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독재에 항거한 야도 부산
- 13대 총선서 1명 외 野 싹쓸이
- 3당 합당이 영호남갈등 증폭
- 보스·금권·줄세우기 병폐 양산
- 전통산업 붕괴·국책사업 홀대
- 작년 총선서 야당의원 5명 배출
- 현재 보수분열로 2차 지각변동
지난해 4·13총선(제20대 국회의원 선거)은 부산 경남 울산(PK)의 정치 지형에 크다란 지각 변동을 일으켰다. 부산에서는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 5명의 당선인을 냈으며, 울산에서는 새누리당이 6개 선거구 중 절반 확보에만 그치고 나머지 3석은 무소속에 내줬다. 경남 김해와 양산을 비롯해 창원 성산구 등 '낙동강 벨트'에서도 야당이 4석을 확보하면서 파란을 일으켰다. 새누리당이 텃밭이라고 생각했던 PK 지역에서 참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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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월 당시 노태우(가운데) 대통령과 김영삼(왼쪽) 통일민주당 총재, 김종필 신민주공화당 총재가 청와대에서 민정·민주·공화 3당을 주축으로 신당 창당에 합의했음을 발표하고 있다. 연합뉴스 |
20대 총선은 PK가 지난 30여 년간 잃어버렸던 '야도(野都)'의 본성을 되찾기 시작한 전환점이 됐다는 평가다. 1970·80년대 군부독재 시절만 해도 PK는 박정희 정권의 장기 집권을 무너뜨린 야당 도시였다.
1985년 제12대 총선 당시 한 지역구에서 2명씩 뽑는 중선거구제를 도입했는데, 부산에서는 6개 선거구 중 3곳에서 야당 후보만 두 명씩 동반 당선됐다. 1988년 13대 총선 때 부산에서는 금정구 김진재 의원(당시 민주정의당)을 제외한 당선인이 모두 야당인 통일민주당이었다.
■ PK, 야도에서 여도(與都)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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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0년 1월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이 이뤄진 뒤 그해 3월 옛 부산상고에서 열린 민주당 창당준비위원회 부산시민대회에서 당시 이기택(왼쪽)·노무현 의원이 3당 합당 반대를 외치며 시민들과 악수를 하고 있다. 국제신문DB |
그랬던 PK가 1990년 1월 22일 노태우(민주정의당)-김영삼(YS·통일민주당)-김종필(JP·신민주공화당)의 3당 합당(민주자유당)을 기점으로 '여도(與道)'로 탈바꿈했다. 민자당(현 새누리당의 모태)의 대선 후보가 된 YS는 대구 경북(TK)과 PK의 탄탄한 지지를 받아 1992년 제14대 대통령 선거에서 당선됐다.
영남권의 민심은 3당 합당 전에는 노태우 전 대통령을 지지하는 TK와 YS를 지지하는 PK로 나뉘어 있었다. 1987년 6월 항쟁의 결과물인 '87년 체제'는 박정희에서 전두환으로 이어진 장기간의 군사독재를 종식시켰지만 민주정의당이 대구 경북(TK)을, 통일민주당이 PK를, 평화민주당이 호남을, 공화당이 충청을 기반으로 삼는 지역 구도를 확립했다.
그러나 3당 합당 이후 PK는 영남 지역주의에 묶이면서 민자당-신한국당(1995년)-한나라당(1997년)-새누리당으로 이어지는 보수 정당의 텃밭이 됐다. '우리가 남이가'라며 쌓아온 지역주의의 벽은 PK에 1당 독주 체제를 고착화시켰다. 새누리당 공천장이 당선증이라는 말이 회자됐다.
■ 1당 독주 체제, 고질적 병폐
특정 정당이 한 지역을 독식하는 지역주의는 보스정치, 금권정치, 줄 세우기 정치 등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병폐를 낳았다.
'87년 체제' 이후 형식적인 민주주의는 이뤄졌지만 제왕적 대통령제로 대표되는 비민주적 요소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했다. 이후 1997년 외환위기를 맞으면서 한국 사회는 국제통화기금(IMF)이 요구하는 대로 구조조정, 규제 완화, 노동시장 유연화 등 신자유주의식 개혁이 이뤄졌다. 민주정부가 들어섰다지만 고용 없는 성장이 이어지고 비정규직 노동자가 늘어나는 등 양극화는 더 심화됐다.
이 과정에서 PK의 산업 기반이 무너졌다. 부산의 신발산업에 이어 해운·조선·석유화학 등이 위기를 맞고 있다. PK에서 경쟁이 사라진 1당 독주체제가 아니었다면 대비책이 나왔을 것이라는 반성이 나왔다. PK는 지역 경제 붕괴, 동남권 신공항 백지화 등을 겪으면서 1당 독주의 폐해를 경험했다.
■ 지각변동은 여전히 진행 중
3당 합당 이후에도 PK에서 지역주의의 벽을 허물기 위한 정치적 도전은 계속됐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14대 총선에 이어 부산시장 선거 등 PK 선거에 줄곧 나서면서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을 얻었다. 20대 총선에 출마하면서 새누리당으로 옮겼지만 17~19대 총선에 민주당 간판으로 출마해 3선을 한 조경태 의원도 있었다. 20대 총선에서 부산진갑에 출마해 당선된 더불어민주당 김영춘 의원은 지역밀착형 정책으로 존재감을 구축했다.
지난 30여 년간 TK와 한배를 탔던 PK의 영남권 결속력은 약해지고 있다. TK를 도와 TK 출신 대통령을 만들어냈지만 정권의 요직은 TK가 차지했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신공항 건설, 동북아 선박금융 허브 육성 등 PK 지역 공약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이에 실망한 PK의 민심 이반은 20대 총선에 그대로 반영됐다.
20대 총선과 '청와대 게이트'를 겪은 뒤 PK 정치 지형은 다시 한번 요동치고 있다. 새누리당에서 탈당한 비주류 의원들로 구성된 '바른정당'이 창당 작업에 속도를 내면서 PK 내 보수 세력의 분화가 활발해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김태경 기자 tg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