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전·전주저축은행 인수 과정, 고속성장·퇴출결정 시점 등
- 전환점마다 영향력 행사 의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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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옥주 비대위 위원장이 부산저축은행에서 발견한 비자금 관리용으로 추정되는 통장과 도장을 검찰 관계자에게 넘겨주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
검찰이 3일 부산저축은행에서 수천만 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김광수 금융정보분석원(FIU) 원장의 구속영장을 청구함에 따라 김 원장이 재직 당시 부산저축은행과 실제로 어떤 연결고리가 있었는지에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검찰은 그가 청와대 행정관으로 있던 2006년과 금융위원회 금융서비스국장이었던 2008년, 그리고 한나라당 수석전문위원이었던 지난해 부산저축은행의 성장과 퇴출에 관련된 굵직한 변곡점이 있었다는 점으로 미뤄 김 원장의 혐의를 짙게 보고 있다. 2006년에는 저축은행의 몸집 불리기를 가능케 한 '8·8클럽'이 도입됐고, 2008년에는 대전과 전주저축은행을 부산저축은행이 인수했으며, 지난해에는 부산저축은행을 비롯한 업계 전체가 부동산 프로젝트파이낸싱(PF) 대출의 부실 사태를 맞았다.
검찰은 김 원장이 수천만 원을 받은 대가로 이러한 고비마다 정책 당국에 직·간접적으로 영향력을 행사, 부산저축은행에 유리한 쪽으로 정책이 만들어지도록 했다는 의심을 품고 있다.
하지만 저축은행 업계에 정통한 전문가들의 시각은 다소 다르다. 우량 저축은행의 대출한도를 완화해주는 8·8클럽 도입의 경우 김 원장이 여기에 관여할 만한 자리에 있지 않았다는 게 대체적인 견해다. 옛 재정경제부에 있다가 청와대 경제비서실에 행정관으로 파견된 그는 주로 금융정책이 아닌 거시경제 관련 업무를 맡았다. 부산저축은행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했던 지난해에 김 원장은 국회의원들의 법률 입안을 조언하는 '한직'인 당 수석전문위원으로 밀려나 있었다.
금융위 금융서비스국장으로 재직한 2008년에는 주요 실무 책임자였던 만큼 대전·전주저축은행을 부산저축은행이 인수할 수 있도록 개입했다는 의혹이 제기될 만하다. 이들 두 저축은행은 당시 부실이 심각해져 영업정지 직전까지 몰렸고 국민은행마저 인수를 포기한 상황에서 부산저축은행이 이들을 구제하는 조건으로 수도권 지점 설치 등 혜택을 봤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금보험기금에 2조 원 가까운 적자가 발생한 상황에서 활용 가능한 구조조정 재원은 공적자금이었지만, 글로벌 금융위기로 시장이 잔뜩 예민해진 터라 부득이하게 공적자금 대신 부산저축은행과 짝짓는 카드를 선택했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다만, 어떤 이유로든 김 원장이 부산저축은행으로부터 대가성 금품을 수수한 게 사실이라면 전후 사정과 관계없이 이번 저축은행 비리 사태의 전개 과정에서 처음으로 사법처리되는 공무원이 될 가능성도 현재로선 배제할 수 없다. 이와 관련해 김 원장은 "이 상황에서 무슨 얘기를 할 수 있겠느냐"며 "조용히 기다리면서 준비하겠다. 법정에서 모든 진실을 밝히겠다"고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