지 개척 아리랑위성 활용 계획"
■ 김예동 극지연구소장
극지연구소 김예동 소장(사진)은 "올해가 남극 내륙으로 가는 육상 이동경로인 이른바 '코리안 루트' 개척의 실질적인 원년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김 소장은 지난 13일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인근 이탈리아 마리오주켈리 해빙 활주로에서 가진 인터뷰를 통해 "지난해 준공한 장보고기지를 거점으로 삼아 이달 초 남극에 온 하계대원을 중심으로 코리안 루트를 열어 빙저호 연구와 제3 내륙기지 건설의 초석을 다지겠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취재진과 하계대원이 타고온 비행기 편으로 남극을 빠져나갔다.
김 소장은 "요즘 뜨는 빙저호 연구는 코리안 루트 개척뿐 아니라 탐지기술, 시추와 탐사장비 개발까지 광범위하게 이뤄진다. 극지 관련 과학기술과 공학을 융·복합하는 대형 프로젝트인 만큼 적극 지원하겠다"고 말했다.
김 소장과 함께 남극을 찾은 정부조사단에는 한국지질자원연구원 김규한 원장, 해양수산부 윤종호 해양개발과장, 한국항공우주연구원 최해진 위성정보활용센터장 등이 포함됐다. 김 소장은 "극지 연구의 외연 확대와 융합연구를 위해 지질자원연구원과 공동연구를 확대하고, 빠른 시일 안에 장보고기지에 아리랑위성 관제시설을 만들어 위성 자료를 극지 연구에 적극 활용하겠다"고 말했다.
※ 한국의 남극개척 주요 발자취
1985.11 우리나라 첫 남극탐험대 킹조지섬 파견
1986.11 남극조약 가입(세계 33번째)
1988. 1 대한민국 제1차 남극과학연구단 파견
1988. 2 남극세종과학기지 준공
1989.10 남극조약협의당사국 지위 획득(세계 23번째)
1990. 7 한국해양연구소 극지연구실을 극지연구센터로 확대 개편
2004. 4 극지연구소 설립
2009.11 쇄빙연구선 '아라온' 건조
2009.12 아라온 남극 첫 출항
2014. 2 남극장보고과학기지 준공
남극 장보고과학기지=박수현 오상준 기자 letitbe@kookje.co.kr
※이 기사는 극지 진출 30주년을 기념해 부산시 지원을 받아 취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