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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5년 11월 16일 남극 킹조지섬에 도착한 한국 최초의 남극관측탐험대원들. 당시 탐험대 홍석하(오른쪽 세 번째) 대장, 장순근(네 번째) 한국과학기술원 해양연구소 책임연구원, 윤석순(다섯 번째)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재, 최효(여섯 번째) 해양연구소 선임연구원, 취재기자였던 김재철(여덟 번째) 전 MBC 사장. 한국극지연구진흥회 제공 |
- 고 이병돈 박사 1963년 첫 방문
- 윤석순, 1985년 탐험대 단장
- "국립해양박물관에 극지 코너를"
- 장순근, 박사 월동대원 4번 유일
- "고향서 부르면 헌신, 장비 기증"
- 이동화, 세종기지 부두 만들어
- 극지체험관·해운대 남극탑 추진
- 최효, 기후 관측 … 탐험 국제공인
- 33번째 남극조약 가입국 이어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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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 이병돈 부산수산대 교수 |
부산수산대(현 부경대) 증식학과 교수였던 고 이병돈(1928~95) 박사가 1963년 3월 한국인 최초로 남극 대륙을 방문한 사실이 확인된(본지 지난 2월 24일 자 2면 보도) 가운데, 1985년 남극 탐험대를 꾸려 탐사를 이끈 주역도 부산 출신이라는 점이 새삼 주목받고 있다.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 장순근 한국해양연구원 전 책임연구원(이상 부산고), 최효 강릉원주대 대기환경과학과 교수(경남고), 이동화 남경엔지니어링토건 사장(금성고)이 바로 그들이다. 이들은 우리나라 남극 탐험 1세대로 꼽히는 인물로, 한국의 극지 연구와 역사를 개척해왔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본지가 윤석순 회장, 장순근 박사, 이동화 사장을 만나 인터뷰한 결과 이들은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준공을 계기로 극지의 중요성을 청소년에게 교육하고 체험하게 할 극지박물관·체험관을 건립해야 하고, 그 적지가 극지 연구의 허브이자 극지 항해의 출발지인 부산이라고 입을 모았다.
■윤석순 "극지박물관 건립 소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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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장 |
윤 회장은 지난 28일 서울 마포구 진흥회 사무실에서 "다른 웬만한 나라에는 극지박물관이 다 있다. 해양수산부가 국립해양박물관(부산 영도구 동삼동)을 세웠다. 이 박물관에 극지 코너를 만들었으면 극지 문제를 다룰 수 있었는데…"라고 운을 뗐다. 그는 '아예 명칭을 국립극지해양박물관으로 바꾸면 어떠냐'는 기자의 질문에 "극지를 앞에 내세우면 (해양을 중시하는) 부산 사람이 화를 낼 것"이라며 "순서를 바꿔 해양극지박물관이면 아주 좋다. 박물관에서 1개 층만 내어주더라도 괜찮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국의 극지 연구와 역사는 부산 사람에 의해 시작됐다. 1985년 당시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재였던 제가 한국남극관측탐험대 단장이었고 해양연구소에서 파견한 과학자 2명(장순근 최효)은 물론 송원호 세종기지 건설단장(해양연구소 측 책임자)도 부산고 출신"이라고 강조했다. 윤 회장은 경남 창녕에서 태어나 하동 진교중을 거쳐 부산고 부산대 법대를 나와 민주정의당 국회의원 등을 지냈고, 국내 극지 연구·지원의 대부로 통한다. 당시 해양연구소 연구원이었던 장순근 최효 박사를 파견한 허형택 한국과학기술원 부설 해양연구소장도 부산 사람이다.
■장순근 "박물관에 소장품 기증할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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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순근 해양연구원 전 책임연구원 |
장순근 박사는 지난 28일 본지 인터뷰에서 "극지박물관이 만들어지면 남극 월동대 시절 쓴 일기장과 (남극에서 사용했던) 시계, 영하 60도에서도 견딜 수 있는 슬리핑백 등을 박물관에 기증하겠다"고 밝혔다. 극지박물관에 대해 그는 "극지의 역사와 현재를 보여주는 것 한 가지, 극지의 미래를 보여주는 것 두 가지로 나뉠 수 있다"며 "우리나라 박물관들은 나열·전시 위주여서 철학도 있어야 하고 자료도 많아야 하고 교육·연구로 가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에 극지박물관·체험관을 포함한 극지 허브 조성에 참여할 생각이 있느냐'는 질문에 그는 "한국에서 나이 많은 사람(장 박사는 1946년생)의 얘기를 잘 안 들으려 한다"면서도 "저더러 (고향에) 오라고 하면 이바지할 생각이 있다. 대한민국을 위해서라면 어디든 가겠다"고 강조했다.
