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극에 다녀온 부산지역 인사 3명이 지난 4일 국제신문 회의실에서 토론을 하고 있다. 홍영현 기자 hongyh@kookje.co.kr

▶일시·장소 : 2월 4일 국제신문 5층 편집국 회의실

▶참석자 : ▷남청도 한국해양대 교수 ▷이동화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 ▷박수현 국제신문 사진부장

▶사회·정리 : 오상준 국제신문 해양수산부장


# 남청도 교수

- 북극항로 광활한 얼음바다 장관
- 中도 우수한 부산 물류시설 이용
- 쇄빙전문가 양성, 선박·화물 필요

# 이동화 대표

- 국내 첫 남극탐험… 수중에 태극기
- 지하자원·수산물 등 식량 노다지
- 정치논리 배제 미래 보고 투자를

# 박수현 부장

- 남극 바닷속 30회·다산기지 체험
- 아라온호 모항 부산돼야 효율적
- 지정학 이점 살리면 세계사 새장

극과 극은 통했다. 남극과 북극을 다녀온 부산 사나이 세 명이 모였다. 지난해 9월 정부의 북극항로 시범운항 프로젝트에 참여한 남청도 한국해양대 기관공학부 교수, 1985년 우리나라 최초의 남극탐험대원으로 참가한 이동화 (주)남경엔지니어링토건(부산 해운대구 우1동 소재) 대표, 2006년 남극 세종과학기지와 2008년 북극 다산과학기지를 취재한 박수현 국제신문 사진부장이 그들. 이들은 북극항로의 출발점이자 남극 진출의 전진기지 역할을 했던 부산을 극지 연구의 메카로 키우고 관련 산업을 부산의 미래 신성장 동력으로 육성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각자의 극지 경험을 소개해 달라.

남청도 한국해양대 교수가 지난해 9월 북극항로 시범운항을 위해 스테나 폴라리스호에 승선해 있다.

▶남청도=북극에 처음 발을 들여 놓은 것이 2010년 7월이었다. 당시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연구선 아라온호를 타고 갔는데 알래스카 놈이라는 항구에서 승선해 베링해협을 지나 3, 4일 올라가니 얼음 바다가 보이기 시작했다. 북위 79도 정도 올라가니 온통 두꺼운 얼음뿐이어서 더 올라가지 못했다. 백야에도 하얗게 눈부신 광활한 얼음 바다를 처음 보았는데 지금도 눈에 선하다. 쇄빙선이 얼음을 깨고 지나갈 때 큰 얼음판이 쫙 소리를 내면서 갈라졌다. 무를 칼로 자르듯이 조각난 얼음 덩어리가 물속으로 뒹구는 광경은 보기만 해도 가슴 시원했다. 바다 밑 4000m에서 건져 올린 샘플 중에도 모기 눈알만 한 플랑크톤이 살아 움직이는 것을 보고 극한 환경에도 생명체가 살아간다는 사실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지난해 9월 말로만 듣던 쇄빙선, 북극곰, 바다코끼리를 직접 눈으로 보고 북극항로를 체험했다.

▶이동화=1985년 11월 우리나라 최초의 남극 탐험대원으로 참여했다. 바닷속에 들어가 태극기를 꽂고 수중탐사를 한 그해 11월 26일은 영원히 잊을 수 없다. 그게 인연이 돼 1987년 세종과학기지건설단 안전담당관, 1988년 세종기지 1차 월동대원, 2004년 세종기지 부두건설단장, 남극 제2기지 선정위원, 2012년 장보고기지 건설을 위한 측량 등으로 여러 차례 남극을 다녀왔다. (이동화 대표가 운영하는 남경엔지니어링토건의 '남경'은 남극의 수도라는 뜻이다.)

▶박수현=1987년 한국해양대 해양공학과에 진학한 이유는 고교 시절 1988년 남극에 세종과학기지가 건설된다는 소식을 듣고 남극을 탐험해야겠다는 꿈이 있었기 때문이다. 2006년 극지연구소와 한국과학문화재단(현 한국과학창의재단)이 문화 예술인 대상 남극체험단 공개모집 때 사진작가 부분에 선정되면서 40일 일정으로 남극 세종기지에 체류하며 30회에 걸친 수중탐사, 월동대원의 생활 등을 취재했다. 남극에 가보니 북극에 가고 싶었는데 기회가 왔다. 2008년 여름 북극 다산기지 청소년 체험단을 취재하는 언론인 자격으로 보름 정도 북극에 다녀왔다. 이후 남북극 사진전시회를 열고 부산과학기술협의회의 지원으로 '북극곰과 남극 펭귄의 지구사랑'이라는 책도 냈다.

-남·북극에 가본 경험을 토대로 극지란 무엇이라고 정의할 수 있나.

이동화 남경엔지니어링토건 대표가 2012년 11월 남극 장보고과학기지 건설 현장 인근 암반 활주로 부지에 서 있다.

▶이동화=남극은 미래 기회의 땅이자 신대륙이다. 남극은 중국과 인도를 합친 크기이고 아직 주인이 없다. 1998년 남극환경보호의정서 채택을 계기로 2048년까지 50년간 지하자원 개발이 금지되고, 유엔해양법에 따라 2050년까지 영유권을 주장할 수 없다. 세계에서 가장 많은 지하자원과 크릴 같은 수산물을 비롯한 미래 식량자원을 보유한 남극의 100분의 1만 가져와도 우리 후손들이 먹고살 수 있는 자원을 보유하는 셈이다.

▶박수현=남극은 기회의 땅이지만 준비된 자만 그 기회를 누릴 수 있다. 남극조약 자체가 배타적이다. 남극조약협의당사국의 만장일치를 얻게 돼 있다. 2048년까지 한시적으로 개발을 묶어놨지만 그 이후에는 개발을 위한 삽질이 시작된다는 뜻이다. 남극에 과학기지가 있는 나라만 개발에 참여할 수 있다. 미리 준비해야 한다.

