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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을 극지 연구 허브로 <2-4> 극지박물관·체험관을 짓자- 극지 아카이브 구축

첫 남극관측탐험 자료 대거 훼손…데이터베이스화 서둘러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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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화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가 27일 자신의 집 방 한 칸에 가득 보관 중인 남극 탐험에 관한 자료를 들어 보이고 있다. 이 대표는 1985년 첫 남극관측탐험대 참가 이후 30년 가까이 11번 이사 갔지만 자료를 버리지 않고 다 모았다. 오상준 기자
- 해양소년단연맹 지하 전시장
- 홍수로 시료 등 수백 점 손상
- 사진 원본은 다른 곳에 보관

- 한국인 최초 남극대륙 밟은
- 이병돈 교수 유품 거의 사라져
- 아들 '한국 아문센' 재조명 나서

- 남빙양 처음 진출한 '남북호'
- 은퇴 땐 박물관 소장 가치 충분

1985년 11월 16일, 한국 남극관측탐험대가 남극 킹조지섬에 역사적인 첫발을 내디뎠다. 내년이면 우리 탐험대가 남극에 진출한 지 만 30년이 된다. 앞서 우리나라 최초로 남극 대륙을 밟은 고 이병돈(1928~95)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교수가 미국 유학 시절 1963년 3월 6일 남극에 간 지는 50년이 넘었다. 그 사이 한국은 남극에 2개(세종·장보고) 이상의 상설기지를 보유한 세계 10번째 국가로 도약했다. 이런 위상에 걸맞게 극지 개척에 관한 자료를 모으고 데이터베이스화하며 아카이브(기록 보관소)를 구축해야 할 때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시간이 흐르면서 극지 탐험의 귀중한 자료가 훼손되고 있어서다.

■해양소년단연맹 물난리로 자료 소실

   
1978년 남빙양 첫 크릴 시험조업에 나섰던 남북호(5549t). 선령이 40년에 이른다.
국내 첫 남극관측탐험에 관한 자료 상당수가 소실됐다. 1990년 어느 날, 남극관측탐험을 주도한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사무실이 물에 잠겼기 때문이다. 연맹은 당시 사무실 지하에 남극자료 전시장을 운영 중이었다. 남극 탐험을 통해 채집한 남극 시료, 사진, 화석 등 수백 점이 홍수로 훼손된 것이다. 수십 만 년 전의 단풍잎 화석도 잃어버렸다.

다행히 수천 점에 이르는 사진 원본은 훼손되지 않았다. 탐험대의 사진과 수중탐사를 맡았던 이동화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가 필름을 보관 중이다. 이 대표는 27일 "훼손될 것 같아서 필름을 연맹에 기증하지 않았다"고 전했다.

자료 보존이 어렵게 되자 소년단연맹 측은 크릴, 토양, 기념메달 등 33건 128점의 소장품을 부산 영도구 국립해양박물관에 기증했다. 이 대표는 "최초 남극탐험대, 세종기지건설단, 세종기지 1차 월동대, 세종기지 부두 및 장보고기지 건설에 참여하면서 얻은 남극 관련 자료를 버리지 않고 모았더니 방 한 칸 분량에 달한다. 자료 훼손을 막기 위해 극지박물관·체험관이 건립될 때까지 수장고에 보관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남극 최초 탐험대원들의 기억도 사라지고 있다.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 허형택 당시 해양연구소장, 장순근·최효 박사, 홍석하 탐험대장 등이 고령에 접어들어서다. 관련 자료를 시급하게 보존·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한국 아문센' 이병돈 교수 재조명

   
1965년 11월 20일 자 국제신문에 보도된 이병돈 교수에 관한 기사. 국제신문DB
'한국 아문센, 이병돈 교수'라는 국제신문 지난 2월 24일 자 2면 보도 이후 부경대는 온라인 소식지 '부경 투데이'에 "우리나라 최초로 남극 대륙을 밟은 사람은 부경인"이라는 내용과 함께 1965년 11월 30일 자 부산수산대 대학신문 '수대학보'에 실린 이 교수 기사를 소개하며 재조명에 나섰다. 앞서 국제신문은 이 교수의 남극 탐험 소식을 1965년 11월 20일 자에 보도했다.

부경대와 이 교수의 아들 이인섭 동의대 신소재공학과 교수는 국립수산과학관에서 운영하는 '수산과학인 명예의 전당'에 극지 연구의 초석을 놓은 이 교수를 헌액 대상자로 추천해 놓은 상태다. 이인섭 교수는 "아버지가 남극 동물플랑크톤에 관해 쓴 미국 텍사스 A&M 대학 박사학위 논문, 타자기를 빼면 카메라를 포함한 유품은 대부분 사라져 아쉽다"고 털어놓았다.

