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희와 동지관계 맺고
- 5·16 군사쿠데타 기획하며
- 한국 현대정치사 전면 등장
- 요직 거치며 2인자 자리매김
- 3당 합당 … 김영삼 당선 주도
- DJP 연합 역사적 단일화 결행
- 김대중 대통령 탄생 1등공신
지난 23일 타계한 김종필(JP) 전 총리는 김대중(DJ), 김영삼(YS) 전 대통령과 함께 ‘3김(金) 시대’를 이끌었던 주인공이었지만 대통령의 꿈을 이룬 양 김 씨와는 달리 처음부터 끝까지 ‘2인자의 숙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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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88년 서울 수유리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만난 3김(金). 왼쪽부터 당시 김종필 공화당 총재, 김영삼 민주당 총재, 김대중 평민당 총재. 연합뉴스 |
1926년 1월 7일 충남 부여에서 태어난 그는 서울대 사범대 2학년 때 부친의 사망으로 가세가 기울자 육군사관학교에 입학했다. 1960년 중령이던 그는 육사 8기 동기생들과 3·15 부정선거에 연루된 정치군인 등의 퇴진을 주장하는 정군 운동을 일으켰다가 하극상 사건의 주모자로 몰려 군복을 벗었지만 1961년 5·16으로 현대 정치사의 전면에 등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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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필 전 총리가 1987년 11월 22일 대통령 후보 때 경기도 포천에서 유세하는 모습. 연합뉴스 |
김 전 총리는 당시 박정희 소장과 인척 관계였고 이를 계기로 동지 이상의 관계를 맺었고 1961년 중앙정보부를 창설해 초대 부장에 취임한 데 이어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며 ‘풍운아’의 여정을 걷기 시작했다.
김 전 총리는 유신반대 운동이 한창이던 1971년부터 1975년까지 국무총리를 지냈지만 1979년 10월 26일 박 전 대통령이 사망하고 신군부가 집권하면서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지목돼 모든 재산을 압류당하고 미국으로 쫓겨났다.
1986년 귀국한 그는 옛 공화당 세력을 규합해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했고 1988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중심으로 35석을 확보하며 재기했다. 1990년 1월 3당 합당에 참여했고 1992년 대선에서 김영삼 후보를 지원했다.
민주자유당 최고위원에 이어 당 대표를 맡았지만 1994년 민주계를 중심으로 그에 대한 축출 움직임이 일자 탈당해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을 창당했다. 제15대 총선에서 50석을 얻었고 그 여세를 몰아 1997년 대선에 나섰다. 정권 교체를 명분으로 김대중 후보와 단일화한 ‘DJP 연합’을 끌어냈고 DJ의 대선 승리의 공을 인정받아 김대중 정권 초대 국무총리에 올랐다.
그러나 2000년 2월 DJP 연합이 파기되자 자민련은 2000년 16대 총선에선 17석, 2004년 17대에서는 4석에 그쳤다. 제17대 총선에서 10선을 노렸지만 비례대표 1번을 달았던 그는 낙선했고 정계 은퇴를 선언했다.
정옥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