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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3일 부산 영도구 해양로 (주)영신칼스토리 전사실에서 생산팀 직원들이 프린팅작업을 하고 있다.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
- '장미칼' 출시후 홈쇼핑서 대박
- 국내 유일 '칼명장 선정' 기술력
- 웨이브형 칼날 등 숱한 특허
- 최근 중국산 저가 제품에 타격
- 발상 전환 고급제품 역수출 타개
부산 영도구 청학동에 있는 (주)영신칼스토리는 2012년 전국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장미칼'을 만든 회사다. 장미칼의 정식 명칭은 '장미천사'다. 당시 5만9800원이라는 적지 않은 금액이었지만 2011년 9월 출시 후 전국적으로 100만 세트 이상을 팔렸다. 이 회사 정재서(59) 대표는 "없어서 못 팔 정도였다. GS 현대 롯데 등 5대 홈쇼핑 MD들이 물건을 구매하려고 회사 앞에서 진을 치고 있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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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재서 대표 |
당시 장미천사는 칼의 날카로운 이미지를 줄이기 위해 세계에서 처음으로 장미 그림을 그려 넣었다. 칼날에 사용된 친환경 잉크와 코팅은 식약청 용출검사를 통과했고, 일본 통관 검사에도 합격했다. 장미천사에 사용되는 잉크와 코팅은 끓는 물에 3시간을 담가 놔도 변형되지 않을 정도다.
또 칼의 절삭력을 높이기 위해 칼날을 웨이브 형태로 만들었다. 일반 칼날은 냉동제품이나 단단한 재료를 자를 때 마찰력이 거의 없어 자르기가 힘들다. 하지만 웨이브형 칼날은 한 번의 동작으로도 많은 날이 동시에 작용해 톱으로 썰 듯 자르면 쉽고 깨끗하게 잘린다.
뿐만 아니라 일반 칼날은 하나의 날이 한 방향으로만 나 있어 사용 시 칼날 전체가 도마에 닿아 쉽게 무뎌지지만 장미천사의 칼은 다수의 원형 날이 일렬로 배열돼 있어 도마에 닿는 면적이 극히 작아 반영구적으로 칼날이 살아 있다.
장미천사를 만들 수 있었던 영신칼스토리 기술력의 원천은 대한민국 유일한 칼 명장인 정 대표 덕분이다. 정 대표는 45년 동안 칼에 '미쳐' 살아왔다. 14세 때 세신이라는 칼 회사에 취직했고, 칼에 대해 연구하기 위해 잡은 소가 수십 마리다. 평생 칼이라는 한 우물을 파온 공로와 활동이 인정돼 지난해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에서 국내 처음으로 '칼 명인'으로 선정됐다.
정 대표는 지금도 제품 개발을 직접하고 있으며 그의 연구 성과가 그대로 반영돼 영신칼스토리가 보유하고 있는 특허 및 의장 등록 수는 135건에 이른다.
장미천사를 통해 내수를 장악해 나가고 있었지만 영신칼스토리는 곧 중국에서 들어온 저가의 '짝퉁' 제품에 큰 타격을 입었다. 정 대표는 "1985년 영신이 창립된 후 그때까지 한 번도 매출이 꺾인 적이 없었지만 2013년 후반 중국의 모조품과 올해 세월호까지 터지면서 매출이 하락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영신칼스토리는 다시 한 번 도약을 준비 중이다. 지난 5월부터 신제품 '앙가네'를 출시해 중국으로 '역수출'하고 있다. 앙가네는 빵칼 과도 식도 대바(생선 손질용 칼) 가위 등으로 구성된 5종 세트로 세트당 7만5000원하는 고가지만 중국으로 현재 2만5000세트를 수출했고, 앞으로 17만5000세트를 더 수출할 계획이다.
또 기술개발로 칼날에 대한 경도를 높여 일반 칼보다 10배의 내구력을 가진 신제품 '엑스나이프'도 개발하고 있다. 영신칼스토리는 튼튼하고 강한 엑스나이프의 디자인을 제대로 표현해 '제2의 장미천사 신드롬'을 일으키기 위해 부산디자인센터와 디자인 작업도 진행 중이다.
정 대표는 "인간이 품고 태어난 치아가 태초의 칼이고, 각국의 음식문화에 따라 칼 모양도 차이가 난다"면서 "칼의 역사를 정리하고 전 세계의 칼을 수집해 3년 안에 영신의 이름을 딴 칼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 목표"라고 포부를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