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 국회의 시간이 열렸다.”

국회에서 법안 통과를 놓고 국회의원 간 물리적 충돌이 발발할 때 쓰는 표현이다. 2012년 국회 폭력을 금지하는 이른바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되기 전까지, 한국 국회는 법안을 통과시키거나 막기 위해 몸싸움 감금 욕설도 마다하지 않는 ‘동물 국회’ 혹은 ‘누아르 국회’로의 변신을 서슴지 않았다.

국회의원들은 ‘싸움’에서 주로 국회 본회의장의 의장석 사수에 사활을 걸었다. 법안이 통과되는 마지막 과정이 그곳에서 일어나기 때문이다. 국회의원이 하나의 법안을 발의하면 국회 상임위원회→법제사법위원회의 심사를 거쳐 국회 본회의에 상정된다. 이후 본회의 찬반 투표를 통과하면 국회의장이 표결을 선포하게 된다.

이 때문에 여야 간 갈등을 빚는 법안이 상정되면 이를 통과시키려는 다수파와 저지하려는 소수파 사이 마찰이 일어나기 일쑤였다. 다수파가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인 다수결로 법안을 무리 없이 가결할 수 있기 때문에 소수파는 의장석 점거나 회의장 봉쇄로 이를 저지하는 것이다. 다수파와 소수파는 정권이 바뀔 때마다 공수를 교대하며 갈등을 끌고 나갔다.

가장 최근 사례가 지난달 ‘검수완박’을 둘러싼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힘 간 갈등이다. 이때는 “죽여버릴 거야” “선배님이라고 부르지 않겠다” 등 다소 ‘순한맛’ 형태의 막말과 몸싸움이 오갔다. 국회선진화법 시행 이후 여야 간 갈등의 형태는 과거에 비해 매우 ‘점잖은’ 모습으로 표출되고 있다. 합법적 의사진행 방해 수단인 무제한 토론 제도(필리버스터)도 물리적 폭력을 줄이는 데 일조한 건 사실이다.

국회선진화법의 도입을 초래한 결정적 두 사건을 돌아봤다. 쇠사슬 전기톱 소화전 무술 등 범죄영화에서 보던 장치들도 등장하니 마음의 준비를 하시길. 동물 국회는 혈투 끝에 결국 한쪽의 승리로 끝을 맺지만, 그에 따른 모든 피해는 국민이 받는다는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겨야 할 때다.

대통합민주신당 의원들과 한나라당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몸싸움을 벌인 2007년 12월 14일. 당시 민주신당 정봉주 의원이 단상으로 뛰어오르고 있다. 국제신문 DB

●전기톱 소화기 등장 ‘동물국회’ 새 역사

제17대 대선을 불과 닷새 앞둔 2007년 12월 14일은 ‘동물 국회’의 새 역사가 쓰인 날이다. 멀리 이승만 정권부터 크고 작은 몸싸움과 욕설 감금 등을 불사한 동물 국회는 이날 본격 ‘누아르 국회’로 장르를 확장 시켰다.

이명박 당시 한나라당 후보의 ‘BBK사건’연루 의혹에 대한 특검법과 해당 사건을 맡은 수사검사 3명에 대한 탄핵소추안 처리를 둘러싸고 대통합민주신당과 한나라당 간의 갈등이 전쟁의 시작이었다.

당일 본회의장을 점거한 한나라당 의원들은 쇠사슬과 서랍장 각목 등을 총동원해 출입문을 봉쇄했다. 본회의장 유리를 사이에 두고 한나라당은 “잘~가세요”라는 노래를 부르며 대통합민주신당을 자극했고, 이에 신당은 메모지에 “부끄럽지 않느냐”는 글을 써서 응수했다. “부끄러우니 금배지는 떼고 해라”는 조언도 아낌없이 오갔다.

결국 국회의장의 “문을 여시오”란 명령에 힘을 얻은 신당은 무려 전기톱을 등장시켜 문에 묶인 쇠사슬을 끊어 버렸다. 회의장 안에서 전기톱 소리를 들은 한나라당 의원들은 의장석 주변에 ‘인간 탑’을 세우고 다가올 ‘혈투’를 대비했다.

