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구석구석을 누비면서 범죄를 감시하고 산불이 나면 초동조치를 한다. 학교 앞을 지나갈 때는 학교폭력 예방 활동을 하고 틈틈이 전력 절약 캠페인을 벌인다. 가전기기를 다룰 줄 모르는 노인의 집에 들르면 TV를 손봐주고 선거철에는 주민들에게 투표를 독려한다.

도움이 필요한 일이 생겼을 때 어디선가 불쑥 나타나 해결해주는 영화 속 '홍반장' 캐릭터의 모습 같지만 주변에서 쉽게 마주치는 평범한 집배원들의 일상이다. 우정사업본부는 21일 "전국적인 인적·물적 네트워크를 가진 국가기관으로서 도움이 필요한 사람을 찾아가 공헌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수많은집배원이 이러한 일을 자발적으로 실천하고 있다.

그러나 때로는 이런 활동이 일종의 과외 업무가 된다. 여러 부처와 지방자치단체가 우정 당국과 '업무협약(MOU)'을 체결해 갖가지 봉사활동을 공식 요청하고 있기때문이다.

지난 5일 우정사업본부와 안전행정부는 집배원들이 취약계층 복지 도우미로 나서도록 하는 '행복배달 빨간자전거' MOU를 맺었다. 집배원들은 독거노인이나 장애인등의 위험상태를 발견하면 지자체에 제보하고, 민원서류 배달 등 서비스를 제공하는역할을 하게 됐다.

집배원들은 경찰과 협력해 '4대악'(성폭력·가정폭력·학교폭력·불량식품) 척결에도 앞장서고 있다. 지난 5월에는 서울지방우정청이, 7월에는 경기지방우정청이 경찰과 MOU를 체결, 집배원들이 우편물 배달 중 4대악 범죄 현장을 목격하거나 정보를 얻으면 경찰에 신고하고 피해자를 안전한 곳으로 인도하도록 했다.

지난 3월에는 경북지방우정청이 경북도소방본부, 모범운전자회경북지부 등과 함께 재난 예방활동을 벌이는 MOU를 맺었고 충북, 전북, 강원, 경남 등 여러 지자체는집배원을 산불감시단으로 위촉했다.

안행부는 지난해 우정사업본부와 '도로명주소 생활화' MOU를 체결하고 집배원이잘못 표기된 도로명 시설물을 발견하면 지자체 담당직원에게 연락하도록 부탁했다.

이 밖에도 각 지역의 집배원들은 우편물이 쌓여 있는 집이나 오래 방치된 자동차등 정보를 수집하는 '지역 치안 협력원', 긴급 상황에 부닥친 어린이를 보면 지구대등에 연락하는 '아동 지킴이' 등으로 활동하며 경찰에 협조하고 있다.

작년 대통령 선거철 전남지역 집배원들은 배달하며 주민들에게 투표 참여를 독려하는 '투표 이동 홍보단'으로 활동했고, 전력난 문제가 제기된 지난해 여름 경남지역 집배원들은 '국민발전소' 절전 캠페인을 벌였다.

미래창조과학부는 지상파 TV 방송 디지털 전환의 후속 작업인 '채널 재설정' 방법을 취약계층에게 직접 설명하기 위해 집배원과 협력하고 있다.

여러 지자체와 부처가 집배원들에게 협력 러브콜을 보내는 이유는 전국 3천600여 우체국과 4만3천명의 인적자원을 토대로 한 네트워크 때문이다. 집배원들은 또 업무 특성상 주민생활과 지역실정에 밝고 주로 이륜자동차로 활동해 골목길까지 기동력을 발휘할 수 있다.

집배원들의 역할은 도시보다는 면적 대비 인구밀도가 낮은 지방에서 더 크다. 특히 해당 지역이 고향인 집배원들은 지역 주민과 자연스럽게 밀접한 관계를 맺으면서 이웃에게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각종 MOU가 집배원들에게 봉사활동에 대한 부담을 준다는 지적도 나온다.

경기지역에서 활동하는 한 집배원은 "주민 봉사는 집배원으로서 해야할 일이지만 의무적으로 하는 것은 부담스럽다"며 "연가·근로시간·수당 보장, 산업재해 보상, 인력 확충 등 직원 복지가 함께 향상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