■남빙양 첫 크릴 시험조업 '남북호'

남극탐험대에 앞서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남빙양(남극해) 크릴 시험조업 형태로 남극 진출이 이루어졌다. 남북수산의 '남북호'(5549t·선장 이우기)와 수산진흥원(현 수산과학원) 조사단(단장 허종수)은 1978년 12월 7일 부산항을 출항해 남빙양에서 크릴 511t을 잡은 뒤 이듬해 3월 17일 귀항했다.

남북호는 남북수산 소속 러시아 베링해 명태잡이 어선으로 활동하며, 현재 진해항에 체항 중인 것으로 확인됐다. 이 배는 1974년 건조돼 선령이 40년에 달했다. 남북수산의 소유주가 바뀌는 우여곡절을 겪는 바람에 본지 취재팀은 남북수산, 한국원양산업협회, 수산과학원 등지에 수소문한 끝에야 이 배의 현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원양산업협회 이형균 부산지부장은 "남빙양에 처음 진출한 남북호는 우리나라 남극 진출사에서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 배가 은퇴하면 극지박물관에 소장할 가치가 있다는 얘기다.


# "극지박물관 자료수집부터 민관추진단 구성 바람직"

- 전문가들 자문단 설치 등 제안 "타당성 검토보고서 만들어야"

극지박물관 설립을 위한 자료수집 단계에서부터 민관 합동추진단을 꾸려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주장이 제기됐다.

부산근대역사관 나동욱 관장은 27일 "임시기구 성격의 추진단을 만들고 그에 대한 자문단을 둬, 자료 수집 분야를 확정하고 생존자의 증언을 녹취하는 등의 작업을 해야 한다"며 "자료 수집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린다. 자료 수집 과정에서 스토리(이야기)가 있으면 스토리텔링을 해 박물관 건립 후 교육에 활용할 수 있다"고 말했다.

나 관장은 이어 "추진단장이 나중에 박물관 총책임자가 되고 (추진단이) 수집한 자료를 바탕으로 교육과 연구에 활용해야 한다. 임시 추진단 활동 과정에서 박물관의 방향이 설정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추진단의 성격은 민관 합동 방식이 바람직하다는 게 나 관장의 견해다. 그는 "(민간에서 주도하더라도) 기술 분야, 박물관 분야 전문가들이 추진단에 참여하는 태스크포스 형식을 만들어 모여서 논의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부산은 넓다'의 저자인 부산박물관 유승훈 학예사는 "박물관 설립을 위한 타당성 검토보고서를 만드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유 학예사는 "보고서를 바탕으로 (박물관 방향에 맞춰) 수집하려는 자료의 위치, 종류, 박물관의 성격을 만들어 가야 한다"고 했다.

자료 수집을 위해서는 국가 정책 분야와 민간 분야로 나누고 국가 정책 분야에서 공문서, 사진 자료 등을 수집하고 민간에서는 탐험대원이 입었던 옷, 사용 물품 등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모든 대상물을 상대로 자료를 수집하는 방향으로 가되 전문가는 분야별로 분류하는 작업을 해야 한다는 뜻이다.


# "집채만한 파도 뱃머리 부딪힐 때 아찔"

- 시험조업 참여 김영승 전 연구관 "어선이라 유빙에 갇히기 일쑤"

   
"그렇게 큰 파도는 난생처음입니다. 설마 했는데 10m가 넘는 파고가 3000t급 배를 집어삼킬 듯 했습니다. 바람이 어찌나 센지 살갗을 면도날로 찌르는 추위를 잊을 수 없죠."

1980년대 초 세 차례 남빙양 크릴 시험조업에 참여한 김영승(66·사진) 전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은 27일 30년 전 남극 항해를 생생하게 기억했다. 고생을 많이 한 탓이다. 김 전 연구관은 1978년 11월 남북호의 첫 시험조업 이후 1981년 11월(2차), 1982년 11월(3차), 1983년 11월(4차) 세 차례에 걸쳐 대호원양 소속 '707 대호호'(3238t)를 타고 남빙양 시험조업에 조사원으로 참여했다. 세 번의 남빙양 항해 기간을 합치면 344일. 그는 당시 원양어업 담당자였다.

1983년 남빙양 크릴 어장 시험조사선 환영식이 열리고 있다. 김영승 전 국립수산과학원 연구관 제공
김 전 연구관은 비행기를 타고 싱가포르로 날아가 부산항에서 출발한 배와 합류했다. "쇄빙선이 아니라 어선을 타고 가서 유빙에 갇히기 일쑤였어요. 유빙이 배와 부딪혀 철판을 긁는 소리는 징그럽고 소름 끼쳐요. 지금도 생각하면 온몸이 오싹 얼어붙는 것 같아요."

그는 "4차 시험조업 때 남극 크릴을 부산 용두산공원에 전시하려고 배 안에 수족관을 설치해 키웠는데 일본 근처까지 와서 다 죽었다"고 일화를 소개했다.

수산과학원은 '남북호'를 타고 첫 시범조업을 이끈 허종수(1928년생) 단장의 생사를 확인하지 못할 정도로 자료 관리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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