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인, 창녕에 오후 5시30분 도착
- 친척·지지자들 안타까움 쏟아내
- 장지 가는 길 폭우로 통행 어려워
- 군·고향마을 측 자갈·부직포 깔아
고 박원순 서울시장이 한 줌의 재가 되어 경남 창녕군 선영에서 영면에 들어갔다. 고교 진학을 위해 1970년 창녕을 떠난 뒤 50년 만의 완전한 귀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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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일 오후 경남 창녕군 고 박원순 서울시장 생가에 추모 펼침막이 걸려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13일 오전 서울 영결식에 이어 서울추모공원에서 화장을 마친 박 시장의 유골은 오후 5시30분 박 시장의 생가와 선영이 있는 창녕군 장마면 동가정 마을에 도착했다.
장의차에서 아들 주신 씨가 유골함을 들고 내리자 일찌감치 생가에 도착해 박 시장을 기다렸던 친척과 주민, 지지자들은 안타까운 탄식을 쏟아냈다. 유족은 친척들이 만든 생가 내 분향소에 영정을 안치, 박 시장이 고향집을 느끼도록 잠시 머문 뒤 곧장 장지로 향했다.
이날 생가에는 박종훈 경남도교육감, 허성무 창원시장, 더불어민주당 김정호 의원 등 지역 정치인들이 고인의 마지막 가는 길을 배웅했다. 조희연 서울시교육감과 함께 민주당 기동민·박홍근 의원 등 일부 의원들도 유족들과 동행했다.
이날 생가 입구에 ‘기억합니다. 못다 한 꿈 우리가 지키겠습니다’를 비롯해 마을 일대에 전국 각지 팬클럽이 보낸 펼침막이 걸렸다. 일부 지지자들은 생가 주변에 엎드리거나 박 시장 영정을 붙잡고 흐느끼기도 했다. 생가에서 장지로 이어진 산길은 폭우로 인해 통행이 불가능했지만, 며칠전부터 창녕군과 마을 측에서 자갈을 깔고 부직포를 설치해 유족은 물론 참배객들의 편의를 제공했다.
박 시장 유골은 ‘화장해서 부모님 산소에 뿌려달라’는 유언에 따라 부모 합장묘 앞쪽에 작은 무덤 형태로 안치됐다. 불교식으로 진행된 이날 안치식은 아들 주신 씨가 첫 삽을 떠 박 시장의 유골함을 덮는 것을 시작으로 숙연한 분위기 속에 이어졌다. 부인 강난희 여사는 아들 주신 씨의 부축을 받아 마지막 가는 남편의 유골함에 흙을 뿌리며 눈물을 쏟았다. 유족들은 조만간 비석을 제작해 유골이 묻힌 곳에 세울 예정이다.
앞서 박 시장의 발인은 이날 오전 7시께 서울대병원에서 비공개로 진행됐으며, 영결식은 그가 지난 9년간 출근했던 서울시청 8층 다목적홀에서 열렸다. 코로나19 방역 협조를 위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빈소를 빠져나온 운구차는 7시50분께 서울시청에 도착했다. 8시30분부터 40분간 진행된 영결식은 서울시와 tbs유튜브 채널을 통해 생중계됐다.
현장에는 코로나19 등으로 인해 유족과 시·도지사, 더불어민주당 지도부, 서울시 간부, 시민사회 대표자 등 100여 명의 제한된 인원만 참석했다. 장례위원장은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이해찬 민주당 대표, 서정협 서울시장 권한대행(행정1부시장)이 맡았다.
박 시장의 생전 활동을 담은 영상 상영으로 시작된 영결식은 엄숙한 분위기에서 진행됐다. 조사를 맡은 백낙청 교수는 “지금은 애도의 시간”이라며 “박원순이라는 타인에 대한 종합적인 탐구나 공인으로서의 행적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애도가 끝난 뒤에 본격적으로 시작될 수 있다”고 했다.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도 “인권변호사에서 시민운동가, 서울시장에 이르기까지 고인이 걸은 길과 해낸 일이 너무나 크다”며 “그 열정만큼이나 순수하고 부끄럼이 많았던 사람이기에 그의 마지막 길이 너무 아프고 슬프다”고 전했다.
유족대표 인사에 나선 박 시장의 딸 다인씨는 “아버지 가시는 길에 추모와 애도를 보내주신 모든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갑작스런 이별에 누구보다 황망했을 서울시 직원 여러분에게도 미안하고 고맙다”며 “덕분에 저희 가족은 쉽지 않은 시간을 조금씩 견뎌내고 있다”고 했다. 조사가 끝난 후 참석자들이 단체 헌화로 영결식은 마무리됐다.박 시장의 유해는 오전 9시 40분께 서울추모공원으로 이동했다. 이 곳에서 화장을 마친 뒤 장지인 경남 창녕으로 향했다.
이민용 기자 m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