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직선제 부활 이후 첫 대통령이자
- 내란 혐의로 구속 1호 된 대통령
- 5·18 진압 과오… 북방외교 성과
- 정부 국가장 검토에 반발 여론도
대한민국 제13대 대통령을 지낸 노태우 전 대통령이 26일 숨졌다. 향년 89세. 노 전 대통령은 최근 병세 악화로 서울대병원에 입원해 의료진의 집중 치료를 받았지만, 회복하지 못하고 이날 오후 1시 40분께 삶을 마감했다. 빈소는 서울대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졌다. 고인은 우연의 일치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서거일(1979년 10월 26일)과 같은 날 세상을 떠나게 됐다. 유족으로는 부인 김옥숙 여사와 딸 소영, 아들 재헌 씨가 있다. 소영 씨와 이혼 소송 중인 최태원 SK 그룹 회장이 사위이다.
 |
| 1996년 12·12 및 5·18사건 항소심 선고공판에 노태우 전두환 전 대통령이 출석해 있다. 연합뉴스 |
노 전 대통령은 육군 9사단장이던 1979년 12월 12일 육사 11기 동기생인 전두환 전 대통령을 중심으로 한 신군부 ‘하나회’ 세력의 핵심으로서 군사쿠데타를 주도했다. 5공화국 말기 전두환 전 대통령을 이을 정권 후계자로 부상, 1987년 6월10일 잠실 실내체육관에서 치러진 민정당 전당대회에서 대통령후보로 지명됐다.
1987년 6월 민주화 항쟁의 성과물로 대통령 직선제 개헌이 이뤄져 야당으로의 정권교체 가능성이 부상했지만, 노 전 대통령은 야권 후보 분열에 따른 ‘1노(盧)3김(金)’ 구도의 반사 이익을 보면서 같은 해 연말 대선에서 김영삼 김대중 김종필 후보를 누르고 대통령에 당선됐다.
고인은 1987년 6월 민정당 대선후보 선출 이후 전두환 정권의 간선제 호헌 조치에 반발하는 시위가 확산하자 직선제 개헌을 약속하는 ‘6·29 선언’을 발표함으로써 이른바 ‘1987년 체제’ 탄생을 가져왔다. 안으로는 국민통합, 밖으론 북방외교와 남북관계 개선을 기치로 내건 노 전 대통령은 남북한 유엔 동시 가입, 88 서울올림픽 개최, 옛 소련·중국과의 공식 수교 등 성과를 내며 외교 지평을 넓혔다는 평가도 받는다.
그러나 퇴임 후 12·12 주도, 5·18 광주 민주화운동 무력 진압, 수천억 원 규모의 비자금 조성 등의 혐의로 전 전 대통령과 함께 수감됐고 법원에서 징역 17년형과 추징금 2600억여 원을 선고받는 등 한국 현대사의 어두운 한 면을 장식했다. 1997년 12월 퇴임을 앞둔 김영삼 대통령의 특별사면 조치로 석방됐지만, 오랫동안 추징금 미납 논란에 시달리다가 2013년 9월에야 뒤늦게 완납했다.
고인이 국가장(國家葬)이나 현충원 안장 같은 예우를 받을지는 조만간 열리는 임시 국무회의 심의와 문재인 대통령 결정을 통해 가려질 전망이다.
유영민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날 국회 운영위 국정감사에 출석해 “국가장으로 장례를 치르는 것이 가능하지만 절차가 필요하다”고 설명했다. 유 실장은 국립묘지 안장 여부에 대해서도 “국민의 수용성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한 정무적 판단이 필요할 수 있다. 내부 절차에 따라 논의하겠다”고 밝혔다. 노 전 대통령의 장례 절차에 대해 질문한 민주당 윤영덕 의원은 “많은 국민이 12·12 내란은 물론, 5·18 광주학살에 대해서도 노태우 씨에게 분명한 책임이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며 국가장 실시에 반대 의견을 냈다.
김해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