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금융시장이 미국 구제금융안의 부결 여파로 불안한 모습을 보인 30일 서울 여의도 증권선물거래소의 한 직원이 증시변동 그래프를 유심히 살펴보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 구제금융안의 부결로 국내 금융시장이 대요동을 쳤다. 30일 달러와 엔 등에 대한 원화 가치가 크게 떨어지고 한때 주가지수 1400선이 붕괴되는 등 금융시장 불안이 종일 이어졌다. 전문가들은 공통적으로 구제 금융 등 미국의 대응책에 대한 신뢰가 회복되지 않는 한 금융시장 안정을 기대할 수 없다고 진단했다.

환율 직격탄…1200원대 돌파

원·달러 환율이 1200원대를 돌파했고 원·엔 환율은 100엔당 1150원대로 올라섰다.

이날 달러화에 대한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달러당 18.20원 상승한 1207.00원으로 거래를 마쳤다. 7거래일간 67.30원 폭등하면서 2003년 5월29일 1207.00원 이후 5년 4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날 환율은 11.20원 오른 1200.00원으로 거래를 시작해 매수세가 폭주하면서 1230.00원으로 급등한 뒤 매물 유입으로 1210원대 중반으로 밀렸다. 한동안 1210원대 중반에서 등락하던 환율은 매물 유입으로 완만한 하락세를 보이면서 1207원 선으로 밀렸다.

외환 스와프 시장에서 현물 환율과 선물 환율 간 차이인 스와프포인트 1개월 물이 세계적 신용경색 여파로 -5.50원으로 전날보다 1.75원 떨어진 점도 외화 유동성에 대한 우려를 키우고 있다. 지난달 경상수지가 사상 최대 규모 적자를 기록한 점도 달러화 매수세를 부추겼다. 장 초반 한때 패닉(심리적 공황) 현상이 나타나자 외환당국은 이날 구두 개입에 이어 실제 달러화 매도개입을 통해 환율 급등에 제동을 걸었다.

국내 증시 상대적 선방

이날 코스피지수는 전날 대비 8.30포인트(0.57%) 하락한 1448.06으로 거래를 마쳤다. 지수는 뉴욕 증시의 폭락 소식에 72.39포인트(4.97%) 급락한 상태에서 출발, 개장과 동시에 1400선이 붕괴한 후 1376.72까지 하락했으나 기관의 적극적인 매수로 낙폭을 줄였다. 외국인도 장 초반 매물을 쏟아냈으나 장 후반으로 오면서 당국의 공매도 금지조치 속에 공매도한 주식을 재매수하는 쇼트커버링이 나오며 매도규모가 크게 줄었다.

구제금융안의 부결로 공황상태가 우려됐던 국내 증시가 크게 선방한 것이다. 오히려 추격매도 등 예전의 감정적인 대응이 많이 사라져 상대적으로 안정된 모습을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사태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구제금융안의 통과가 다시 시도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이 확산됐고 실제 미국 대통령이 관련 성명을 발표하기로 하는 등 적극 대응에 나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투자심리가 안정됐다.

불안지속…외화유동성 관건

장재철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은 "지금 미국 정치가 민주당과 공화당이 11월 4일 선거 때문에 굉장히 긴장하고 있는 상황인데 이런 불확실성이 선거까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된다"며 "미 의회에서 각 법안에 대해 자신들의 이익을 반영하기 위해 상당히 노력할 때라서 단계적으로 구제금융을 투입하는 과정도 지연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전종우 SC제일은행 이코노미스트는 "불안한 기업들이 수출에서 번 하드캐쉬를 내놓지 않고 수입결제 수요만 있으니 달러 가치는 강세, 원화는 약세를 보일 수밖에 없다"면서 "따라서 전체적으로 현재 외환시장은 정상적 국제수지 흐름과는 별개의 쏠림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동걸 금융연구원장은 "아무리 기업이나 금융부문이 10년 전보다 좋아도 외환이 없으면 위기는 올 수 있다"면서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최우선에 두고 물가나 다른 경제정책은 후순위로 미룰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