▶남청도=북극 항로는 신해양실크로드라고 할 수 있다. 지구 온난화가 급격히 진행되면서 예전에 2100년쯤 상용화될 것으로 예측되던 북극항로가 2030년이면 연중 이용이 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북극항로를 이용하면 부산에서 수에즈운하를 거쳐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갈 때보다 7000㎞(2만2000㎞→1만5000㎞)의 거리를 단축해 항해시간(40일→30일)과 연료비, 용선료를 대폭 절감할 수 있다. 현재 북극항로 운항기간이 연중 4~5개월 정도이지만 머지않아 8개월 정도로 늘어나면 경제성이 커질 것이다.

-북극항로를 비롯해 극지 연구와 개척에 있어 부산은 어떤 역할을 하나.

▶이동화=세계지도를 거꾸로 놓고 보면 부산은 남극과 북극으로 향하는 출발점 역할을 할 수 있는 곳이다. 따라서 물류 기반시설이 잘 갖춰진 부산은 누가 뭐라 해도 극지의 전진기지가 돼야 한다. 중국은 극지연구소, 해양대학 등 해양과 극지와 관련한 모든 기관을 칭다오에 모았다. 부산 영도구 동삼혁신지구는 해양·수산뿐 아니라 극지 연구의 메카가 돼야 한다. 극지는 해양의 한 부분이므로 해양과 극지를 분리해서는 안 된다.

극지연구소가 부산에 내려오지 않고 바닷가가 아닌 인천 송도 다운타운에 위치해 있는 것은 모순이다. 정치논리가 아니라 미래를 보고 따져야 한다. 쇄빙선 아라온호도 선용품과 유류를 부산에서 공급받고 인천항에 정박하러 가는 데만 2박 3일, 8000만 원가량의 연료비가 든다. 세금 낭비다. 아라온호 선원 대부분이 부산 사람이다.

▶남청도=지리적으로 보면 부산은 극지로 출발할 수 있는 선단, 제일 앞에 위치해 있다. 현지 조사활동과 연구를 위해 쇄빙연구선이 극지로 가려면 부산에서 선용품과 연료, 물을 공급받아야 한다. 동삼동 해양클러스터에 관련 연구기관이 모여 있는 것도 이점이다. 극지 관련 연구소와 산업이 부산을 중심으로 활동이 이루어져야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다. 지난해 중국의 북극항로 시범운항한 용쉥(Yong Sheng)호도 다롄항에서 출발해 부산에 들러 유류와 선용품을 공급받은 것은 부산항의 유리한 입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박수현 국제신문 사진부장이 2006년 11월 남극 세종과학기지 인근 남극해에서 수중탐사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바람에 밀려온 유빙이 엉겨 붙는 바람에 얼음 장판 아래 갇혔다가 가까스로 탈출했다.

▶박수현=남극 진출은 1978년 박정희 전 대통령 시절 남북수산 원양어선 '남북호'의 남빙양 크릴 시험조업에서 시작하는 만큼 부산이 극지 개척의 출발지라 할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쇄빙선 아라온호도 2009년 부산에 있는 한진중공업에서 건조됐다. 극지 진출사를 쓴다면 부산을 떼려야 뗄 수 없다. 아라온호의 모항이 부산이 돼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극지 관련 산업을 부산의 미래 신성장동력으로 키우려면 어떻게 준비해야 하나.

▶남청도=북극항로를 상용화하기 위해서는 선박, 선원, 화물이 필요하다. 선박은 유빙이 떠다니는 얼음 바다를 안전하게 운항할 수 있는 내빙구조, 즉 아이스 클라스(ice class) 선박이어야 한다. 러시아는 북극항로를 운항하는 선박에 대해 아이스 파일럿을 2명 이상 태우도록 하고 있다. 아이스 파일럿은 해빙 상태, 기상자료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해 빙해항해에 적합한 최적의 루트를 선장에게 제안하는 빙해항해 전문가를 말한다. 아이스 파일럿을 양성하고 관련 산업을 키우며 벌크 화물뿐 아니라 미래의 컨테이너 화물 수송에도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

▶박수현=중세 이후 세계사는 항로 개척의 역사였다. 중세 유럽인들은 인도, 중국과 육로 무역의 걸림돌이었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을 피하고자 해로를 개척하고자 했다. 수차례의 시도 끝에 1492년 에스파냐의 후원을 받은 콜럼버스가 인도로 가는 뱃길을 찾다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1497년에는 포르투갈의 바스쿠 다가마가 아프리카 대륙 최남단 희망봉을 돌아 인도로 향하는 뱃길을 개척했다. 1520년에는 마젤란이 대서양에서 태평양으로 이어지는 뱃길을 찾아냈다. 이후 세계 최강이었던 오스만튀르크 제국은 경제적으로 타격을 받아 쇠락한 데 반해 유럽인들은 뱃길로 이어진 세계 각 지역으로 진출할 수 있게 됐다. 북극항로는 세계사에 새로운 질서를 만들 수 있다. 지정학적으로 북극항로의 중심에 위치한 부산이 적극 준비해야 한다.

▶이동화=부산이 극지의 메카라는 인식을 부산시민이 가져야 한다. 부산시가 공장 100~200개보다 극지산업을 유치하면 부가가치가 훨씬 높다. 부산만 먹고 사는 게 아니라 한국을 넘어 세계를 먹여 살릴 수 있다. 그걸 미리 예측하고 준비를 해야 한다. 대비하지 않으면 북극항로 상용화와 남극 항로 운영에 따른 허브항 도약의 기회를 일본 고베항에 뺏길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