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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인 최원준의 음식문화 잡학사전] <87> 여수 ‘돌산 갓김치’와 갓김치 음식

익을수록 깊은 감칠맛 … 남도 젓갈문화가 만든 별미

  • 최원준 시인·음식문화칼럼니스트
  •  |   입력 : 2026-10-27 18:58:16
  •  |   본지 1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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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수 돌산갓으로 만든 갓김치.
- 톡 쏘는 매운맛·알싸한 향 특징
- 해양성 기후와 높은 일조량 덕
- 돌산도서 전국 소비 80% 생산

- 11월 전후로 수확하는 돌산갓
- 깊은향·아삭한 식감 진해 최고
- 찌개·찜·볶음·김밥으로도 즐겨

나름으로는 꽤 오래도록 여러 지역 음식문화를 들여다보았다고 생각하는데, 들여다보면 볼수록 늘 새로운 궁금증은 커지고, 그 궁금증이 풀리면 바로 무릎을 치는 일이 다반사였다. 결국 지역의 기후 조건, 식재료 전반의 생태, 지역민들의 기질과 맛의 기호 등에 의해 지역의 향토음식 대부분이 발상하고 정착하고 전래한다는 것이다.

그러다 어느새 한 지역의 대표성을 띠는 식재료가 되고 상징적인 음식이 된다는 것도 알 수가 있었다. 흑산도 홍어, 울릉도 오징어, 제주도 자리돔, 서울 설렁탕, 인천 짜장면, 부산 돼지국밥, 대구 막창 등이 그것일 것이다.

얼마 전 여수 지역에 일정이 있어서 며칠을 머물렀다. 여수 돌산도에도 들렀는데, 가는 곳마다 돌산 갓김치 관련 식당의 간판과 홍보판매장, 갓김치 공장들이 들어서 있었다. 마치 ‘갓김치 공화국’ 같은 느낌이랄까?

그도 그럴 것이, 현재 전국에서 소비되는 ‘갓’의 80% 이상이 여수시 돌산도에서 생산될 뿐만 아니라 돌산도 내의 죽포, 두문포, 봉림, 방죽포 등 네 개 마을이 ‘여수 돌산 갓김치 마을’로 지정되어 있기에 그렇기도 하겠다.

특히 국내 4대 일출 명소로 전국적으로 유명한 ‘향일암’ 아랫마을에는 갓김치 가게와 식당, 직판장 등으로 ‘갓김치 골목’이 형성되어 있어, 많은 관광객의 입맛을 사로잡으며 큰 인기를 끌고 있기도 하다.

■여수를 대표하는 돌산갓

여수 돌산도를 대표하는 음식 갓김치를 만들기 위해 절여놓은 돌산갓(위쪽)과 이를 재배하는 밭. 갓김치로 이용되는 청갓은 여수 돌산도에서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을 재배하고 있다.
‘갓’은 십자화과 배추속에 속하는 한해살이 잎채소이다. 톡 쏘는 매운맛과 알싸하면서 상쾌한 향이 특징이며, 주로 잎과 줄기로 김치를 담가 먹거나 그 씨앗으로 ‘겨자’의 주원료로 사용한다. 원산지는 중앙아시아 일대로 알려져 있다.

한국에는 삼국시대 문헌에 갓의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일찍부터 중국을 통해 전래한 것으로 보고 있으며, ‘동의보감’이나 ‘농가월령가’ 등에서도 갓에 대한 기록을 찾아볼 수가 있다. 현재 여수시 돌산도 일대에서 재배되는 돌산갓이 유명하며 갓김치, 겉절이, 물김치, 쌈 채소 등으로 활용된다.

갓의 종류로는, 잎과 줄기가 녹색을 띠는 ‘청갓’과 잎이 붉은 ‘홍갓’, 잎에 붉은색과 청색이 반쯤 섞여 있는 ‘얼청갓’ 등이 대표적이다.

청갓은 홍갓에 비해 매운맛이 덜하고 은은한 향과 아삭한 식감으로 주로 김치용으로 활용된다. 돌산갓이 청갓에 속한다. 홍갓은 쌉싸름하면서 톡 쏘는 매운맛이 강해서 김치의 맛을 내는 양념 속 재료로 널리 쓰인다. 얼청갓은 김장 양념용이나 김치의 부재료 등으로 쓰인다.

앞서 말했지만, 갓김치로 널리 이용되는 청갓은 여수 돌산도에서 전국 생산량의 80% 이상을 재배하고 있다. 돌산지역에서 널리 재배되기에 전국적으로 ‘돌산갓’이라 불리고 있기도 하다. 조선시대에는 임금의 진상품 중 하나로 기록되고 있기도 하다.

갓은 생태 상 따뜻한 해양성 기후, 풍부한 일조량, 비옥한 알칼리성 토양에서 잘 자라는데, 여수 돌산도가 그 입지에 적합한 지역이었다. 그래서 일제강점기부터 돌산도는 일본인들에 의해 전문적인 채소 재배단지로 개발했을 정도로 토질이 아주 우수했다.

