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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제강점기 부산 동구에 있던 조선방직. 김한근 부경근대사료연구소장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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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울산 경남(PK)은 대한제국 성립 1년 전인 1896년 3월 13도제 실시로 경상남도(도청 소재지 진주)가 개청하면서 정치·경제·사회적 공동체로 현대사를 헤쳐왔다. 121년의 PK 역사 속에서 경남도청은 진주→부산→창원으로 옮겨갔다. 그러는 사이 부산(1963년) 울산(1997년)이 광역시로 승격했고, 창원도 광역시 승격을 추진하고 있다.
행정구역상의 이 같은 분화에도 PK는 지역 공동체로서 한국의 정치·경제를 주도했다. 한국이 식민지를 경험한 국가 가운데 유일하게 민주화와 산업화를 동시에 달성한 국가로 인정받게 된 오늘이 있기까지 PK는 현대사를 주도했다. PK는 산업화 과정에서 비대해진 수도권에 대응할 사실상 유일한 동남경제권을 형성했다. 현대 정치사의 주요 고비마다 PK는 민주화와 자치분권을 이끌었다. PK가 걸어온 정치적 행로를 정리하고 오늘날 직면하고 있는 경제 양극화와 중앙정치 일극 체제를 극복하고 명실상부한 선진 한국으로 이끌기 위해 PK가 나아가야 할 길을 총 7회에 걸쳐 점검하고 제시하고자 한다.
- 6·25전쟁 전시수도로 자유 지켜
- 3·15 부정선거 항거 4·19 도화선
- 비상계엄령 속 10월 유신 대항
- 부마항쟁, 독재정권 붕괴 단초
- "남명정신 이어받아 진취성 완성"
PK는 한국 현대사를 이끈 주역이다. 일제강점기를 극복하기 위한 독립운동 시기에는 약산 김원봉 선생, 백산 안희제 선생 등 숱한 PK 인사가 조국 광복을 위한 투쟁을 이끌었다.
해방 이후 미 군정기를 거쳐 1948년 남한 단독정부가 수립되고 2년 뒤 한국전쟁이 터진 뒤 부산은 전시수도로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이후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의 여정은 PK의 역사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부산항은 PK가 한국의 '민주화와 산업화의 문'이라는 평가를 받게 된 결정적 요소였다.
PK는 3·15 부정선거를 저지른 이승만·이기붕 체제를 무너뜨렸고, 5·16과 12·12라는 두 차례의 쿠데타 세력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켜냈다. 1970년대에는 PK 인사들이 삼성 LG 효성 등 굵직한 기업군을 일구면서 산업화에 이바지했다. 부산의 목재·신발, 진주의 섬유, 마산의 섬유·전자, 창원의 기계공업, 울산의 중화학공업은 오늘의 한국 경제를 형성한 주축이었다.
이를 두고 허권수 경상대 한문학과 교수는 바다를 끼고 있는 PK의 도전성·개방성이라는 기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여기에다 조선 중기 남명 조식 선생의 실천을 강조한 학맥이 합쳐져 PK의 진취성이 완성됐다는 것이다. 당시 경상우도의 남명 선생은 경상좌도의 퇴계 이황 선생과 쌍벽을 이룬 대학자로, 곽재우를 비롯한 그의 제자들은 임진왜란 때 의병장으로 활약했다.
PK의 이런 기질은 정치적으로 민주주의에 대한 강력한 지향점을 형성했다. 한국 정치사를 뒤흔든 4·19혁명과 유신체제 붕괴는 PK가 움직이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1960년 이승만 대통령이 장기집권을 위해 정·부통령 선거에서 대규모 불법행위를 저지른 3·15 부정선거에 항거하던 마산상고 1학년 김주열 군이 실종 한 달 만인 4월 10일 경찰이 쏜 최루탄을 맞은 참혹한 모습으로 마산 앞바다에서 발견됐다. 마산 시민의 분노는 부산과 서울로 번지면서 4·19혁명의 도화선이 됐다.
한국 정치사에서 4·19혁명은 시민이 주권자임을 각인하는 대사건으로 평가된다. 1979년 부마항쟁,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1987년 6월항쟁, 2017년 '촛불집회'도 당시 마산의 분노에서 출발한 4·19혁명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데 이견이 없다.
1961년 5월 16일 쿠데타로 정권을 장악한 박정희 정권은 1972년 정권 연장을 위해 비상계엄령 속에서 10월 유신을 감행했다.
1979년 박 전 대통령이 유신에 반대하던 PK 출신 야당 지도자 김영삼 신민당 총재에 대해 의원직 제명을 밀어붙이자, 부산과 마산이 '유신체제 타도', '정치 탄압 중단'을 요구하며 들고 일어났다. 부마항쟁으로 불리는 PK의 유신체제 저항 운동은 박정희 체제 내부 균열을 불렀고, 같은 해 10·26 사건이 발생하면서 유신체제는 종막을 고했다.
정치권에서 회자되는 'PK가 일어서면 나라가 바뀐다'는 말은 단순한 수사가 아니다. PK는 현대 정치사의 고비마다 행동을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고 확대해 온 살아 있는 역사를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손균근 기자 kkshon@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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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25전쟁 당시 군수물품이 하역되고 있는 부산항 제2부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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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이승만 정권의 부정 선거에 항거한 마산 학생들의 3·15 의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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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9년 10월 부마항쟁 무렵 부산시청 앞 계엄군의 장갑차와 탱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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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92년 당시 민자당의 김영삼 대표가 총선 정당연설회에 참석한 모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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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60년 4·19혁명 무렵 부산 시위대.
손기태(당시 경남공고 학생회장) 씨 소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