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를 '한국의 삼성'에서 '세계의 삼성'으로 성장시킨 이건희 회장이 '특검 암초'를 만나 취임 20여 년만에 경영일선에서 물러난다.
이 회장의 퇴진은 특검 사퇴 이전에는 상상도 하지 못할 일이었다. 그만큼 이 회장은 삼성전자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도약하는 데 강력한 리더십을 발휘했고, 앞으로 글로벌 리더로서 확고하게 자리잡는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됐기 때문이다. 고 이병철 선대회장의 타계로 1987년 12월1일 만 45세의 나이에 삼성의 경영권을 이어받은 이 회장의 20년 경영성과는 삼성의 '글로벌화' '세계 일류화'라고 압축할 수 있다.
이 회장은 취임 후 '자율경영', '기술중시', '인간존중'을 축으로 하는 제2의 창업을 선언하고, '21세기 초일류기업 달성'이라는 비전과 '조(兆) 단위 순이익 실현'을 약속한 바 있다. 당시 실현 불가능한 선언에 불과하다고 평가절하됐던 이 약속은 20년만에 지켜진 셈이다. 또 이 회장은 1974년 불모지나 다름없는 환경에서 반도체사업에 착수함으로써 한국이 전자 강국으로 발돋움하는 토대를 닦았다. 이후 기술개발과 과감한 투자로 1984년 64메가 D램을 개발했고, 1992년에는 D램 세계시장 점유율 1위를 달성했다.
이 회장은 외형적인 성장 외에 선진 경영시스템을 도입하고 도전적인 기업문화를 정착시켜 삼성그룹의 경영체질을 강화함으로써 내실 면에서도 세계 일류기업의 면모를 갖출 수 있게 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이 회장은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는 혁신과 '품질중시 경영'으로 대표되는 신경영, IMF 외환위기를 극복한 '선택과 집중'의 구조조정으로 삼성의 글로벌화에 성공했다. 이 회장은 변화하지 않으면 생존을 보장받을 수 없지만 환골탈태하면 새로운 지평을 열 수 있다는 평범한 교훈을 기업들 뿐 아니라 우리 사회 전반에 던져주었다. 이 회장은 "앞으로 20년이 더 걱정이다" "정신차려야 한다. 5년, 10년 뒤에는 혼란이 올 수도 있다" "중국은 쫓아오고 일본은 앞서가는 상황에서 한국은 샌드위치 신세다"라는 등의 위기론과 샌드위치론으로 변화와 혁신을 강조해 한국사회에 경각심을 불어넣기도 했다.
하지만 부정적인 평가도 만만치 않다. 이 회장은 삼성이 한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막강해지면서 우리 사회에 대한 영향력이 지나치게 크다는 '삼성공화국론'의 근원지로 지목됐고 삼성에버랜드 전환사채(CB) 편법 배정을 통한 불법 경영권 승계, 총수 1인이 그룹 경영을 좌지우지한다는 '황제식 경영론' 등이 비판의 핵심이었다. 삼성 출신 인사들이 경제계는 물론 정부, 정치권 요소요소에 포진하고 삼성의 로비력이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는 일반인들의 인식과 에버랜드 CB 배정의 문제점은 결국 김용철 변호사의 폭로와 특검으로 이어졌고 이는 오늘날 이 회장의 퇴진을 초래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