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부 정책 실패가 화 불러

정부의 정책이 갈피를 못 잡는 사이 한국 경제 지표가 최악으로 치닫고 있다.

8월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지난해 같은 달보다 5.3% 급등해 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본지 2일자 14면 보도)했다. 7월 광공업생산이 석 달만에 감소세로 돌아섰고 8월 수출액은 급감해 무역수지 흑자 규모를 간신히 유지하는 등 실물 경제도 침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정부로서는 '저성장'과 '고물가'의 두 가지 악재를 만난 셈이다. 해법은 복잡하다. 글로벌 재정 위기에 따른 경기 하강 위험 속에서 경기 부양 정책을 펼 경우 인플레이션이 고착화돼 '스태그플레이션(경기 침체와 인플레가 동시에 오는 현상)' 우려가 있고, 물가를 잡기 위해 긴축 정책을 편다면 경기 침체를 각오해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기 때문이다.

경제주체들 사이에서는 금리 인상 시기를 놓친 것을 비롯, 정부 정책이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한국은행은 올 들어 세 차례 기준금리를 올렸지만 시중의 유동성을 줄이고 인플레 심리를 반전시키기엔 역부족이었다는 평가다. 지난해 초 국내 경기가 상승세로 돌아선 뒤에도 정부는 '저금리 고환율'이란 거시 경제 정책의 틀을 바꾸지 않았고, 물가 급등세에는 기업을 압박해 가격을 잡는 근시안적 대응에만 주력했다.

정부는 이번에도 수출 급감과 생산 감소엔 계절적 요인이 크고, 물가도 하반기부터는 안정될 것이라고 안이한 인식을 보이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대외경제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정부의 대응 여력이 더욱 줄어들고 있다는 점이다.

성태윤 연세대 교수는 "미국과 유럽의 재정 위기 여파로 우리 실물 경제도 침체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며 "경기 침체를 막기 위해 금리를 동결할 가능성이 커 물가 잡기가 더욱 어렵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렇다고 지금처럼 실물 경제가 급격히 위축되는 시점에 금리를 올리기도 쉽지 않다. 김원식 건국대 교수는 "가계 빚이 최대치에 달했고 주요 국가들이 금리 동결로 가고 있는 마당에 금리를 올린다면 많은 부작용이 초래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홍춘욱 국민은행 수석연구원은 "지난해 말부터 금리 인상을 통한 유동성 회수 지적이 많았는데 미적거리다가 때를 놓쳤다"며 "이젠 세계적인 경기 둔화 우려가 다시 커지고 있어 정부로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 됐다. 결국 성장도 물가도 다 놓친 셈"이라고 꼬집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