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의 숨결 스며 있는 민주공원
- 부산의 자랑이자 자존심이지요
- 민주주의를 잊고 지낸 우리에게
- 당신의 부재는 죽비가 될 것입니다

어두운 초겨울 밤하늘에서 비가 내립니다. 김영삼 대통령님, 당신께서 떠나시는 길 하늘도 슬퍼서 눈물을 뿌리나 봅니다. 그날 새벽 비보를 듣고 당신께서 그렇게 서둘러 떠나야 하셨나 하는 야속함과 아쉬움에 가슴이 무너졌습니다. 그동안 왜 한번 찾아뵙지 못했는지, 뒤늦게 저 자신의 무정함을 탓해 봅니다. 세상에서 다시 당신을 만나볼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고 망연해집니다.

김영삼 대통령님. 제게 당신은 너무나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정치인이기 전에, 대통령이기에 앞서 한 인간으로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망설임 없이 실천했던 '신념의 사람'이었습니다. 또 사람에 대해 지극한 믿음과 사랑을 보내주신 가슴 넉넉한 '자애의 사람'이었습니다.

극악했던 유신독재에 정면으로 맞서 생명을 걸고 투쟁하던 민주화의 사자후가 제게 새겨진 당신의 첫 모습입니다. 저 역시 한 사람의 사도로서 민주화 운동의 말석에서 작은 힘을 보탤 때 당신의 온몸을 던진 반독재, 반유신 투쟁은 제게 든든한 격려가 됐고 따듯한 위안이 됐습니다.

독재에 대해 굽힐 줄 모르는 의지, 불의와 타협할 줄 모르는 당신의 정의감은 유신독재의 뒤를 이은 신군부의 살벌한 유혈집권에도 분연히 맞섰습니다. 1983년 민주화와 헌정 정상화를 요구하며 벌였던 23일간의 단식은 국민의 뇌리에 또렷이 남아 있습니다.

당신께선 대통령이 되어 문민정부를 열고 담대하게 이 땅의 민주주의 발전에 초석을 놓았습니다. 오랜 세월 헌정을 농단해 왔던 군부의 적폐, 그 중심축이었던 하나회를 척결하고 경제질서를 어지럽히던 검은돈 거래를 차단하기 위해 금융실명제를 단행했습니다.

민주공원과 관련한 당신과의 기억이 새삼 떠오릅니다. 부산시민의 정신적 자산인 부마민주항쟁을 기념하기 위한 민주공원 조성에 당신이 보여준 지원은 잊히지 않습니다. "당연히 부산에 세워야지. 필요한 게 뭔지 말만 하소." 그렇게 말씀하셨지요. 부산시민의 자랑이자 자존심인 민주공원에 당신의 숨결은 그렇게 스며들어 있습니다.

별로 내세울 것 없는 제게 보내 주신 당신의 배려는 아직도 제 가슴을 따듯하게 합니다. 제가 은경축일을 맞았을 때, 당신께서 보내주신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축하의 글과 금일봉을 받고 감격했던 것도 어제 일 같습니다.

3당 합당, IMF 구제금융사태 등으로 당신의 훌륭한 치적이 빛바랜 점은 늘 아쉬웠습니다. 세상 어느 누가 공만 있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의 빈자리가, 당신의 부재가 이 땅의 민주주의에 대해 소홀했던 우리의 영감을 되살려 주고 관심과 의지를 북돋워 주는 죽비가 되리라 믿습니다. 하늘에서 이승에 남은 우리들의 어리석음을 일깨워 주십시오. 우리 사회가 갈등과 분열을 넘어 당신의 마지막 유훈인 '화합'의 길로 나가갈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이제 현충의 뜨락에서 살아생전 군부독재에 함께 맞섰던 민주화 동지 김대중 대통령과 마주 보며, 이 땅의 정치가 국민을 떠받드는 온전한 정치가 될 수 있도록 질책과 편달을 주시길 간절히 바랍니다. 김영삼 대통령님, 당신과 같은 시대를 살며 이 땅의 민주화에 동참할 수 있었던 기억을 자랑스럽게 생각합니다.

부디 영면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