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순실 특검 선봉서 적폐 청산
- 조국 수사 강행 文 정부와 충돌
- 反文 각인… 당심 전폭지지 얻어
정치 입문 4개월 만에 제1야당의 대선후보 자리에 오른 윤석열 전 검찰총장을 키운 것은 여권과의 충돌이었다.
서울대 법대를 졸업하고 ‘9수’ 만에 사법시험에 합격한 윤 후보는 노무현 정부들어 굵직굵직한 특수 사건에 투입되며 ‘칼잡이’로서 명성을 쌓았다. 2002년 검사 옷을 벗고 대형 로펌에서 변호사로 일했고, 1년 만에 “검찰청 짜장면 냄새가 그립다”며 친정으로 복귀한 뒤부터 승승장구하기 시작했다. 2003년 SK 분식회계 사건과 불법 대선자금 사건을 시작으로 현대차그룹 비리 사건, 외환은행 헐값 매각 사건, 삼성그룹 비자금 사건, BBK 특검, 부산저축은행 사건, 국정원 댓글 사건 등을 맡았다.
그가 일약 스타덤에 오른 것은 2013년 박근혜 정부 당시 국정원 댓글 사건과 관련, 국회 국정감사에서 윗선의 수사 외압을 폭로하면서다. “저는 사람에 충성하지 않는다”는 국감장의 작심 발언은 두고두고 회자됐다. 이후 4년여간 유배지를 돌며 인고의 세월을 보냈지만, 부당한 압력에 굴하지 않는 ‘강골 검사’ 이미지를 대중에 각인시켰다.
특수통 검사로서는 숨통이 끊긴 듯했던 윤 후보는 2016년 탄핵 정국을 맞아 최순실 특검 수사팀장으로 화려하게 부활했다. 문재인 정부 들어 소위 ‘촛불 혁명’의 공신으로 선배들을 제치고 서울중앙지검장에 파격 발탁됐고, 이명박·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중형을 끌어냈다.
‘조국 사태’는 오늘날 ‘정치인 윤석열’이 있게 한 변곡점이었다. 검찰총장에 임명된 그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에 대한 전방위 수사를 밀어붙이며 또 한 번 현 여권과 충돌했다. 조 전 장관 후임인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과의 ‘추·윤 갈등’에 중대범죄수사청 설립을 시도하는 여권과의 정면충돌이 겹치며 현 정권과의 불화는 돌이킬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달았다.
그는 지난 3월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하기 위해 힘을 다하겠다”며 임기를 넉 달여 남기고 전격 사퇴, 광야로 나섰다. 반문의 ‘기수’를 찾던 야권은 ‘거물급 신인’의 등장에 열광했다. 문재인 정부와 대척점에 섰던 윤 후보는 자연스레 야권 대장주로 꼽히며, 차기 대권주자 여론조사에서 여야를 통틀어 지지율 1위를 달리기 시작했다. 검찰총장 사퇴 후 3개월 남짓 두문불출하던 윤 후보는 ‘6·29 선언’을 통해 대권 도전을 기정사실로 했다. 이후 한달 만에 국민의힘에 입당했고, ‘반문(반문재인)’으로 각인된 이미지는 당원들의 전폭적인 지지를 얻는 바탕이 됐다. 제1야당 대선 후보에 오른 윤 후보는 지금부터는 반문(반문재인) 이상의 실력을 증명해야 하는 것이 과제다.
52세에 12살 연하인 김건희 씨와 결혼했고, 슬하에 자녀는 없다.
김해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