장 박사는 부산 성동초등, 부산중·고를 거쳐 서울대 지질학과 프랑스 보르도1대학에서 미고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극지·지질·해양과 관련된 저서와 논문을 100여 편 이상 썼다. 장 박사는 박사 출신 가운데 월동대원으로 유일하게 네 번 참가(1·4·8·14차)했고, 거기서 글쓰기를 배웠다고 한다. 그는 "극지의 대자연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 당일에도 그가 쓴 어린용 도서 '사라진 동물들의 비밀'(리젬출판사)이 나왔다.
■이동화 "체험관, 청소년 모험심 길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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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동화 남경엔지니어링토건 사장(왼쪽), 최효 강릉원주대 교수 |
이동화 사장은 청소년이 극지를 체험하고 배울 수 있는 극지박물관·체험관을 부산에 짓자고 주창하고 있다. "극지 체험과 교육을 통해 청소년에게 꿈과 희망을 품게 할 수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1985년 해양소년단 단원이었던 그는 남극에 매료돼 탐사 당시 수심 60m 남극 바닷속에 뛰어들어 수중탐사를 했고, 2년 뒤 남극 세종기지 건설 때는 부두를 만들었다고 윤 회장은 술회했다. 장 박사는 이 사장에 대해 "정신이 똑바로 박힌 친구"라고 거들었다.
이 사장은 부산 해운대구 우동에 있는 건설회사를 운영하면서 남극세종기지 부두 및 장보고기지 건설에 참여하며 극지 건설 노하우를 쌓았다. 그는 "부산지역 20만~30만 평 규모의 바닷가에 극지박물관·체험관이 들어서면 극지에 가지 않더라도 방한복을 입고 혹한과 눈폭풍(블리자드)를 체험하고 극지 동·식물을 보고 배우며 극지에 관한 모험심과 탐험정신을 키울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해운대구청에서 동의한다면 사재를 털어 피서객이 많이 모이는 해운대해수욕장에 남극탑을 세워 극지의 중요성을 알리고 싶다"고 덧붙였다.
장 박사와 함께 처음 남극 과학자로 파견됐던 최효 박사는 남극에 도착해 기상관측기를 설치하고 기후를 관측했다. 남극 산과 바다, 하늘을 전방위로 탐사한 것은 민간(해양소년단연맹) 주도의 남극관측탐험이 국제 공인을 받기 위해서다. 이 탐험은 우리나라가 1986년 11월 28일 세계 33번째로 남극조약에 가입하는 데 중요한 실적이 됐다. 최 박사는 현재 강원도 강릉원주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 정부 "위험하다" 소극적, 정주영 회장 후원 성사…세종기지 '적자건설' 감수
■ 1985년 첫 남극 탐사 비화
한국의 첫 남극과학탐사의 최대 후원자는 고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이었다. 1985년 당시 정부는 "탐사가 위험하다"면서 소극적이었다. 남극 탐사가 민간 주도로 이뤄진 이유다. 재정 지원도 물론이었다. 30년 전 한국해양소년단연맹 총재였던 윤석순 한국극지연구진흥회 회장은 정 회장을 찾아가 탐험계획서를 보여주며 후원을 요청했다.
정 회장은 "대단한 용기"라며 현금을 주면서 "성공하라"고 기원했다. 윤 회장은 "탐험의 성공에는 정 회장의 지원이 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액수에 대해 윤 회장은 "좀 크게 도와줬다"라고만 말했다.
현대건설이 1987년 완공된 남극세종기지 건설을 맡았는데 정 회장은 한국에서 두 차례 남극에 지을 건물 조립을 예행연습했다. 철저한 연습이었다는 게 윤 회장의 증언이다.
정 회장이 건설을 진두지휘하며 현대가 쓰려던 2만t급 선박을 내어줬고 인부까지 태우고 남극으로 향했고 50일 만에 조립에 성공했다.
당시 현대건설 사장은 이명박 전 대통령이었다. 기지 완공 이후 문제가 생겼다. 현대건설이 남극기지를 건설하면서 20억 원의 적자를 보게 됐다. 이 전 대통령은 해양연구소를 상대로 소송을 걸었다. 나중에 알게 된 정 회장은 만류하며 일부만 보상받도록 하고 소송을 취하하도록 했다고 한다.
부산 출신인 허형택 해양연구소 소장은 과학자 파견을 요청하는 해양소년단연맹에 "과학자는 있지만 자금이 없다"고 했다. 결국, 파견 과학자 2명 중 1명의 자금을 해양연구소가 대고 나머지 1명의 체재비는 연맹에서 부담했다. 다른 연구소는 남극 탐험 때 과학자를 파견해 달라는 연맹 측의 요청을 묵살했다고 한다. 문화방송(MBC)도 연맹 측의 탐험계획서를 보고 자비 부담으로 동행 취재했다. 경남 사천 출신의 김재철 전 MBC 사장이 당시 동행취재단 중 1명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