회의장에 입성한 의원들은 물건을 집어 던지고 욕설을 내뱉는 것으로 분위기를 고조시켰다. 육탄전은 지체 없이 시작됐다. 누군가 멱살을 잡고 뺨을 때리면 즉시 되갚았다. 당시 신당 정봉주 의원은 ‘인간탑’을 받침대 삼아 밟고 오르다 저지당하기도 했다. 깔린 의원들은 비명을 질렀고 전화기 서류 등 주변에 있는 모든 사물은 공중을 날아다녔다. 의원들의 넥타이는 멱살보다 잡히기 쉬운 거추장스러운 아이템일 뿐이었다. 그야말로 ‘아수라장’. 때리는 자와 맞는 자 모두가 금배지를 달고 있었다.

이 전쟁은 밤낮을 가리지 않고 나흘간 지속됐다. 나흘째에는 본회의장을 차지한 대통합민주신당이 수비했다. 이들은 문 밖에서 경위들과 대치하며 진입을 시도 중인 한나라당 의원들을 향해 소화기를 겨눴다. 동물 국회의 미래를 암시하듯,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 뿌연 연기가 회의장 주변을 뒤덮었다.

2009년 1월 5일, 농성을 강제 해산한 국회사무처에 항의하던 당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는 이른바 ‘공중부양’ 항의로 국회 윤리특별위원회의 징계안에 회부됐다. 의원들이 당시 동영상을 보고 있다. 국제신문 DB

●본회의 전부터 국지전, 전쟁은 해를 넘겼다

정확히 1년 만인 2008년 12월 18일. 17대부터 삐걱거리던 18대 국회는 한미 FTA 비준 동의안을 놓고 다시 갈등이 폭발됐다. 이번에는 당시 거대 야당인 한나라당과 민주당-민주노동당이 맞붙었다.

이제는 본회의장까지 갈 필요도 없었다. 외교통상위원회 회의장에서부터 ‘국지전’이 시작됐다. 이전 국회에서 전기톱 쇠사슬 등이 이미 한 차례 등장한 터라 무기 사용에 거리낌은 없어졌다.

한나라당이 회의장 문을 봉쇄하면 민주당이 커다란 망치로 부쉈다. 개회 자체를 막기 위해 민주당은 박진 위원장과 한나라당 간사인 황진하 의원의 자택 감금을 시도하려 했으나 두 의원이 부재 중이라 미수에 그쳤다. 특히 그간 질서유지권 발동에 따라 움직이던 경위들은 보다 적극적으로 수비에 나섰다.

앞문이 여의치 않자 민주당 의원들은 옆문을 공략했다. 망치로 옆문을 부수고 소화전을 끌어다가 회의장 내부에 물대포를 살포했다. 그러자 경위들은 소화기로 응수했다. 회의장 유리문은 ‘또’ 깨졌다. 이때 시작된 갈등은 미디어법, 금산분리완화 등 이른바 ‘MB악법’ 처리까지 이어져 해를 넘기도록 지속됐다.

2009년 1월 5일, 국회 본회의장 앞에서 현수막을 걸고 농성중인 민주노동당과 이를 강제 해산하려는 국회사무처 간 또 한 번 충돌이 발생했다. 당시 권영길·이정희 의원도 투쟁에 참여했다.

현수막을 끌어내리려는 국회사무처와 이를 막는 민주노동당 간 실랑이가 벌어졌다. 이 과정에서 민주노동당 강기갑 대표가 손가락 골절상을 입었다.

강 대표는 이후 국회의장실과 사무총장실을 찾아간다. 사무실 내 의자들을 뒤엎는 것으로 기선제압에 성공한 강 대표는 내친 김에 테이블도 엎으려 했으나 너무 크고 무거워서 실패했다. 애써 태연함을 유지하는 상대의 모습에 자극을 받은 걸까. 강 대표는 이때 테이블 위를 뛰어오르는 ‘공중부양’을 선보여 카메라 플래시 세례를 받았다. 같은 해 강 대표는 국회 외교통상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의사봉을 빼앗아 내리쳐 의사봉 머리를 날리는 일로 다시 한 번 사진기자들의 사랑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