현재의 돌산갓의 시작은 일본에서 들여온 ‘만생평경대엽고채(晩生平莖大葉高菜)’라는 품종으로, 1950년대 여수시 돌산읍 세구지 마을에서 재배하기 시작했다. 이후 돌산도의 기후와 토양에 생태적으로 적응한, 잎이 넓은 배추 형의 ‘청경대엽고채(靑莖大葉高菜)’로 개량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알싸한 향과 깊은 맛의 갓김치

돌산갓은 여느 갓보다 잎이 넓고 줄기가 크고 두꺼우며 섬유질이 유난히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또한 매운맛이 적고 풍미가 은은하며 식감이 아삭해 김치로 담갔을 때 다른 김치와는 달리 아주 상쾌하고 시원한 맛을 낸다.

그래서 요즘은 담가서 바로 먹는 생김치 형태를 즐기기도 하지만, 예전 여수 사람들은 겨우내 푹 익혔다가 봄철 입맛 없을 때 한 보시기씩 꺼내 먹는 별미가 갓김치였다. 그만큼 저장성이 뛰어나 익을수록 갓의 알싸한 향과 깊은 감칠맛을 내기에, ‘시간이 만드는 음식’으로 불리기도 했단다.

돌산 갓김치는 사시사철 돌산갓을 재배하고 있기에 일년내내 갓김치와 물 갓김치를 담가 먹을 수 있지만, 가장 맛이 좋은 제철은 가을(10월~12월 초)과 봄(3~4월)철이다.

9월에 파종하여 11월 전후로 수확한 돌산갓은 알싸하고 톡 쏘는 매운맛과 깊은 향, 아삭한 식감이 가장 진하기에, 이 시기에 김치를 담그면 맛있는 김장 갓김치를 맛볼 수가 있다.

그리고 추운 겨울을 넘긴 봄철 갓으로 김치를 담그면, 매운맛이 덜하고 부드러워 이 또한 봄철 입맛을 돋우는 별미로 맛있게 먹을 수가 있다.

그중 가을에 김장한 갓김치는 겨우내 두고두고 여러 가지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가 있어서 좋다. 겨우내 제철 입맛 살리는 맛있는 음식이면서도, 여러 음식을 다양하게 조리해 먹는 식재료로서의 풍성한 성정 또한 품고 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돌산 갓김치는 김치로도 물론 맛이 있지만, 오래 묵혀서 다양한 갓김치 음식을 만들어 먹을 수도 있다. 그 대표적인 음식이 ‘갓김치 찌개’와 ‘갓김치 찜’, ‘갓김치 볶음’과 ‘갓김치 볶음밥’ ‘갓김치 전’ ‘갓김치 김밥’ 등등이 있겠다.

‘갓김치 찌개’는 잘 익은 갓김치를 넉넉하게 넣고 돼지고기나 고등어 갈치 꽁치 등과 함께 푹 끓여낸다. 갓의 알싸한 향이 고기와 생선의 느끼함과 비린내를 잡아주면서, 고소하고 깊은 풍미와 감칠맛 또한 좋은 음식이다. 국물을 적게 자작하게 조리면 ‘갓김치 찜’이 된다.

신 갓김치를 송송 썰어서 들기름에 볶아내면 밥반찬으로 그저 그만인 ‘갓김치 볶음’, 식은 밥을 넣고 쓱쓱 비벼 내면 아삭한 식감과 감칠맛이 일품인 ‘갓김치 볶음밥’이 된다. ‘갓김치 전’은 갓김치를 밀가루 반죽과 함께 바싹하게 부쳐내는데, 쌉쌀하고 알싸하면서 고소한 맛이 막걸리 안주로도 근사한 별미이다.

요즘에는 김밥 속에 잘 씻은 돌산 갓김치를 잘게 썰어 넣은 ‘갓김치 김밥’과 돌문어, 전복, 키조개 관자 등 해산물과 삼겹살 차돌박이 등의 육고기를 잘 익은 돌산 갓김치와 함께 철판에 구워 먹는 ‘여수 삼합’도 관광상품으로 인기가 높다.

여수의 돌산 갓김치는 돌산도의 독특한 기후와 토양 환경에 의해 시작되었지만, 맛의 깊이는 남도 특유의 음식문화에 기인한 바가 크다.

특히 남도 김치만이 가지는 풍부한 젓갈 문화가 깊숙이 관여하고 있는데, 이것이 대표적인 남도 김치 중 하나인 ‘돌산 갓김치’를 만들어 낸 요인 중 하나이다.

매서운 겨울 바닷바람이 쌩쌩 불 때면, 장독에서 갓 꺼낸 갓김치를 따뜻한 쌀밥 위에 길게 찢어서 한 점 올려 먹던 여수 사람들, 이 맛이 아직 남아 있기에 여수 사람들의 ‘맛의 추억’ 또한 넉넉한 것이리라. 그 덕에 필자도, 며칠 동안 밥상 위가 남도 특유의 게미진 맛깔로 풍성했던 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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